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중국만도 못한 삐리리한 협상력을 보여준 윤석열 정권

아무리 생각해도 윤석열 정권의 협상 능력이 너무 삐리리해서 참을 수가 없다. 여기서 ‘삐리리’는 일종의 욕 같은 것인데, 칼럼에 욕을 쓸 수 없으니 묵음 처리한 것이다. 따라서 독자분들은 저 ‘삐리리’라는 표현 대신 평소 하고 싶었던 욕을 마음껏 사용해 주셨으면 한다. ‘삐리리’라 쓰고 ‘X같다’라 읽으시면 된다는 뜻이다.

마침내 일본 기시다 정권이 오염수를 방류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후폭풍이 진짜 만만치 않다. 중국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일본 수산물 자체는 물론 수산물이 재료로 사용된 제품들까지 모조리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은 일본 수산물 수출액 가운데 22%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다. 여기에 수출 비중이 19.5%에 이르는 홍콩마저 수산물 수입 금지 지역을 대폭 확대할 경우 일본은 수산물 수출 시장의 40% 이상을 잃는다. 이 긴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본이 엿됐다는 것이다.

이경촉정의 나라 중국

중국은 우리의 자본주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중국은 ‘경제적 접근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다’는 이경촉정(以經促政)을 기치로 세계 각 나라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퍼주기도 한다. 이들이 ‘베푸는’ 혜택은 ‘기브 앤 테이크’가 상식으로 자리를 잡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1997년 말 동남아시아에서 연쇄적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동남아 각 나라의 달러 대비 화폐 가치는 폭락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 위기가 자국의 화폐 가치를 폭락시킨 면도 있지만 ‘화폐 가치 하락이 수출 상승으로 이어져 위기 탈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각국 정부가 자국 화폐 가치 하락을 방조한 탓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이때 중국마저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노라며 위안화 가치를 절하했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경제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을 것이다. 당시에도 수출하는 물건 값이 싼 것으로는 중국을 당할 나라가 없었다. 중국이 마음만 먹었다면 한국 등 외환위기에 몰렸던 국가들은 화폐 가치 폭락은 폭락대로 겪고, 수출은 수출대로 부진한 최악의 상태를 맞았을 것이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대학생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와 오염수 방류 묵인 윤석열 정부 규탄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08.25 ⓒ민중의소리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막대한 수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은 끝내 위안화 절하를 하지 않았다. 이경촉정의 가치가 빛을 발한 것이다. 중국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한 대신 “역시 아시아의 맏형답다”는 칭송을 얻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경제적 손실은 너끈히 감수하고도 남는 배짱,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들이 이해할 수 없는 중국 경제의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돌아서면, 중국의 무역 보복 행태는 상식의 선을 훌쩍 뛰어넘는다. 중국은 2008년 12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는 이유로 당장 프랑스와 진행하던 에어버스 구매 협상을 중단했다.

2년 뒤인 2010년 노벨상 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중국은 노르웨이 연어의 수입을 사실상 금지했다. 2010년 92%를 차지하던 노르웨이의 중국 연어 수출 비중은 이듬해 상반기 29%로 폭락했다.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양순시선이 충돌하자 중국은 즉각 중국인의 일본 관광 금지와 희토류 수출 중단이라는 강력한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결국 중국의 강력한 무역 보복을 견디다 못한 일본은 항복 선언을 하고 만다. 중국은 이런 나라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혹시 나보고 친중파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 나는 전혀 친중파가 아니다. 나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성향을 매우 싫어하고 국가 주도의 폐쇄적 경제 시스템도 대단히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중국을 좋아하냐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싫어한다 쪽에 가깝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 세력 사이에서 살아나가야 한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야 틈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일본은 중국을 잘 못 건드렸다. 그리고 이런 중국의 단호한 태도와 비교할 때 그들의 발가락 때만도 못한 삐리리한 외교력을 보여준 윤석열 정권의 무능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에임 하이 전략

협상의 기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제학 분야가 있다. 이른바 ‘협상의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협상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 ‘에임 하이(Aim High)’ 전략이라는 것이다.

어떤 협상에서도 일단 가장 먼저 제시하는 숫자는 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수치여야 한다. 그게 너무 터무니가 없어서 당연히 그 숫자로 협상이 안 될 줄 알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 제시하는 숫자가 하나의 기준이 돼 실제 협상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애리조나 대학교 심리학과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 교수는 이에 관해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치알디니 교수는 거리를 지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이번 주말에 자원봉사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부탁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핑계를 대며 참여를 거절했다.

치알디니 교수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이색적인 접근 방법을 펼쳤다. 먼저 “8주 동안 주말마다 자원봉사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하루도 할까말까한데 8주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요청을 거절했다.

이때 치알디니 교수가 다시 다른 요청을 한다. “그렇다면 이번 주말 딱 한 번만 봉사활동을 해 주세요”라고 물은 거다. 그랬더니 순순히 응해주는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게 바로 에임 하이 전략의 효과다.

이런 사례도 있다. (내가 매우 싫어하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정 상태의 악화로 2년 동안이나 연방공무원의 연봉을 동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레이건은 3년째에도 연봉을 동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당연히 연방공무원들의 심한 반발이 예상됐다.

이때 레이건은 “올해 경기가 좋지 않아 예산이 없다. 그래서 연방공무원의 연봉을 5% 삭감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 말이 나오자 연방공무원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심각한 반발과 시위가 이어졌다.

레이건은 이를 2주 동안 조용히 지켜보다가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이 겪을 고충을 밤을 새워 고민한 결과 연방공무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연방공무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위를 철회했다. 레이건은 진짜 삐리리한 대통령이었지만 이 정도의 협상 전략은 가지고 있었다.

협상을 할 때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 나는 기시다 정권이 방류한 오염수가 안전하냐 안 안전하냐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그럴 과학적 식견도 없다.(그래도 상식적으로 그게 안전할 리가 있냐?)

문제는 이런 엄청난 외교적 사건이 벌어졌을 때 윤석열 정권이 보여주는 외교 능력이다. 이럴 때에는 무조건 첫 협상 때 우리 쪽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숫자를 내세워야 한다. 그래야 타협 결과가 우리 쪽에 유리하게 더 다가온다. 설령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용인해 주는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일단 협상 테이블에서는 중국이 보여준 일본 수산물 전면 수입금지 같은 강력한 한 방을 앞세워 놓고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정신 나간 정권은 애초부터 “일본이 방류하는 오염수는 안전해요” 이 지랄을 하고 앉았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수산물 시장에서 수조물을 먹는 처참한 퍼포먼스까지 벌이면서 말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국회의원들을 볼 때에는 제발 국회의원도 시험 쳐서 뽑자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게 지능 있는 생명체가 할 일이냐?

그래서 우리는 이번 일본 오염수 방류 사태로 무엇을 얻었나? 개뿔도 얻은 게 없다. 회 좋아하는 국민들만 불쌍해졌다. 진짜 엽기적인 협상 능력이다.

나라가 이렇게 개판으로 운영되는데 대통령이라는 자는 아직도 일본 뒤나 빨아주고 있다. 내가 사는 나라꼴이 이따위라는 사실에 서글픔만 북받쳐 오른다. 이 삐리리한 정권을 앞으로 4년이나 참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 처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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