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1968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제목이 조선일보 1면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일이 있었다. 그해 벌어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야기다.
당시 조선일보에 따르면 남파된 북한의 무장간첩 5명이 강원도 평창군에 있던 이승복 군의 초가집에 침입했고 그 간첩들이 이 군 가족들에게 “남조선(남한)이 좋냐, 북조선(북한)이 좋냐?”고 질문했다는 것. 이때 이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답을 했는데 격분한 간첩 중 한 명이 이 군을 끌고나와 입을 찢은 뒤 돌덩이로 쳐서 죽였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승복 군은 반공의 상징이 됐다.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 이승복 군 동상이 세워졌고, 그의 이야기는 도덕 교과서에도 실렸다. 1975년 10월에는 평창군 대관령 정상에 ‘이승복 반공관’까지 설립됐다. 이후 이 군 모교로 장소를 옮기고 ‘이승복 기념관’으로 이름도 바꾼 이곳은 한 동안 수학여행 때 반드시 들러야 하는 장소가 됐다. 1982년 전두환은 이승복 군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 일련의 사태를 보며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 있었다. 이승복 군이 정말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고, 간첩이 실제 그의 입을 찢고 돌로 내리쳐 그를 죽였다고 치자.
이게 온 국민에게,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덕이라며 강조하고 영웅화를 할 일이냐? 그래서, 만약 우리 아이들이 북한 간첩을 만나면 그의 영웅적 행동을 따라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장렬히 외치고 죽으란 말이냐?
반공의 추억(?)
저 사건이 사실이라면, 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간첩을 만나면 절대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라고 교육을 하겠다. 그게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가장 상식적 교육 아닌가?
그런데도 박정희, 전두환 이 두 돌아이들은 이승복 군을 영웅화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그걸 보고 배워라”라고 강요했다. 도대체 뭘 보고 배우라는 건가? 반공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 줄 아는 그 용기를 배우라는 건가?
이승복 군은 사망 당시 고작 아홉 살이었다. 그때 그가 가진 반공 사상이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투철한 사상이었을까? 세상에 아홉 살 아이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사상이 있다면 그게 어떻게 사상인가? 사이비 종교지.
1970년대 ‘북괴 만행 규탄 및 국민 총단결 전국 남녀 웅변대회’라는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는 초등학생들이 나와 ‘공산군을 이겨내자’ ‘쳐부수자 공산당’ ‘미운 공산당’, ‘반공의 불사조’ 등의 제목으로 열변을 토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초등학생들은 때 되면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 구호를 외쳐야 했다.
여기서 진짜 웃긴 이야기 하나. 1970년 재개발로 집을 강제철거 당한 한 서울 달동네의 주민이 철거반원들을 향해 “이 김일성보다 더 나쁜 놈들아!”라고 욕을 했단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이 된 거다. 구속 사유가 뭔지 짐작이 가시는가?
반공법 4조 1항 공산주의자 고무찬양죄였다. 김일성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인데, 감히 김일성보다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해? 이러면 김일성이 두 번째로 나쁜 놈이 되잖아? 에라이, 너는 김일성을 찬양했으므로 반공법 위반이야! 뭐 이래서 구속됐다는 이야기다.
진짜 전체주의가 뭔가?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온 나라를 뒤집어놓았다. 특히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공산전체주의를 수차례나 운운한 대목에서 나는 멸공을 외치던 섬뜩한 군부독재 시대의 잔상을 본다. 윤 대통령의 경축사를 보라.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08.15. ⓒ뉴시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이냐? 이 정도면 쌍칠년도 ‘멸공의 횃불’을 부르던 시대 반공 포스터 안내문 아니냐?
설마 이 개떡 같은 소리를 믿는 독자분들은 없을 것이라 확신하기에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가 왜 공산전체주의자가 아닌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내가 이 연설문을 읽고 진짜 어이가 없었던 대목은 윤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를 운운하며 실제 자신이 ‘반공전체주의’를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라. 초등학생들에게 반공반공 거리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사상을 주입하는 게 자유주의냐? 어린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무찌르자 공산당” 노래를 부르는 게(이거 실제 있었던 일이다) 뭔 놈의 자유주의냐고? 그게 바로 전체주의지.
전체주의란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며,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고, 국가나 이념을 위해 개인을 수단으로 삼는 시스템을 말한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5.16 혁명 공약’ 1조에서 반공을 국시로 표방한 일이 있었다. 그 내용이 이렇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이런 게 바로 전체주의다. 반공이 국시의 첫 번째다? 온 국민이 오로지 반공을 제일의 신념으로 삼으라는 강요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는 짓이 딱 이런 거다.
이런 전체주의가 횡행하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가 전부 공산전체주의자가 된다.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면 공산주의자, 통일운동을 하면 빨갱이, 북한을 원수로 여기지 않으면 사상불온자로 낙인을 찍는다. 이게 전체주의가 아니면 뭐가 전체주의인가?
마지막으로 이 철 지난 반공 몰이가 남긴 씁쓸한 자화상 하나만 더 소개하고 칼럼을 마친다. 불과 5년 전인 2018년의 일이다.
당시 우리은행이 탁상용 달력을 제작하면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개최한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유치·초등부에서 상을 받은 한 초등학생의 그림을 실었다. 이 그림에는 ‘통일나무’가 그려져 있었고 그 나무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함께 걸렸다.
이때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반응은 “태극기와 인공기가 함께 그려지는 게 말이 되느냐? 대한민국 안보 불감증의 자화상이다!”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당 의원들은 ‘우리은행 인공기 달력 규탄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진짜 지랄들을 해라. 이게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추구하는 반공전체주의의 결말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