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외압을 행사한 당사자로 대통령실(국가안보실)을 지목했지만, 대통령실은 불구경 하듯 관망하는 모습이다.
박 단장의 증언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해병대 대령이 ‘안보실에서 보자고 한다’며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할 초동조사 내용을 달라고 요구했고, 해당 내용이 안보실에 보고된 이후 돌연 상부의 태도가 바뀌었다. 박 대령이 경찰에 이첩하기로 한 내용에 동의했던 군 조직은 박 대령을 수사에서 손을 떼게 하고 징계 절차에 나섰다. 나아가 박 대령을 집단항명수괴죄 범죄자로 몰아 압박하고 있다. 외압의 윗선이 안보실로 지목되고 있고, 국방부도 뚜렷한 반박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막무가내로 박 대령이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는데, 안보실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상당히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대통령실의 태도는 후안무치할 정도로 무책임하다.
사건의 진상이 향후 어떤 수사기관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규명될지는 모르겠으나, 안보실이 외압의 발단으로 거론됐다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내부적인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순리다. 안보실에서 해병대 수사단이 작성한 경찰 이첩 자료를 요구할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으며, 국방부 장관을 통해 사건 처리 방향을 바꾸도록 요구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실장과 차장을 상대로 간단한 조사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사안과 관련해 대통령실 내부 공무원들에 대한 직무 감찰과 사정 권한을 갖고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손을 놓고 있다면 해당 부서가 존재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공직기강비서관실을 지휘하는 이시원 비서관은 과거 검사 시절 서울시공무원을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이런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부서에서 무슨 제대로 된 내부 감찰을 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적어도 형식적으로라도 마땅히 해야 할 직무를 하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대통령 비서관실의 직무 유기는 결국 대통령의 지휘 책임으로 연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조작 및 대선개입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을 때 겪었던 일과 거의 흡사한 이번 수사 외압 파문을 모를 리 없다. 이시원 비서관이 진정 윤 대통령을 위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안보실 내부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투명하게 조사해서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리는 것이 윤 대통령의 명예를 지켜주는 방법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