20일 오후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 마련된 고 채수근 상병 빈소에서 채 일병의 어머니가 영정 사진을 보고 오열하고 있다. 2023.07.20. ⓒ뉴시스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 도중 순직한 해병 제1사단 고 채수근 상병의 사고의 배경엔 해병대 1사단 지휘부의 무리한 수중수색 지시가 있었다는 군인권센터의 폭로가 8일 나왔다. 사단장 등 지휘부의 지시사항은 장병들의 안전보다는 해병대를 강조하는 복장 착용 등 보여주기식 지시가 대부분이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소속 대대 장병들의 제보와 진술, 카카오톡 대화방 전체 내용 등을 확보한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물속에 투입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부대를 수중수색에 투입해 발생한 예정된 참사가 명백하며, 무리한 수중수색은 사단장 등 해병대 1사단 지휘부의 지시에 의한 것임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 설명을 종합해 당시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채 상병이 소속된 포병7대대는 7월 17일 점심 경 '대민 지원을 나간다'는 설명만 듣고 오후 3시 30분께 준비를 마치고 부대에서 출발했다. 장병들이 자신의 임무가 수변 실종자 수색정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인 이튿날 오전 5시 15분. 단순 수해복구 작업으로만 알고 있었던 장병들은 부대에서 구명조끼 대신 삽이나 갈퀴, 고무장화 등을 챙겨온 상태였다. 사단장은 떠들거나 웃는 모습이 외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스카프로 얼굴을 두르고 작업하라는 지시를 전파할 뿐이었다.
7월 18일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진흙밭이나 풀숲 등 습지대에서 작업이 이뤄졌다. 갈퀴로 풀을 뜯어내고 걷어내는 정도였다. 오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 습지에 들어가 수색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자, 장병들은 1m 이상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서서 하천 주변 도로를 걸어가며 물에 떠다니는 물체를 식별하는 방식의 수색을 진행했다. 오후에도 비가 많이 와 주로 갓길에서 수색하다가 철수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사단장의 지시. 사고 발생 하루 전, 당시 사단장은 장병들에게 '해병대'가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라고 했고, 안전상 일렬로 작업하던 것을 비효율적이라며 4인 1조로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하라고 질책했다. ⓒ군인권센터
사단장의 질책 섞인 지시 후, 전해진 사단 전파 사항에는 물에 들어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군인권센터
그런데 철수 중이었던 오후 4시 22분, 사단장의 질책 섞인 지시가 전달된다. 지시사항 중에는 복장 상태를 지적하며 "슈트 안에도 빨간색 츄리닝을 입고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 티를 입고 작업하라"거나 "경례가 미흡하다"는 질책도 담겨 있었다.
특히 포병을 콕 집어 비효율적이라며 일렬로 서서 작업하지 말고 4인 1조로 찔러가며 바둑판식 수색 정찰을 하라고 지시했다. 군인권센터는 "당일 일렬로 작업한 것은 비가 와서 습지대, 물가에서 작업을 하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 비효율적이라며 질책한 것"이라며 "현장 상황과 괴리되었을 뿐 아니라 장병 안전에 관심이 없고 외부에 비치는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사단장의 지시 이후,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물에)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하라"는 사단의 지시가 두 차례 전파됐다. 이후 중대장은 '내일 7대대 총원 허리까지 강물 들어간다'며 수중수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이전까지는 물에 들어갈 계획이 없었다가 사단 지시로 사고일인 19일부터 하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19일에는 사단장, 사령관, 국방부 장관 등이 방문한다며, 기본자세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도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안전을 염려한 중간 간부들의 건의는 묵살된 것으로 보인다. 수중수색을 해야 할 다음날 복장 지침에 장화가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 간부는 '안전재난수칙에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물이 장화에 들어가면 보행할 수 없다'고 했고, 중대장 등 다른 중간 간부들도 '저도 우려되는 게 많아 얘기하고 오겠다'며 상부에 건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우려 섞인 건의 사항은 묵살됐고, 공지된 최종 복장에도 장화가 포함돼 있었다.
수중수색이 결정된 후, 중간 간부들의 우려 섞인 건의 사항은 결국 묵살된 것으로 보인다. ⓒ군인권센터
그렇게 채 상병을 포함한 장병들은 7월 19일 오전 8시경 내성천에 투입됐고, 간부를 포함해 4~6명이 1개의 조를 이뤄 수중을 걸어 다니며 수색해야 했다.
수중수색 당시에는 예상치 못한 위험 상황들이 종종 발생했다. 지형에 익숙하지 않았고, 흙탕물이라 물 아래가 보이지 않아 걸어다니는 도중 갑자기 목까지 물이 차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장병들은 사단장 지시대로 바둑판식으로 1m 이상 떨어져 수색해야 했다. 그전까지 서로 팔을 뻗으면 잡힐 거리에서 작업을 했었지만, 사고 당일에는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다는 게 장병들의 증언이다.
그러던 중 한 병사가 발을 내딛다가 물에 빠졌고, 채 상병을 비롯한 다른 병사들이 도움을 주려다 물에 빠졌다. 이렇게 물에 빠진 인원은 총 8명. 이 중 7명은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채 상병은 20초가량 물 위아래로 오르내리다가 숨졌다.
군인권센터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밝힌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일로부터 20일이 지난 현재까지 정부, 국방부, 해병대 등 책임 있는 국가기관 어디에서도 사고 원인은 물론 경위조차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뿐만 아니라 지난 7월 31일에는 예정된 수사 결과 발표가 취소됐고,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도 연기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단장인 A대령이 돌연 '군 기강 문란'을 이유로 보직 해임되면서 군 당국이 사건을 은폐 및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 2일 해병대 수사단은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 보고서를 이첩했지만,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하고 A대령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하고 보직 해임했다. 국방부가 경찰로의 이첩 보류를 지시했지만 이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해병대 수사단이 작성한 조사 보고서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해 모두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가 있다는 내용이 기재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사단장, 사단 지휘부가 안전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무리한 지시를 한 경위가 무엇인지 국방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민간에 이첩한 사건 기록을 도로 회수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모종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사건을 책임지겠다고 했다가 사퇴는 아니라는 등 국민을 말장난으로 우롱하며 자기 책임 가리기에 전전긍긍인 해병1사단장 임성근 소장부터 보직 해임해야 한다"며 "책임 있는 사람이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데 1사단 장병 중 누가 용기 내 사실을 진술할 수 있겠나. 정부도, 국방부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