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기록에서 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빼고 수사기록의 경찰 이첩도 보류하라고 수사단을 압박하는 과정에 윤석열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해 수사외압을 행사한 초유의 사건이다.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28일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사건 관련 진술서를 제출했다. 10여 페이지에 이르는 진술서는 당시 정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진술서에 따르면 지난 7월 30일 박 대령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수사결과를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그런데 다음날인 31일 갑자기 예정됐던 언론브리핑이 취소되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부대로 복귀한 박 대령은 같은 날 오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혐의자와 혐의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유 법무관리관과의 통화를 마친 후 박 대령은 김 해병대 사령관에게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겁니까”라고 물었고, 김 사령관은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 주재 회의간 해병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VIP는 대통령을 지칭한다. 박 대령은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되물었고 김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는 것이 진술서의 내용이다.
채 모 상병 사망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의문은 왜 장관이 결재까지 한 사안이 하루만에 번복되었는가다. 지금까지는 국가안보실 보고를 기점으로 상황이 급변했다는 점에서 수사외압이 대통령실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주장은 처음 나왔다. 박 대령 측에서 파악한 바로는 대통령실 회의에서 국가안보실이 수사결과를 보고했고, 윤 대통령이 격노하면서 이종섭 국방부장관을 연결하라고 하고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대통령이 수사에 직접 개입한 사건으로 명백한 직권남용에 해당된다. 수사외압의 몸통이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이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수사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국방부의 수사결과 경찰 이첩 보류 이후 채 상병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지지부진하고 오히려 해병대 수사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다. 게다가 대통령을 포함한 ‘수사외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수사가 필요해졌다. 특검 등의 제3의 권력기관으로 관련 수사를 넘기고, 국회 국정조사 등으로 관련 의혹을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수사에 개입한다면 과연 한국에서 누가 권력기관의 수사를 믿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