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이 KBS 보궐이사로 추천됐고, 차기환 변호사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보궐 이사로 임명됐다. KBS 이사는 방통위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사실상 이날 방통위는 KBS와 방문진 이사를 각각 여권 인사로 선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날 회의에 불참한 야당 추천인 김현 위원은 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회 안건은 48시간 전에 각 위원에게 통보해야 하는데 이를 알리지 않았다”라며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방송통신위원회 회의 운영에 관한 규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이날 회의는 여권 추천인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만 참석했다. 원래 방통위는 5인 체제인데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안건을 의결했다는 사실부터 이례적이고, 그 흠결은 심각하다.
확실히 지금의 방통위 운영은 절차를 무시하고 속전속결 일변도다. 방통위는 남영진 KBS 이사장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의 해임 절차도 진행 중이다. 공영방송 이사 해임을 추진하면서 그 법적 근거도 변변하게 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감사원 등의 조사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권 이사장에 대한 해임 절차를 시작해 버렸다.
내세우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더 노골적이다. 차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세차례에 걸쳐 KBS와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면서 공영방송의 독립성 훼손에 책임이 큰 인물이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 시절에는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특조위 활동 방해로 유족들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가 내정됐을 때 국민의힘은 “지난 정권에서 편향과 불공정으로 일관하며 국민의 외면을 자초했던 방송을 정상화”할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후보자가 아직 인사청문회도 거치기 전에 여권 추천 인사들로 공영방송 이사진을 채우기 위해 최소한의 절차도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어느 쪽이 편향이고 무엇이 불공정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자체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자기 뜻대로 공영방송 이사를 임명하려 하더라도 지켜야 할 법적 절차가 있고, 그 이전에 국민의 동의를 얻으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군사작전 펼치듯이 한쪽에서는 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 사람을 앉히며 만들어진 이사회가 공정한 공영방송을 이끌 것이라고 누가 믿을 수 있겠나.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내년 총선 때문이라면 더 불순하다. 그런데 문제는 체면과 명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무리수를 남발하는 다른 이유가 달리 떠오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의 역할이 지대한 만큼 그 폐해는 단순한 ‘내 사람 챙기기’에 비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관영방송’의 혼란과 피해를 겪을 만큼 겪었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