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잼버리 K팝 콘서트에 BTS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국방부(!)에 요구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한 번 뿜었다. 그런데 7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새만금은 베이스캠프로 하고, 대한민국 전체가 잼버리 대회장이 되어야 할 때”라며 “위기의 나라를 살렸던 (IMF 때) 금반지 정신으로 돌아가면 못 해낼 게 없다”고 강조했다는 대목을 듣고 이분들이 단체로 실성하신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집단의 사고방식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발전이라는 게 1도 없다. 2008년 초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대통령 당선인 이명박이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헛소리를 한 적이 있었지 않나? 국민의힘의 사고방식은 이때부터 완전 정지 상태다. 숭례문이 무슨 불우이웃이냐? 성금으로 돕게? 그리고 잼버리 사태가 무슨 국난이냐? 국민들이 금반지를 또 모으게?
“대한민국 전체가 잼버리 대회장이 돼야 한다”고? 싫은데? 우리 집은 그냥 조용하고 안락한 우리 가족의 안식처로 남고 싶은데? 그렇게 국가에 충성하고 싶으시면 박대출 씨, 당신 집이나 잼버리 대회장으로 기부하시지? 금반지를 또 모으자고? 싫은데? 우리 아이들 금반지는 평생 간직하게 할 건데?
아니, 생각해보니 내가 말을 잘 못했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2008년에 머물러 있던 게 아니라 박정희가 집권했던 1960,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 걸핏하면 국민들에게 “국가에 충성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연예인들을 강제로 국가 행사에 동원하는 것도, 군사독재 때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국가에 충성을 강요하는 자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거의 매일 학교에서 암송하던 국기에 대한 맹세다. 요즘은 맹세의 문구도 조금 바뀌었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암송하지는 않는 것 같던데 나 때에는 정말 저걸 거의 매일 암송했다.
그런데 진짜 웃긴 건, 나는 저 맹세를 암송하면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런 맹세 따위에 몸과 마음을 바칠 생각이 들 정도라면, 그건 충성심이 강한 게 아니라 자아 개념이 부족한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에릭 펠턴(Eric Felten)은 저서 『위험한 충성』에서 복종하는 충성과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의 차이에 대해 역설했다. 복종하는 충성과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 모두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전자는 강요받는 것이고, 후자는 자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종하는 충성이 아니라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이라는 이야기다. 펠턴의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자.
“리더가 충성심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에는 고민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대개 사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도덕적 불안을 충성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둘째, 충성을 강요하는 사람일수록 거의 예외 없이, 충성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영국의 군사이론가이자 역사가인 바실 리델 하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상사에게는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하에게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자, 이 이야기를 성일종, 박대출 두 사람에게 적용해 보자. 이 두 사람이 BTS를 들먹이고 “지금은 금반지를 내놓아야 할 때”라며 국민들에게 노골적인 충성심을 요구하는 이유가 뭔가? 펠턴은 그 이유를 ‘그들이 사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도덕적 불안을 충성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조기 철수가 결정된 8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글로벌센터(기숙사)에 스위스 국적 대원들이 도착해 차량에서 짐을 내리고 있다. 56개국 3만 7000여명이 버스 1014대를 이용해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준비 미숙 등으로 새만금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해 서울과 경기, 전북, 충남, 충북 등 8개 시·도로 이동했다. 2023.08.08 ⓒ민중의소리
리더가 옳은 일을 하면 부하들이 알아서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을 베푼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면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국가에 충성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리더나 국가가 열라 구린 일을 하고 있으면 절대 부하나 국민들은 우정이나 충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리더나 국가가 부하와 국민에게 “나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펠턴이 인용한 바실 리델 하트(Basil Liddell Hart, 1895~1970)는 영국을 대표하는 군인이자 군사이론가였다. 충성 맹세가 난무하는 군 생활을 경험한 하트에 따르면 “나를 따르라!”라고 강요하는 놈들일수록 절대로 윗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이 말을 다시 성일종, 박대출 두 사람에게 적용해보자. BTS와 국민들에게 “국가에 충성하라”고 강요하는 이들? 이런 자들일수록 절대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 성일종, 박대출 두 의원이 국가를 위해 자기 재산을 기부했다거나 뭐 이런 소식 들은 적 있나?
진정한 우정, 진정한 충성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2년, 일제가 저지른 만행 중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이라는 것이 있었다. 필리핀을 침공한 일제는 바탄반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필리핀군과 미군 등 연합군 7만 6,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일제는 이들을 무려 120㎞나 떨어진 내륙 수용소로 이동시키면서 수많은 포로를 학대했다. 물도, 식량도 주지 않고 벌어진 잔인한 행진에서 수많은 포로들이 낙오했다. 일제는 낙오된 포로들을 총검으로 살해했다. 이 죽음의 행진에서 무려 1만 명의 포로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과 잃은 사람들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었다. 펠턴에 따르면 그 차이는 바로 ‘믿을만한 벗이 있느냐’ 여부였다. 포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의지할 친구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반면 우울한 기분을 풀어줄 수 친구,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줄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버텨내지 못했다.”
이게 바로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이다. 믿음을 기반으로 한 우정이 있으면 상대가 어려울 때 벗들이 반드시 돕는다. “잼버리 사태가 국가적 망신이니 국민들은 금반지를 모아라”라고 말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나선다. 그리고 이런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과 협동의 네트워크가 있으면 우리는 죽음의 행진에서도 버텨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이 그런 시대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가 그런 나라냐고? 국민의힘은 자칭 시장주의를 지지하는 정당 아닌가? 시장주의가 뭔가?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이고,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며, 인간의 이기심만이 시장을 발전시킨다, 워 이런 철학 아니냐?
그래서 가난한 건 네 탓,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 처지에 몰린 것도 네 탓, 이렇게 평소에는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놓고 이제 와서 국가에 충성하라고 씨불여대면 누가 그 말을 진지하게 듣겠나?
평소 국민 알기를 엿같이 알다가, 잼버리 준비도 개떡같이 해놓고 국가 망신 다 시킨 집단이 이제 와서 금반지 정신 운운하는 걸 보며 참 염치를 정성스럽게 쌈 싸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고, 참 배들 부르시겄소, 염치쌈 맛나게 잔뜩 드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