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경제인협회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변신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한경련이 아니라 한경협이다.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윤리헌장도 채택했다. 류산 풍산그룹 회장은 신임 회장으로 선임됐다. 4대그룹의 완전한 합류는 여전히 미지수다.
전경련은 22일 임시총회를 열고 명칭 변경, 산하 연구기관과의 통합 등의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을 의결했다.
‘정경유착’이라는 전과를 지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윤리위원회 설치를 정관에 못박았다. 하지만 위원 선정, 위원회 결정 구속력 확보 등 세부 사항은 ‘추후 확정’이다. 향후 윤리위 운영이 독립적이고 실질적 활동력이 담보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류산 풍산그룹 회장은 이날 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류 회장은 “단순한 준법 감시의 차원을 넘어 높아진 국격과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리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경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윤리헌장을 채택했다. 헌장에는 ‘외부 압력이나 부당한 영향을 단호히 배격하고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대·중소기업 협력 선도 등의 원론적 구호도 있었다.
4대그룹 합류는 요상한 모양새가 됐다. 이날 총회에서 전경련과 흡수·통합 결정된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회원사가 한경협 회원사를 겸한다는 궁색한 논리가 동원됐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전경련에서 탈퇴했던 4대 그룹은 산하 연구기관인 한경연에선 여전히 회원사 자격을 유지했다. ‘한경연과 전경련이 통합됐으니 한경연 회원사도 한경협 회원사’라는 식이다.
4대그룹이 향후 어떤 절차를 밟을지 지켜봐야 한다. 삼성그룹 5개 계열사(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SK그룹 4곳(SK(주)·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 현대차그룹 5곳(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 LG그룹 2곳((주)LG·LG전자) 등이 한경연 회원이었다가 한경협 회원으로 합류하는 곳이다. 각사 이사회에서 한경협 회원사 자격 수용 여부를 검토한다.
최근 삼성증권은 이사회에서 한경협 회원사 자격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16일과 18일 두 차례 연이어 열린 회의에서 전경련 혁신 의지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를 그룹사에 전달한 바 있다. 다만, ‘정경유착 행위가 있으면 즉시 탈퇴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고 각사 이사회가 가입 여부를 결정하라고 권고했다.
전경련 시절 추진한 한일 미래기금의 정치·사법적 성격 규정도 주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적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추진한 강제징용 배상 방안의 하나로 추진한 한일 미래기금은 양국 기업이 낸 후원금으로 인적교류 사업 등을 벌일 예정이다. 아직까지 후원금을 낸 기업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4대그룹 한경협 합류가 확정되면 사업이 본격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기금은 형식상 양국 기업의 자발적 사업이지만 실질은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동된 결과물에 가깝다. 과거 문화체육 사업 확대를 표방하면서 기업의 뒷돈 모금 창구로 활용됐던 K스포츠·미르재단과 미래기금이 유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시민사회에선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경제금융센터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금융정의연대 등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경유착과 재벌특혜, 대기업감세와 규제완화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전국경제인연합회과 한국경제인협회는 즉각 해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일으키고도 일말의 책임도 반성도 없이 전경련 재가입을 완료했거나 추진 중인 4대 재벌대기업 총수는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협의 정관개정, 회원사 확정 등은 오는 9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