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위생랩 1위 업체 '크린랲'이 쿠팡으로 돌아왔다. 양사 갈등으로 납품이 중단된 2019년 7월 이후 4년 만이다. 공정위 제소와 민사소송까지 진행했던 크린랲이 다시 쿠팡의 손을 잡은 사례가 쿠팡과 갈등을 겪고 있는 LG생활건강, CJ제일제당 등 '반쿠팡연대'에도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24일 쿠팡에 따르면 크린랲과 직거래를 지난 20일부터 재개했다. 이번 크린랲의 복귀로 로켓배송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 상품들은 크린랲을 비롯해 크린백, 크린장갑, 크린 종이 호일 등 총 40여종이다. 양사는 향후 로켓배송 취급 제품을 더 늘릴 방침이다.
크린랲은 식품 보관에 사용하는 비닐랩 부분에서는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앞서 크린랲은 2016년부터 대리점을 통해 쿠팡에 제품을 공급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쿠팡은 로켓배송 물량에 대해 본사와의 직거래를 요구했고, 크린랲이 이를 거부하자 쿠팡은 기존 대리점과의 직매입 거래를 중단했다.
이에 크린랲은 같은 해 7월 쿠팡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하는 '갑질'을 벌였다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쿠팡과 '갑질 논쟁'을 벌인 크린랲은 2020년 8월에는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하고, 쿠팡은 자사 PB(자체브랜드) 비닐랩에 크린랲과 비슷한 포장을 사용하면서 상표권 소송까지 벌어져 갈등은 극에 달했다.
쿠팡과 격한 갈등을 벌이던 크린랲이 다시 쿠팡으로 돌아온 배경에는 법원이 쿠팡의 손을 들어준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2020년 4월 크린랲이 쿠팡을 상대로 제소한 공정거래법 위반 건에 대해 법 위반 사실이 없다고 보고 무혐의 처분했다. 공정위 측은 쿠팡의 발주 중단 행위가 크린랲 대리점에 불이익을 주지 않은 점을 들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법원도 쿠팡의 손을 들어줬다. 2021년 1심, 2022년 9월 2심에서 모두 크린랲이 패소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는 "이 사건 공급계약에 따라 쿠팡이 계속하여 발주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쿠팡의 발주 중단이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크린랲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민사소송에서 쿠팡이 최종 승소했다.
다만 상표권 소송은 크린랲이 승소했다. 지난 2022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2부는 크린랲이 쿠팡을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금지 청구소송에 대해 원고(크린랲) 일부승소로 판결하고 청구금액 6천만원 중 2천만원을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쿠팡-CJ제일제당·LG생활건강 갈등 해소는 언제쯤?
업계는 쿠팡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이커머스의 영향력이 커진 있는 상황에서 점유율 1위인 쿠팡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쿠팡은 올해 1분기 온라인 시장 거래액 기준 점유율 21.8%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네이버로 점유율 20.3%다.
특히 쿠팡은 매출 규모에서도 오프라인 유통을 위협하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쿠팡의 매출 규모는 7조6,749억원이다. 2분기만 놓고 봤을 때 유통업계 전통의 강자인 이마트(7조2,711억원), 롯데쇼핑(3조6,222억원)을 앞지른 것이다. 영업이익에서도 쿠팡은 올해 2분기 1,94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롯데쇼핑(514억원), 이마트·신세계 유통사업 부문(492억원)을 앞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을 떠난 크린랲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2015년 비닐랩 부문에서 크린랲은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최근 70%대까지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1위 자리는 지켰지만, 점유율 규모에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크린랲이 향후 점유율 회복과 매출 상승을 위해 쿠팡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크린랲 측은 "쿠팡과 직거래를 재개한 사실 외에는 달리 밝힐 입장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크린랲의 쿠팡 복귀로 현재 쿠팡과 대립 중인 다른 제조 업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현재 쿠팡은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과 납품단가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LG생활건강이 2019년 쿠팡을 공정위에 신고한 뒤 현재까지 코카콜라를 비롯한 LG생활건강의 제품은 쿠팡 로켓배달에서 볼 수 없는 상태다. CJ제일제당도 납품 단가 견해차를 이유로 쿠팡에 햇반과 비비고 만두 등 자사 제품을 납품하지 않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신세계, 마켓컬리와 협업을 진행하는 등 쿠팡 외의 이커머스와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6월 신세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전날부터 신세계 유통3사(이마트·SSG닷컴·G마켓)와 함께 비비고 납작교자, 햇반 컵반, 떡볶이, 붕어빵 등 신제품 13종을 선출시해 판매 중이다. 컬리와는 '햇반 골든퀸쌀밥'을 독점 출시하기도 했다.
업계는 쿠팡과 LG생활건강·CJ제일제당 간의 갈등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LG생활건강과 관련해서는 공정위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만큼 재판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양사 간 갈등관계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공정위는 LG생활건강이 제기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고 쿠팡에게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쿠팡은 지난해 2월 공정위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해 이달 변론이 재개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해당 재판이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쿠팡과 CJ제일제당·LG생활건강 관계의 변화는 없지만 양사 간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뤄지는 기업들인 만큼 결국 거래조건의 합의가 갈등 관계를 풀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장사하는 기업들이니 기본적으로는 양사 간에 이익이 맞으면 거래는 언제든 재개할 수 있고, 안 맞으면 안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