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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방준석이 남긴 선물 ‘Tempest’

방준석 1주기 추모 음반 'Tempest' ⓒONEWON

어떤 음반은 좀처럼 시작하기 어렵다. 듣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고, 음악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을텐데 도무지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 없는 경우다. 실제로 방준석의 [Tempest] 음반을 듣기 위해서는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음반은 방준석의 유작으로 지난 3월 23일 선을 보였다. 하지만 다섯 달이 지난 뒤에야 겨우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대 아래에서 그를 지켜본 음악팬 중 하나이거나, 영화 속에 흐르는 그의 음악을 들었던 관객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아니다. 그를 만난 적이 있긴 하다. 어떤 심사장에서 그와 함께 심사를 했던 너다섯 시간 정도의 기억이 있다.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한국 최고의 음악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그는 조금도 잘난척하거나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반응할 뿐이었다. 세상에 로맨틱 영화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알았다.

한국에서 음악을 좀 듣는 사람이라면 그의 음악을 만나지 않았을 리 없다. 1994년 이승열과 함께 한 밴드 ‘유앤미 블루’로 등장한 그는, 이후 두 장의 유앤미 블루 음반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새겼다. 이런 음악이 한국어로 나와야 했을 때 정확하게 응답한 음반이었음에도, 당시 폭발적인 반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작품의 가치와 대중의 반응은 자주 어긋난다.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은 그 때 작품을 알아보지 못한 이들의 알리바이로 활용되기 일쑤다.

그 후 방준석은 영화음악가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너는 내 운명’, ‘짝패’, ‘라디오 스타’, ‘사도’, ‘박열’, ‘신과 함께’, ‘자산어보’, ‘모가디슈’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 음악을 담당하며, 성장하는 한국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흐르던 ‘비와 당신’은 밋밋했을 뻔한 영화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그의 감각이 장르의 어법을 장악하는데 국한되지 않음을 충분히 보여줬다. 

좋은 뮤지션을 영화계에 빼앗긴 듯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던 이들에게 2009년 유앤미 블루의 재결성 소식은 펄쩍 뛸만한 낭보였다. 방준석과 이승열은 다시 새로운 곡을 써냈고, 그 곡들로 EBS 음악프로그램 ‘SPACE 공감’에서 공연까지 했다. 음반만 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음반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그 공연을 지켜보았던 나는 또 한 장의 명반을 만날 것이라는 예감으로 들떴었는데, 이제 몇몇 관객들의 기억으로만 남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지난 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음악가의 작업이 돌연 멈추었다. 한창 일할 나이였다. 더 살아주었으면 좋았을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다. 운명은 자주 제멋대로 비정하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한국영화에서도 그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영화를 보는 일이 쓸쓸해져서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에 극장을 떠나고 싶어진다.

[Tempest] 음반은 나 같은 음악팬, 영화팬을 위한 선물 같다. 그의 1주기를 추모하는 음반에는 방준석이 직접 부른 노래만 19곡이 담겨있다. 음반을 들으면 안다. 그가 빼어난 송라이터이기만 했던 게 아니라 탁월한 보컬리스트였다는 사실을. 직접 부른 ‘라디오 스타’의 주제곡 ‘비와 당신’을 듣고 있으면 숱하게 들었던 곡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지워진다. 영화 ‘꽃을 든 남자’부터 시작해 ‘후아유’, ‘...ing’, ‘고고70’의 수록곡으로 이어지는 노래들은, 20년도 더 된 옛 영화의 시간으로 듣는 이를 데려간다. 지금보다 젊었던 자신과 그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 하던 이들의 기억으로 끌고 간다.

무대 위에서 영화 뒤로 자리를 옮긴 음악가가 공개하지 않았던 곡들 가운데 6곡까지 담아낸 음반은, 때때로 뒤늦은 작별인사처럼 찌른다. “안녕이란 말은 차마 못 한 채 / 그대를 떠나보내네”(‘안녕이란 말도 못하고’)라는 노랫말을 접하면 무심히 음악을 듣기가 불가능하다. 부드럽고 애절한 노래들은 영화 속 노래가 아니라 영화 너머 어딘가에서 보내 온 유서 같다.

테크놀로지는 이렇게 이별할 기회를 준다. 그리워할 시간을 선물한다. 참 좋은 음악가를 잃었다. 그러나 음악이 남았다. 삶도 음악도 영영 모르겠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 같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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