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예방하려면 범죄의 원인이나 동기를 제거해야 한다. 신림동과 서현역 흉기 난동 범죄는 사회를 향한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한 ‘분노 범죄’다.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에 대한 분노가 범죄 동인(動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묻지마 범죄’라고들 명명했는데 이는 범죄의 원인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니 경찰이 도심에 장갑차를 세워두고 소총을 든 채 서 있는 게 이 분노 범죄의 예방책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경찰력을 근거 없이 사용할 경우, 무고한 시민이 다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신중해야 마땅하다.
실제 지난 5일 의정부에서 경찰이 운동하고 있는 한 중학생을 흉기 난동 용의자로 오인해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사복 경찰들은 검은 후드티를 착용하는 등 복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청소년을 범인 취급했고, 폭력적으로 수갑을 채우는 등 심각한 경찰력 남용을 했다. 이 때 자신들의 소속과 신분은 물론 체포 사유를 밝히지 않은 점도 경찰의 오래된 잘못된 관행이다.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경찰의 잘못된 법 집행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근 윤희근 경찰청장의 ‘면책 규정 강화’ 언급은 이 같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분노 범죄는 불평등이 원인이므로 이를 예방할 제대로 된 정치가 필요하다. 철학자 랑시에르의 말처럼 치안과 정치는 다르다. 치안의 논리에서는 바깥이 없다. 그래서 셈해지지 않은 어두운 삶에 속한 자들의 삶은 계속 보이지 않게 만든다. 불평등 사회에서 치안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소음으로밖에 지각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까지, 존엄하게 대우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불평등 사회를 완화하는 정치, ‘셈해지지 않는 것들을 셈하는’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범죄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치안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총 든 경찰이 거리에 서 있는 것’이 과연 치안 강화일까. 아니다. 야간 순찰만 제대로 돌아도 범죄는 준다. 총을 들고 서 있기 보다 곳곳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신고에 제때 화답하면 안전사고 등 불상사가 예방된다. 집회 통제를 위해 동원하는 경찰의 수를 줄이고 일상 안전을 지키는 일에 경찰력을 투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경찰은 무언가 체계적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난데없이 번화가에 무장한 경찰기동대와 장갑자를 투입했다. 수십년 전 ‘범죄와의 전쟁 선포’의 모방으로 보여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조직폭력배 소탕과 분노 범죄 대응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경찰은 신속히 분노 범죄 양상에 대해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마땅하다. 신림동과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온라인 상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은 315건에 달했다. 이로 인해 검거된 사람은 119명이다.(경찰청 국가수사본부 8월 11일 발표) 놀라운 것은 검거된 피의자들 중 다수가 10대였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일까지 검거된 피의자 65명 중 34명(52.3%)이 미성년자였다. 이는 젊은층을 필두로 많은 이들이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큰 분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적잖은 글이 여성을 죽이겠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분노한 이들의 폭력성이 기득권이나 권력자가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차별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하향형 분노범죄’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검거된 신림역 여성 20명 살인 예고글을 쓴 남성 피의자도 오랫동안 온라인 상에서 여성혐오성 글을 쓴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 대응의 한 갈래는 반드시 소수자 혐오 근절을 위한 인권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예고하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혐오를 부추겨 온 점, 장애인 이동권을 호소하는 활동가들에게 강경 대응을 일삼은 점을 보면 이러한 전향적 정책이 현실화 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시민들은 더 불안하다. 혐오 정치가 지속되는 한, 사회적 소수자들은 계속 분노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신림동, 서현역 사건 피의자들이 정신 질환이 있다는 것이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낙인이나 차별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조현병 치료를 받은 것이 범죄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정신질환 치료 전력을 부각하면 법정에서의 처벌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장애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정부는 보여주기식 대응, 혐오를 혐오로 덮는 방식의 치안 기조를 중단해야 한다. 평등과 존엄의 정치와 그를 담은 정책적 대응이 진정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