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을 위한 정권의 폭주가 초유의 무차별 해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21일 방송통신위는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을 해임했고, 김기중 이사는 해임 예정이다. 이미 KBS 남영진 이사장과 윤석년 이사가 해임됐고, 정미정 EBS 이사와 한승혁 방송통신위원장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고, 해직 기자 출신인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도 해촉 됐다. 빈자리에 친정부·극우 인사들이 꽂히는 것을 봐도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해임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걸핏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가 방송을 사유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정당한 명분도, 법률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채 빌미를 찾아 ‘묻지마 해임’으로 몰고 간다. 이는 전현희 권익위원장 등 전정부 시절 취임한 기관장을 먼지떨이 식으로 뒤져 출퇴근 시간이라도 걸어서 물러나게 하거나 해임하려 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보장하고, 방송법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땡전뉴스’와 보도지침 등을 통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헌법과 법률, 민주적 경험을 무시한 채 공영방송을 거머쥐거나 아예 망가뜨리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TBS는 ‘시범 케이스’에 해당한다. 여당이 지배하는 서울시와 시의회가 돈줄을 막더니 친정부 인사를 이사장으로 보내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 KBS 역시 시청료 분리징수로 사실상 돈줄을 틀어막았다. 이사회 장악 뒤 KBS와 MBC 사장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를 진두지휘하기 위해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필요한 셈이다.
당장 중요한 일은 법원이 해임 조치를 막는 것이다. 해임, 면직된 이들 상당수가 부당함을 지적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31일 권태선·남영진 ‘해임 이사장’의 집행정지 심문이 열린다. 몇 년이 걸릴 수 있는 본안소송에 앞서 가처분 인용을 통해 언론장악 폭주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방송독립성의 가치를 재확인함은 물론 제도적 미비를 악용하거나 사소한 비위에 해임의 칼날을 날리는 초법적, 월권적 행정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 국민의 의사와 법률이 정한 절차를 모두 위배한 정치적 해임을 법원이 바로잡아야 한다.
방송독립성은 누가 대신 가져다주지 않는다. 방송 구성원들은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는 전화위복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싸워야 한다. 국민들도 피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성과인 방송독립성이 파괴돼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관심과 참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국회는 방송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해묵은 약속을 실천으로 옮겨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영방송에 권력의 손길을 뻗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국민의 뜻을 얻으려 하기보다 친정부 방송을 스피커로 삼아 눈과 귀를 속이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정치세력은 이 교훈을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