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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초상화,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다

지인의 집을 방문하면 벽에 가족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관공서마다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던 때도 있었지요. 사진이 발명되기 전에는 초상화가 그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초상화는 서양 미술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분야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묘사하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늪지로 사냥을 나간 네바문 Nebamun Hunting Fowl in the Marshes Fresco c.1350B.C ⓒ대영박물관, 런던

1820년 그리스 고고학자가 발굴한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입니다. 무덤의 주인공은 테베의 있는 신전들의 곡물을 관리하던 중간 계급의 ‘네바문’이라는 사람입니다. 이집트 미술은 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내세에서의 삶을 위한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부활하고 난 뒤의 모습도 지금의 모습과 같아야 했기에 최대한 그 사람을 정확하게 묘사해야 했습니다.

이때 적용된 것이 소위 ‘정면성의 법칙’입니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가슴과 눈동자는 정면을 보아야 하고 얼굴은 옆얼굴이어야 하는 등,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모든 초상화가 그려졌습니다. 이후 이 기법은 유럽으로 건너가 꽤 긴 시간 초상화를 그릴 때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르비노 공작부부의 초상화 The Duke and Duchess of Urbino c.1465 tempera on wood 33cm x 47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화에는 옆얼굴이 담겨 있습니다. ‘우르비노 공작’은 르네상스의 발상지 역할을 한 피렌체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피렌체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주변 나라와 전쟁을 할 때 용병을 동원했는데, 우르비노 공작은 피렌체의 용병 대장으로 큰 역할을 한 사람이었지요.

이 초상화는 이집트 초상화처럼 옆얼굴 묘사에 충실했고, 젊었을 때 마창 시합을 하다가 코뼈가 내려앉은 공작의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공작 부부가 다스리던 영지가 배경이 되었는데, 공작의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자의 얼굴색이 남편과 비교해 너무 하얗습니다. 공작 아내의 흰 얼굴은 르네상스 시대 여인들의 유행이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란 암시도 담고 있습니다.

자화상 Self-portrait 1500 oil on lime 67.1cm x 48.9cm ⓒ알테 피나코테크, 뮌헨

미술사에서 최초로 자신의 저작권을 표기한 화가이며, 최초의 순수 풍경 화가로 이름을 알린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입니다. 이 작품은 29세 생일 직전에 그린 것으로 그가 남긴 3점의 자화상 중 마지막 작품입니다. 자신을 예수의 모습처럼 묘사했고 마치 축복을 내려 주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정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1420년경부터 북부 유럽에서는 몸을 살짝 돌린 포즈가 시작되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1500년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이 시기에 세속적인 인물의 정면 초상화는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몸을 비스듬하게 돌린 초상화는 화가들의 기술의 정도를 보여주는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후 정면 초상화는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상화 Portrait of Pope Julius II 1511 oil on poplar wood 108.7cm x 81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드디어 정면도 측면도 아닌 초상화가 등장했습니다. 라파엘로의 교황 ‘율리우스 2세’ 초상화는 라파엘로가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는 천재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율리우스 2세는 예술을 후원한 교황이었지만, 교황의 권위와 교황령의 확장을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아 ‘무서운 교황’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이 작품에선 그런 교황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율리우스 2세가 입고 있는 붉은 색 옷과 모자, 의자가 모두 같은 색처럼 보이지만 재질에 따라 색상이 조금씩 다릅니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는, 이 작품과 관련해 율리우스 교황이 죽은 후에 ‘초상화가 살아있는 것처럼 너무 사실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초상화를 볼 때마다 (교황이) 살아 있는 것 같아 떨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여러 버전과 복사본들이 있는데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 원본이거나 중요 버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1970년에 원본은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작품이라고 의견이 모아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초상화에서 중요한 것이 자세일까요? 모델 아닐까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어도 맑고 깨끗한 사람은 그렇게 담기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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