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관계부터 정리해보자. 지난 8월 11일 금요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폐영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케이팝(K-pop) 슈퍼 라이브 콘서트’로 끝났다. 콘서트에는 강다니엘, 뉴진스, 더 보이즈, 마마무, 엔시티 드림, 아이브, 있지를 비롯한 19개 팀의 케이팝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하이브 등의 기획사에서는 BTS 포토 카드 등의 현물을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한다.
콘서트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준비했고, 콘서트를 본 40,000여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환호했다고 한다. KBS 2TV에서 생중계한 콘서트 시청률은 수도권 기준 1부 17.2%, 2부 20.7%에 달했다. 그럼 이것으로 충분한 걸까. 콘서트를 통해 또 한 번 전 세계에 케이팝을 알리는 기회를 만들었고, 대한민국의 국격도 덩달아 올라갔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이들이 했던 비판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대회 기간 내내 잼버리를 부실하게 준비한 사람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신물나게 지켜보았다. 전 정권의 문제라고 책임을 미루거나, 지방정부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애초에 새만금에서 잼버리 대회를 한 것부터 문제였는데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면 뭐 하나.
새만금 갯벌을 개발할 때부터 이미 불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거대양당은 함께 만든 문제를 복기하는 대신, 책임을 미루기 급급했다. 덕분에 한국인 대부분이 지금 정치와 시스템이 어떤 상황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선진국이라는 환상과 정부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대한민국의 자중지란이 송두리째 드러난 시간이었다.
게다가 케이팝은 난장판의 뒷마무리를 담당해야 했다. 미리 기획하고 준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부실한 행사의 난장판이 온 천지에 드러나 더 이상 새만금에 머물 수 없게 되자 ‘급조한 프로그램’이었다.
대개 대형공연은 수개월 이상 준비한다. 공연장을 미리 예약하고, 콘셉트를 잡느라 고심한다. 콘셉트에 맞춰 제목을 정하고 선곡해 편곡하며, 무대·영상·조명을 기획한다. 연습은 수없이 반복한다. 온·오프라인 홍보나 MD 준비, 티켓팅을 진행하는 일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무대를 쌓고, 리허설 하고,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전전긍긍하고 티격 대며 힘을 모아서 겨우 끝낸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행사를 급조하고 마무리했다. 과연 한국답다. 태풍이 몰려오는데 콘서트 무대를 세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 나라의 노동자들인데도 안전고리와 안전난간 없는 상태에서 무대를 쌓아야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가 망가진다고 축구팬들이 항의했지만, 행사 장소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태원 참사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경찰이 대거 동원됐다. 기동대 43개 부대 2,500명과 교통경찰 412명이 현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케이팝 콘서트에 참여한 뮤지션들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부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일주일만에 준비하고 섭외하고 마무리한 콘서트를 위해 충분히 연습하고 새롭게 준비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 해왔던 노래와 안무를 보여주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공연을 어떻게 준비하고 싶다고 의견을 낼 수 있었을까. 의견을 조율하면서 즐겁게 공연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들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언가 배울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수없이 연습하고 준비해왔으니 언제 어떤 무대에 세워놓아도 자신들의 전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을까. 4만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봤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까. 관객들이 박수치고 환호해서 그 순간 행복했을까.
이번 콘서트에 참여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답게 존중받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일개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호출할 때, 자신들은 거절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그동안 관객이 있고 환호가 있는 곳이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수없이 확인했을 텐데, 그 순간엔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피할 수 없다면 즐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 아니면 노예나 다름없다는 자기 인식과 환멸을 반복했을까.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순간에 웃을 수 있는 태도를 인내라거나 여유라고 칭송해도 될까.
질문은 아직 남아 있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회사에서 막지 못하고 자신도 아무 말 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면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면 ‘딴따라’라거나 ‘노예’라고 생각하게 될까. 해외에서 인기를 끌 때는 환호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이런 식으로 써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마냥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울까.
이제는 케이팝 뮤지션들도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거나 사회적 발언을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선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떤 나라에 살고 활동하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 존재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케이팝 뮤지션을 모멸하는 나라다. 싸워도 바뀌지 않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춤추고 노래하려면 눈 감고 귀 닫고 입 다물어야 한다고 다짐하지 않을까. 수치심을 느끼는 마음은 아예 짓눌러 버려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아가는 예술가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