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극우 행보로 나라가 아주 난리다. 연일 공산전체주의 운운하며 나라를 이념으로 갈라치기 하더니 그 유치한 이념 공세가 급기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까지 번졌다.
많은 사람들이 윤 대통령의 이런 행보에 뜨악해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 극우 행보가 국민의힘에 도움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에는 중위투표자 이론(median voter theorem)이라는 것이 있다. 양당 체제에서 선거 때마다 두 거대 정당의 공약이 비슷해지는 이유를 매우 깔끔하게 설명하는 이론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다섯 명 유권자의 이념 성향이 ①극진보 ②진보 ③중도 ④보수 ⑤극보수 등으로 골고루 퍼져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그 어느 정당도 ③중도를 선택하는 것이 선거에서 가장 유리하다는 게 이 이론의 설명이다. 상식적으로 유권자들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념의 정당에 투표한다. 그런데 한 정당이 ③중도를 선택하고 상대 정당이 ②진보를 선택할 경우 ③중도를 선택한 정당은 ③중도 ④보수 ⑤극보수 세 표를 얻을 수 있지만 ②진보를 선택한 정당은 ①극진보 ②진보 두 표만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이 경우 두 거대 정당은 ③중도를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평소에는 평등이나 복지에 관심이 아예 없는 한국의 보수 정당이 선거 때마다 유연하게 중도화 전략을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신자의 심리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이런 극우 행보를 걷고 있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럴까? 가장 간단한 추측은 윤 대통령의 뇌가 빠가사리 수준이라는 것인데, 이건 설마 아닐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이성을 동원하여 최대한 추측을 해봐야 한다. 나의 추측은 두 가지다. 첫째, 그가 배신자라는 점, 둘째 그에게는 자기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일단 윤석열 대통령이 배신자라는 사실은 대선 시절 김건희 후보자 부인과 서울의소리 기자의 전화 통화 녹취록에서 이미 밝혀진 내용이다. 당시 김 여사는 자기 입으로 “원래 우리는 좌파였다”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자기 고백대로 원래 좌파였고, 그 좌파 정부에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우파로 전향해 대통령까지 됐으니 그에게는 당연히 배신자의 초조함이 있다. 배신자는 배신을 한 이후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배신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한번 배신한 경력이 있으니 언제이건 또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눈총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신자는 누구보다도 새로 투항한 진영의 이념에 열광한다. 통일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뒤, 극우 유튜버로 돌변했던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좋은 사례다.
이렇다보니 그에게는 그를 절대 지지하는 세력이 없다. 군사 정권이 종식되고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그 어떤 대통령도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른바 ‘소가 밟아도 안 깨지는’ 지지층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자기 세력을 창출하지 못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1992년 대선 이후 무려 30년 만에 예외가 탄생했다. 좌파 출신 배신자가 엉겁결에 우파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다.
나는 윤 대통령이 본능적으로 이 두 가지 사실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 배신자 신분을 더 깨끗이 세탁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소가 밟아도 안 깨지는 지지층을 구축해야 한다는 욕망.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작금에 벌어지는 유치한 이념공세다.
배신자 처벌의 경제학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이와 관련한 일련의 경제학 연구가 있어 소개를 하려 한다. 일단 신뢰 게임(trust game)이라는 게임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경제학과 조이스 버그(Joyce Berg) 교수가 고안한 게임이다.
게임 규칙은 이렇다. 참가자를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눈 뒤 A그룹 멤버에게 1만 원을 쥐어준다. A그룹 멤버들은 이 돈 중 일부를 B그룹 멤버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얼마를 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A그룹 마음이다.
A그룹 멤버가 B그룹 파트너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제안하면 B그룹 참가자는 그 돈의 세 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A그룹 멤버가 5,000원을 제안하면 B그룹 파트너는 무려 1만 5,0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19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2023.08.31. ⓒ뉴시스
이 과정이 끝나면 게임의 주도권은 B그룹 멤버에게 돌아온다. B그룹 멤버들은 자기 손에 들어온 돈 중 일부를 A그룹 파트너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 얼마를 돌려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B그룹 멤버 마음이다. 한 푼도 안 줘도 되고 받은 돈을 다 돌려 줄 수도 있다.
이 게임의 이름이 ‘신뢰 게임’인 이유가 있다. A그룹 멤버가 B그룹 파트너를 믿을 수만 있다면 A그룹 멤버는 무조건 받은 돈 1만 원 전액을 B그룹 멤버에게 몰아주는 게 유리하다. 그렇게 하면 1만 원의 종자돈이 무려 3만 원으로 불어난다.
B그룹 멤버는 믿을만한 사람이기에 그 돈 3만 원을 절대 다 갖지 않고 최소한 절반(1만 5,000원)을 떼어서 다시 돌려줄 것이다. 이러면 두 사람이 갖는 돈이 최대치로 불어난다. 이게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다.
하지만 상대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면 A그룹 멤버는 한 푼도 나눠줘서는 안 된다. B그룹 멤버가 불어난 돈을 몽땅 들고 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를 믿느냐 못 믿느냐가 이 게임의 핵심 요소가 된다.
그런데 실제 이 게임을 해보면 A그룹 멤버가 상대를 믿고 꽤 많은 돈을 보냈는데 B그룹 멤버가 그 신뢰를 배신하고 받은 돈을 들고 그냥 튀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배신을 당한 A그룹 멤버에게 배신자 B그룹 멤버를 응징할 권한을 주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자기 돈 1,000원을 내면 배신자로부터 그 세 배인 3,000원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빼앗은 3,000원은 A멤버에게 오지 않고 주최측으로 귀속된다. 즉 A멤버에게는 땡전 한 푼 돌아오는 이득이 없고 1,000원만 더 날린다. A멤버에게 ‘당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배신자를 응징할 건가요?’라는 질문이 주어진 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 도쿄대학교 미즈호 시나다 심리학과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전체 실험자의 61%가 자신의 돈을 쓰면서까지 배신자를 응징했다. 인간은 자신이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배신자를 응징하는 일에 기꺼이 나선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스위스의 신경과학자 도미니크 드 퀘르벵(Dominique de Quervai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배신자를 처벌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뇌를 촬영해보면 배신자를 처단하는 순간 뇌는 보상을 받아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
이건 실로 놀라운 발견이다. 배신자를 처벌한다고 사실 딱히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다. 되레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한다. 왜냐고? 그러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자, 이제 이 긴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자기 입으로 “우리는 원래 좌파였는데” 이러던 인간이 쌍칠년도에나 통할 이념 공세로 나라를 멍멍이판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이 배신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게 힘들고 수고스러운 일이라고 피해서는 안 된다. 배신자 처벌을 실제 해보면 그건 매우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기쁜 마음으로 분연히 이 전직 좌파, 현직 이념 돌아이 대통령을 처벌하자. 철지난 이념 공세를 분쇄하고 다음 총선에서, 다음 대선에서 이들을 완전히 패퇴시키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매우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