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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예산 깎겠다고 과학계 ‘카르텔 범죄집단’ 만든 윤석열 정부

내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올해보다 16.6%나 줄어들었다. 부자감세, 경기예측 실패로 사상 유례없는 세수 펑크를 발생시킨 윤석열 정부가 초긴축 예산안을 내면서 가장 크게 삭감한 지출 항목이 바로 이 분야다. 정부 R&D 예산이 줄어든 것은 사실상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R&D분야를 ’나눠먹기식 카르텔’이라고 지목한 이후 갑자기 예산이 뭉텅이로 삭감됐다는 점이다.

지난 6월 28일 윤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배분조정안이 과학기술자문위에서 의결해야 하는 6월 30일에 이틀 앞선 날이었다. 그리고 6월 30일 갑자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서 각 연구기관에 보낸 이메일에는 “20% 수준의 구조조정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묻지마 구조조정이 지시된 것이다. 정부의 ‘건전재정’ 달성을 위해 과학계가 범죄집단으로 몰려 희생양이 된 꼴이다.

과학계의 ‘나눠먹기식 카르텔’이 도대체 무엇이인가. 4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출석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카르텔적 요소라고 해야 하나, 비효율적인 게 분명 있다”며 횡설수설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연구개발분야의 예산을 삭감하는데, 일말의 근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R&D 예산이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 예산안 작성이 막무가내식으로 진행된 것 아닌가. 이 장관은 “R&D 생태계를 효율화하고, 연구다운 연구할 때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생각하는 효율화가 ‘일괄 20% 예산삭감’인가.

정부 R&D 분야는 민간에서 감당하기 힘든 장기 대형 연구과제를 많이 맡고 있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고, 닥쳐올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분야를 국가가 책임져 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느닷없는 예산 칼질을 하면, 연구과제 역시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몰리게 된다. 당장 이번에 대폭 줄어든 예산 분야가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늘렸던 소재·부품·장비 분야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중요하게 떠올랐던 감염병 관련 예산이다.

윤 대통령은 입만 열면 과학을 강조한다.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가 터졌을 때도 ‘과학’을 입에 올렸다. 취임하면서는 R&D 예산을 5% 확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은 정작 4%대로 내려갔고 내년에는 3%대로 낮아진다. 윤 대통령이 과학계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오죽하면 현장에서 ‘연구자가 아니라 의사가 되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푸념이 커지고 ‘과학기술 멈춤의 날’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냐는 말이 나오겠는가.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외환위기나 코로나19 등의 국가적 위기가 닥쳐와도 R&D 분야 예산 만큼은 늘려왔다. 여야가 바뀌어도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 없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생각은 바뀐 적이 없다. 이런 식으로 과학계를 범죄집단으로 몰고 근본을 흔드는 예산 정책은 국가의 미래를 내다버리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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