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녹색전환을 한다고요?] 기업에 정의로운 전환의 책임을 묻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말이 있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지금 우리와 미래 세대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이해당사자도 희생되지 않고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남겨지는 이’, ‘사라지는 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다르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남겨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6개 노동조합이 연대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모임’을 꾸렸다. 하지만, 우리가 내는 목소리에 높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얼마나 귀를 기울여 줄지는 알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뜨거운 작업장에서 일하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한겨레 칼럼(8/21) 중 일부, 강조는 저자 표시)

토론회 발표 자료를 만들다가, 한 노동자의 글을 읽었다. 현장의 생생한 언어는 언제나 연구자인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내가 작성하던 발표 자료는 그가 겪은 냉혹한 현실을 담기엔 추상적이었고, 당장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으니까. 그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환 너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각자도생의 현실과 그로 인한 걱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누구도 남겨지거나 배제되지 않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인데, 현실은 ‘교과서 속’ 순진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비웃듯 전환의 모든 영향과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현실과 연구의 괴리는 존재하지만, 국내외 많은 이들이 전환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대화와 참여를 통해 피해와 부정적인 영향을 어떻게 줄여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연구와 토론회, 기사를 통해 현재 벌어지는 전환 과정에서 생겨나는 영향과 문제를 어떻게 지원하고 제도화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지만,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어떻게 평가하고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기업은 여전히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무역장벽의 ‘피해자’이며 정부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는 ‘약자’로만 그려질 뿐, 적극적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제시하는 ‘해결자’ 혹은 전환 과정에서 예상되는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조치를 하는 ‘핵심 이해관계자’로 호명되지 않는다. 기업은 여전히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이름의 무대에서 한걸음 비켜서 있다.

이 글은 정의로운 전환에 있어 기업은 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기업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제시함으로써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을 톺아볼 것이다.

왜 기업도 정의로운 전환에 책임이 있나

국내외 주요 법과 규정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국가 정책의 방향이나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정의하고 있고, 파리기후협정에서도 ‘국가적으로 규정된 우선순위에 따라 정의로운 전환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UN 글로벌 콤팩트는 전환이 산업 및 개별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며 산업이나 기업이 전환 과정에서 해야 할 도전과제와 핵심 조치 등을 제시하였다. 2023년 6월, 12년 만에 개정된 OECD 가이드라인 역시 ‘재교육과 환경 실사’를 강조하며 책임 있는 경영을 위해 기업에 정의로운 전환을 고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처럼, 최근 해외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논의할 때 ‘국가의 정책과 지원’만이 아니라 ‘기업의 책임과 조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특별지구 지정’, ‘지원센터 설립’ 등을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정의로운 전환에 책임이 있는가? ILO 지침에 따르면 정의로운 전환은 지속가능한 발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를 구체적인 목표로 구체화한 것이 SDGs(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이다. 기업은 특히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및 완전하고 생산적인 고용과 양질의 일자리 증진(8번째 목표)”과 “기후변화와 그 영향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한 행동(13번째 목표)”에 책임이 있다. 끝으로, 탄소중립에 대응하기 위한 전환 과정에서 기업 자신에게도 리스크와 기회 모두가 발생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해야 할 ‘당사자’가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기업은 정의로운 전환을 방관하거나 이로 인한 피해만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에 책임이 있는 존재로 호명되어야 한다.

현재 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렇다면, 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평가하고, 구체적으로 기업에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세계 벤치마킹 얼라이언스(World Benchmarking Alliance, WBA)는 금융기관, 시민사회 단체, 기업/산업 플랫폼, 정부기관, 연구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연합체로 주로 인권에 대한 민간 부분의 기여도나 기업의 지속가능한 책임을 평가하는 비영리 국제기구이다. 최근에는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로 관심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2021년에는,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기업의 영향과 책임 그리고 역할 등을 평가하기 위해 ‘정의로운 전환 방법론(Just Transition Methodology)’과 ‘정의로운 전환 평가(Just Transition Assessment)’를 작성하였다. WBA가 개발한 평가지표(Just Transition Indicator, 이하 JTI)와 방법론은 아직 국내외에서도 많이 시도되지 않았지만, 국가 단위가 아닌 탄소배출과 전환의 주체인 기업의 행동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도구이다.

JTI는 총 6개 주요 부문으로 이뤄졌는데, 1)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 및 이해관계자 참여, 2)정의로운 전환 계획, 3)녹색 일자리, 좋은 일자리 제공, 4)재교육과 훈련을 통한 고용 창출과 유지, 5)사회적 보호와 영향관리, 6)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과 제도에 대한 기업의 옹호와 지지 등이다. 6개 부문은 4개(각 0.5점)의 세부 지표로 구성됐으며,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문은 가중치를 부여하여 4점 만점, 나머지 네 개 부문은 2점 만점으로 총점은 16점이다. 그만큼 정의로운 전환에서 ‘대화 및 참여’와 ‘전환 계획’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5월 25일 호주 빅토리아주 헤이즐우드에서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소가 폐쇄되면서 8개 굴뚝 중 일부가 철거되고 있다. 이후 호주 정부는 2023년 3월 27일 주요 온실가스 오염국들이 배출을 줄이도록 강제하는 기후정책을 시행하는 데 큰 진전을 보였다. ⓒ뉴시스

WBA는 6개 부문으로 이뤄진 정의로운 전환 지표를 활용하여 현재 탄소중립에 따른 사업 전환을 요구받는 대표적인 세 개 업종(석유가스, 전력, 자동차 업종)에 속한 180개 기업을 평가(2021년 기준)하였다. 전체 기업의 평균 점수는 2.7점(16점 만점)으로 오직 5%(9개)의 기업만이 8점 이상을, 약 84%의 기업들이 4점 이하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정의로운 전환 대응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전력회사 중 SSE는 14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EDF, Enel, BP, ENGIE 등의 기업들이 12점을 획득했다. 예를 들어, 석유가스회사인 ENGIE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나 지역사회에 발생할 부정적인 영향을 점검한 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대화를 통해 노동자 재교육 및 재배치를 했고, 지역사회와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청년들의 취업을 지원하였다. 또한, 폐쇄한 헤이즐우드(Hazelwood) 화력발전소 부지에 150MW 규모의 배터리 에너지 저장시스템(BESS)을 설치함으로써, 부정적인 피해와 영향을 최소화하고 성공적인 전환도 이루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180개 기업 중 우리나라 기업들도 포함됐는데, SK이노베이션과 한국전력은 3점, 기아자동차가 2점, 현대자동차는 1점을 기록했고, 국내 네 개 기업 모두 여섯 개의 정의로운 전환 부문 중 두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부문에서 0점을 기록하여 ‘구체적인 전환에 대한 계획과 목표’가 미진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제도 및 정책에 대한 기업 차원의 지지’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지표와 방법론은 외주화가 만연하여 복잡하고도 계층적인 ‘한국식 고용구조와 문화’를 세세하게 평가하기엔 부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WBA가 제시한 정의로운 전환 지표와 방법론은 기업의 정의로운 전환 책임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이며, 해외 기업과의 비교 및 대조를 통해 국내 기업에도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더 큰 책임과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할 수 있는 유효한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 논의는 ‘오래된 미래’처럼 논의 자체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기업에도 책임을 요구하자는 움직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환이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그 피해를 ‘외부화’하지 않을지, 누구도 남겨지거나 사라지는 이(Leave no on behind)가 없도록 하자는 말이 공허한 약속이 되지 않기 위해, 이 글과 연구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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