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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저울] 각자도생과 모럴 아포리아(Moral Aporia) 사회

최근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한자어지만 중국의 고사성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선시대 일본군이 침략했을 때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제 한 몸 숨기기에 바빴다. 대기근, 질병 등 사회적 재난이 닥쳤는데도 조정의 어느 누구도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다. 백성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강했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 나온 말이 바로 각자도생인 것이다. 서양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항해술이 발달했던 그리스에서 배가 좌초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르렀을 때 ‘길 없음’, ‘막다른 지경에 도달함’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아포리아(Aporia)’이다.

현재 우리는 ‘모럴 아포리아’ 사회에서 ‘각자도생’으로 생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존이 절대적 위기에 빠졌는데도 정부는 실정법만 운운할 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연민과 수용의 태도도 없다. 공공장소에 대놓고 사람들을 살해하겠다는 공언을 하고 묻지 마 살인과 폭행을 저질러도 공권력은 무력하다. 양평고속도로의 궤도를 바꾸는 권력 스캔들부터 해병대원의 희생을 묻는 조사에서도 정부 책임자는 밝혀진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은닉하려 들 뿐 제대로 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현실에 좌절하고, 중년들은 각자도생을 외치며, 노년들은 무력함에 빠져 있다. 세대를 불문하고 고독사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시대정신은 실종된 채 과거 군사독재 때나 나왔던 ‘전쟁, 빨갱이, 도발’과 같은 말들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시대, 이권동맹과 카르텔은 작동하되 건강한 상식과 민주주의의 질서는 작동하지 않는 시대, 사회 정의와 평등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생각하며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정치권과 야당은 구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자신들이 할 일마저 망각한 듯 보인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도 없는 양육강식의 시대로 빠르게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과 두려움이 커진다.

각자도생과 아포리아, 사회의 혼돈과 혼란을 상징
가장 피해를 받은 이들은 대다수 국민
공존동생의 관점으로 문제 해결해야


각자도생이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의 혼돈과 혼란을 말하는 상징어이다. 문제는 이럴 때 가장 피해를 받는 이들이 대다수 국민들이라는 사실이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다. 믿을 것이라곤 오직 각자의 이권 패밀리, 가족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직 이권과 이익만 최고라고 여기는 관점 앞에 부모형제라고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갈등관계가 되면 서로 물고 뜯으며 치고받고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는 오히려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도덕적 자율성과 합리적 이성을 가진 존재가 핏줄과 이권의 패밀리에 갇혔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각자도생이 심화될수록 사회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믿음과 신뢰, 우리라는 개념을 파괴하여 지금까지 지켜왔던 사회적 자원을 갉아먹게 될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에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런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기만 살겠다고 너와 나를 분리하고 국민들을 이간질하며 네 편 내 편을 갈라치기한 결과, 궁극적으로 공도동망(共倒同亡)을 빚었다는 것을. 아포리아의 사회에선 지금까지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달아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각자도생이 아니라 공존동생(共存同生)의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현재의 위기와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양치기 기게스는 우연히 자신의 종적을 감출 수 있는 불가사의한 반지를 손에 넣고 그 힘으로 왕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종적을 감출 수 있어도 존재를 감출 수는 없다. 자신의 종적을 감출 수 있다는 착각이 지금의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의 전력이나 종적을 감출 수 있는 시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참다운 삶과 행복은 정의와 평등을 지키고 나서야 가능해진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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