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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극단적 이념 예산, 경제는 포기하겠다는 건가

정부가 내년도 '긴축' 예산을 발표했다.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조 9천억 원 규모인데 지출 증가율이 근 20년 내 최저 수준이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사실상 줄어든 예산이다. 지난해 8월 정부가 내놓은 2024년 예상 지출 규모가 669조 7천억 원이었다. 스스로의 예측보다 줄어든 셈이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건전재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올해 2.6%에서 내년 3.9%(92조 원)로 높아진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준칙 기준인 3%를 넘어선다. 적자국채도 61조 원을 발행할 계획이다. '건전재정'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세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더해 지난해 말 내놓은 감세정책이 영향을 끼쳤다. 작년 말 세법 개정으로 법인세와 소득세가 크게 줄었다. 부자감세의 결과 세수가 줄어들었으니 적자국채를 발행해도 쓸 돈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올해 다시 세제개편을 통해 또 감세를 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긴축재정의 직격탄은 R&D예산으로 향했다. R&D 분야는 5조 2천억원(16.6%) 감액됐다. 수출 대기업에 대해서는 대규모 세액공제로 현금을 안겨 놓고, 정부의 지원이 꼭 필요한 과학기술 예산은 대폭 깎았다. 다년간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기초과학 분야를 망치겠다는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편성이다.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16조 9천억원(7.5%) 증액했다고 하지만 노령화와 의무지출을 고려하면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대신 국방예산(4.5%)과 SOC(4.6%)는 늘었다. 총선을 앞둔 정치적 고려가 드러난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정부의 씀씀이를 늘리고, 시장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투자를 담당하는 게 정부다. 하지만 내년 예산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남은 건 감세와 긴축, 그리고 실천하지도 못하는 건전재정이라는 앙상한 구호다. 윤 대통령이 기회만 있으면 중요하다고 강조해 온 극단적 이념이 이번 예산에 벌거벗은 채 담겼다. 경제는 아예 포기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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