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염수 방류 지지한 미국, 허드슨강 원전 냉각수 방류는 금지

“1+1을 100이라 하는 사람들”이라며 오염수 반대 시민 비하한 윤석열 대통령, 원전 냉각수 방류 금지한 뉴욕에는 뭐라 할까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 자료사진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 페이스북

미국이 지난 25일 태평양 건너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를 지지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은 일본의 안전하고 투명하며 과학에 기반한 절차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 미 국무부 성명)

그런데, 최근 미국 뉴욕주는 정반대 취지의 법안을 제정했다.

캐시 호철(Kathy Hochul) 미 뉴욕 주지사는 지난 18일 허드슨강으로 방사성액체폐기물 방류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태평양 건너에서 벌어지는 오염수 해양방류는 지지했지만, 막상 자국 내 강과 바다에 방류하는 방사성액체폐기물 방류는 금지한 것이다. 미국 뉴욕주 여·야 상·하원 의원들이 함께 법안 제정에 힘을 보탠 덕분이었다. 민주당 의원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도 방사성액체폐기물 방류에 반대했다. 이는 집권하기 전까지 일본 오염수 해양방류를 반대하다가, 집권한 후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에 대해 “과학적”이라며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우리나라 여당과도 비교된다. (▶ 미 뉴욕주 보도자료)

뉴욕 여·야 상·하원 의원이 한마음으로 제정한 이 법안은 원전 ‘냉각수’ 방류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원전 핵연료와 직접 닿지 않은 냉각수를 핵연료에 직접 닿아 오염된 일본 오염수와 비교하기는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일본 오염수가 압도적으로 위험하다. 그런데 냉각수 방류를 금지했다고 하니, 오염수 방류 반대 시민을 “1+1을 100이라는 사람들”이라고 비하한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알 수 없다.

뉴욕 주지사가 원전 오염수 허드슨강 방류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자, 풀뿌리 환경교육 단체(Grassroots Environmental Education)는 "승리!"라는 문구가 적힌 '인디언포인트' 원전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단체는 "뉴욕의 승리를 발표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허드슨강 살리기 법안에 서명한 캐시 호철 주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Grassroots Environmental Education 페이스북

원전 냉각수 방류 금지한 뉴욕
여·야 상·하원 의원들 대동단결
민주당 의원 “위대한 환경 승리”
공화당 의원도 “상식적 조치”


미국 뉴욕주 동부와 동남부로 허드슨강이 흐른다. 총길이가 약 500km에 이르는 이 강의 하구로 가면 뉴욕시 맨해튼이 나온다. 2009년 1월 뉴욕 라과디아 항공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비상착륙으로 승객 전원이 구조된 ‘허드슨강의 기적’이 일어난 곳이다. 최근 크리스토퍼 논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원자 폭탄의 아버지”이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묘사되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자란 곳도 이곳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웨스트 88번가다.

이 강의 중·하부 뷰캐넌 지역에는 인디언포인트(Indian Point)라는 원자력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허드슨강의 체르노빌”이라 불리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원전은 60년 넘게 뉴욕에 전기를 공급하다가, 지난 2021년 4월 영구 정지됐다.

이 원전을 인수한 원전 해체 전문기업 홀텍(Holtec)은 폐연료봉을 식히는데 130만 갤런(gal)의 강물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방대한 냉각수를 허드슨강에 방류할 계획이었다. 회사 입장에서 방류는 가장 손쉽고 저렴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방류 금지 법안이 제정되면서 홀텍의 냉각수 방류 계획은 무산됐다.

130만 갤런을 리터로 따지면 약 492만 리터로, 일본이 지난 24일부터 17일 동안 1차로 방류하는 양보다 적은 양이다. 무엇보다 이 냉각수는 핵물질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은 비교적 덜 위험한 물로, 굳이 비교하자면 녹아내린 핵연료와 지하수·빗물·바닷물이 뒤섞인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가 훨씬 위험한 방사성액체폐기물이다.

2023년 8월 16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센터에는 이같이 뉴욕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이날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에게 원전 오염수 허드슨강 방류 금지 법안에 서명할 것을 촉구했다. ⓒ뉴욕주 상원의원 셸리 메이어 페이스북

지역사회는 냉각수 방류를 강력하게 반대해 왔다. 특히, 환경단체인 리버키퍼(Riverkeeper) 등 시민사회는 해당 냉각수를 방류하지 말고 최소 12년 이상 보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12년 이상 보관을 요구한 이유는 한·일 시민사회, 비판적 전문가 등이 일본에 10년 이상 오염수를 더 보관할 것을 요구한 이유와도 같다. 냉각수에서 잘 걸러지지 않는 방사성물질 삼중수소가 붕괴할 때까지 좀 더 보관하며 더 나은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약 12.3년이다. 12년이 지나면 절반의 삼중수소가 저절로 헬륨으로 붕괴한다. (▶ 리버키퍼 성명)

지역사회가 이 같은 목소리를 함께 냈고, 결국 여야 정치인들도 결합했다. 피트 해크햄 상원의원과 다나 레벤버그 하원의원은 올해 2월 뉴욕주 수역에 방사성물질 배출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호철 주지사가 원전 냉각수 방류 금지 법안에 서명하자, 뉴욕 민주당·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은 각자 환영 입장을 밝혔다.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해크햄 상원의원은 열정적으로 싸운 주민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에게 공을 넘기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환경 승리 중 하나”라고 반겼다. 같은 당 레벤버그 하원의원 역시 “이는 우리 지역구뿐 아니라, 그 너머의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팻 라이언 하원의원“오랫동안 대기업들이 지역사회의 안전을 무시한 채 독성 폐기물을 허드슨강에 버려왔고, 홀텍의 방사성폐기물 투기 계획도 이와 다르지 않다”며 뉴욕 주지사의 서명을 반겼다. 공화당 마이크 로러 하원의원“매우 기쁘다”고 했고, 공화당 마크 몰리나 하원의원“이것은 천연 보물을 보존하기 위한 상식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성액체폐기물 방류를 막는 것은 미국 보수정당 의원 말처럼 “상식적 조치”지만, 우리나라 보수정당에서는 보기 힘든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권 모습과 크게 다른 지점이다. 우리나라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집권 전까지 오염수 해양방류를 반대하다가, 집권 후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여당은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을 “과학적”이라며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심지어 한 여당 의원은 “오염수”라는 표현을 두고 북한의 “용어혼란전술”이라며 “오염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특정 이념에 매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디언포인트 원전 ⓒ리버키퍼 영상 자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94년에 방사성폐기물 관리 9가지 기본원칙을 정한 바 있다. 이 기본원칙을 명시한 최상위 안전기본문건(IAEA SS 111-F, principles of radioactive waste management)에 따르면 IAEA 회원국 최고 전문가들은 방사성폐기물 관리목표로 ① 인간 및 인간환경의 안전을 확보 ② 현재와 미래의 안전을 확보 ③ 후대에게 부당한 부담을 전가시키지 않음 등을 정했다.

이 같은 관리목표를 위해 ① 인간의 건강보호 ② 환경보호 ③ 타국보호 (국경을 넘어 보호) ④ 후손보호 (미래세대의 보호) ⑤ 후손부담경감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 ⑥ 국가법체계정비 ⑦ 폐기물발생조절 (방사성폐기물 생성제어) ⑧ 방사성폐기물의 발생과 관리의 상호관계 고려 (방사성폐기물 생성 및 관리 상호의존성) ⑨ 시설의 안전 등의 원칙을 세웠다.

이 중 타국보호와 후손보호 등의 원칙은 이번 일본 오염수 해양방류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기본원칙이다. 다만, IAEA는 2006년 새로운 기본안전원칙(IAEA Safety Standards Series No. SF-1)을 정하면서 이를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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