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 갑상선암 공동소송 9년, 저선량 방사선 피폭을 고발하다

2014년 11월 15일 월성핵발전소 주변 마을에 게시한 공동소송 원고 모집 현수막 ⓒ필자 제공


2014년 겨울과 이듬해 봄, 필자는 월성핵발전소 반경 10킬로미터 주변 마을에 현수막을 수십장 달았다. 비슷한 기간에 고리, 한빛, 한울 핵발전소 주변 마을에도 현수막이 달렸다. 다름 아닌 갑상선암 공동소송 원고를 모집하는 현수막이었다.

핵발전소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5년 이상 거주한 이후에 갑상선암 수술을 한 주민을 원고로 모집했다. 4개 핵발전소 지역에서 618명의 주민이 원고로 참여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618명 규모도 규모지만, 시민단체를 믿고 소송비를 납부한 주민들의 용기가 더 놀라웠다. 소송 상대는 한국수력원자력이었다. 핵발전소 인근지역의 정치 및 경제 권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굴지의 공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길을 택한 것이다.

2015년 2월 25일 소송장을 부산지방법원에 제출하면서 법정 투쟁은 시작되었고, 2022년 2월 16일 1심에서 패소했다. 9년을 이어온 공동소송은 8월 30일 항소심 선고에서도 패소했다.

원고들이 한국수력원자력에 청구한 배상 금액은 1500만 원이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누가 내 팔목을 부러뜨려 평생 제대로 못 쓰게 만들었다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 수억 원도 부족하다. 하물며 암을 발생시켜 갑상선을 빼앗고 평생 호르몬 약에 의지하며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는 배상금을 얼마나 받아야 하나?

갑상선암 공동소송 2심 선고에 따른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소송 참가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필자 제공


원고들이 청구한 1500만 원은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배상액이다. 암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의학적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하기 어려운 핵발전소의 책임을 최소한으로 물은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핵발전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이 인근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피폭량 100밀리시버트 이하에서 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핵산업계의 잘못된 주장을 인용하여 주민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극저선량 피폭의 암 발병 사례가 꾸준히 인정되고 있다. 2021년 방사선에 의한 백혈병으로 산재 판정을 받은 대한항공 승무원의 피폭량은 연간 약 2.88밀리시버트로 추정된다. 또한 우리나라 폐암 발병자 28,949명(2020년 기준) 중 1,158명~4,342명은 라돈(Rn)에 의한 방사선 피폭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폐암 원인의 4~15%가 라돈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 국민은 라돈의 연간 피폭량인 1.4밀리시버트에 최대 4,342명이 매년 폐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최소한 책임만 물은 1500만 원, 그마저도 인정하지 않은 법원

암은 여러 원인에 의해 발병하지만, 갑상선암은 방사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질병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후쿠시마현의 아동 갑상선암이 0명에서 275명(2021년 기준)으로 폭증했다.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에도 인근 주민의 갑상선암이 폭증했다.

비록 핵사고는 아니지만, 핵발전소에서 일상적으로 방출되는 저선량 방사선에 의해 618명 원고가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정황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 8월 24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 기자회견, 갑상선암 공동소송 시민지원단 등은 환경부의 ‘월성원전 주변 주민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공동소송 승소 판결을 요청했다. ⓒ필자 제공


지난 6월 8일 발표한 환경부의 ‘월성원전 주변 주민 건강영향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월성핵발전소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의 암 발병이 10~20킬로미터에 거주하는 주민보다 44%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갑상선암의 경우 비록 통계적 유의성은 확보하지 못했으나 반경 10킬로미터 이내 주민이 73%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정부가 서울대에 의뢰해 실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에서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이 핵발전소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서 150% 더 많았고, 반경 10킬로미터 이내도 80%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재판부는 역학조사 결과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원고들에게 의학적으로 명확한 인과관계 입증을 요구했다. 미국의 대법원은 역학조사에서 150% 더 많은 발병은 명확한 인과관계로 판결한다. 환경오염에 의한 질병은 의학적으로 명확한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 그래서 역학조사에서 발병이 150% 더 많이 나오면 인과관계 성립으로 보는 것이 미국 재판부다.

갑상선암의 가장 큰 발병 원인은 방사선이다. 핵발전소는 일상적으로 방사성 물질을 대기와 바다로 배출한다. 핵발전소에 가까이 살수록 갑상선암 발병이 매우 높은 것으로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방사선 외에 다른 발병 원인은 찾지 못했다. 핵발전소 반경 10킬로미터에 5년 이상 거주하고 갑상선암에 걸린 주민이 1500만 원 배상을 핵발전소에 청구했다. 당신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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