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아들의 관을 붙잡고 혼절한 한 어머니.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우크라이나 전쟁이 2022년 2월에 발발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러시아에게 벌을 주고 완전한 패배를 안기기 전에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서방의 입장이 전 세계적으로 관철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중소국뿐만 아니라 유럽마저도 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에게 양보를 해서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 만큼은 서방 언론에서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작년에 이어 또 한번 양보와 종전을 위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카운터펀치의 기사를 소개한다. 기사를 쓴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고갱의 스커트>의 저자로도 알려진 미술사 전문가 스티븐 F. 아이젠만 노스웨스턴 대학교 명예교수다.
나는 작년 2월 25일 카운터펀치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글을 처음 실었다. 나는 서방 유럽 지도자들이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드디어 해결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을 때 전면전을 개시한 푸틴을 비난하며 글을 시작한 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팽창을 둘러싼 미국과 NATO의 이중성의 역사를 짚어보고, 약간 방향을 틀어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 및 서방의 전문가들이 진부한 소련 반대구호를 얼마나 빨리 쏟아냈는지를 보여준 다음, 조심스러운 평화방안으로 글을 마무리 했다. 당시 나는 평화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중립 서약, 러시아군과 러시아 중화기의 철수, 러시아 국경 지역에서의 NATO군 철수, 중거리 핵전력 및 공격용 핵무기 감축 조약인 START에 대한 미러 협상 재개 등을 제안했다.
이런 수고로 돌아온 대가는 왕따였다. 미술사 교수인 나는 뉴욕 미술계의 저명한 급진주의자 친구(그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와 그의 많은 동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내가 받은 비난이 구소련의 공개재판에 맞먹은 건 아니었지만, 배척당했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이런 일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또 다시 그런 글을 쓰려 한다.
전쟁의 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18개월 이상 지속됐다. 양측의 사망자는 거의 20만 명에 이르렀고, 30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실 나는 ‘믿을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최근의 다른 전쟁이 야기한 사상자 규모에 대해 생각해 보니, 그 수가 큰 것도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과 동맹세력 때문에 발생한 사망자만 약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 재건 비용은 지난 3월에 4,110억 달러로 추산됐고, 현재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민 중 7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6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또 1,70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다.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 발생한 미국인 사망자보다 많은)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몇 차례의 드론 공격을 제외하고는 전쟁이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는 작년에 2% 마이너스 성장했고,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되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의욕없는 예비군 30만 명을 동원해야 했고, 90만 명의 젊은이들과 고학력자가 망명했다. 또 보리스 카갈리츠키와 같은 저명한 반체제 인사를 포함해 수천 명이 전쟁 반대를 이유로 수감됐다. 비판자가 줄어든 푸틴은 망명과 숙청이 보너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러시아에서 가장 똑똑하고 혁신적인 인재의 수가 줄어든 것이다. 시위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코드와 밈의 은밀한 싸움이 돼 버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큰 이유 중 하나는 NATO의 확장 방지였지만, 냉전시대의 잔재인 NATO는 오히려 강화되고 성장했다. 스웨덴과 러시아와 800마일 이상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핀란드는 4월에 신규 가입했고, 러시아의 군사력은 크기가 28분의 1, 인구는 4분의 1, 군사비는 10분의 1에 불과한 우크라이나도 빠르게 정복할 수 없는 존재임이 드러났다. 푸틴은 쿠데타 시도를 극복했지만, 체포 가능성 때문에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BRICS(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하는 등 세계적인 기피인물이 됐다.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푸틴의 전쟁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자발적으로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다
양국 모두 지고 있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양국은 명확한 승리의 길도, 협상의 동력도 없는 피비린내 나는 교착 상태에 갇혀 있다.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양국이 쏟은 피와 돈, 그리고 정치적 자본이 너무 많다. 양보하는 쪽의 지도자는 정치적 몰락을 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휴전에 동의하고 우크라이나 헌법에 명시된 중립 선언을 하기를 원한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을 인정하고 도네츠크와 루간스크(통칭 돈바스)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기를 원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원전 안전 보장, 러시아군 철수, 전쟁 포로 및 납치자 송환, 국가 안보 보장,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를 포함한 모든 점령지 반환 등 10개 항목의 평화 계획을 발표했다. 젤렌스키는 마지막 항목이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는데, 통상적인 외교에서 이것은 반대로 그것이 협상 대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협상을 진행하기에는 협상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무기한, 또는 적어도 우크라이나의 돈, 무기, 병력이 고갈될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막대한 군대, 무기, 오일 머니를 보유한 러시아는 승리 선언이 가능할 때까지, 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푸틴이 전복되고 (그럴만한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온건한 지도자가 권력을 잡을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누가 전쟁을 멈추게 할까
지금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주체는 중국과 미국뿐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형이나 누나 같은 존재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4배 더 크고, 군대는 훨씬 크다. 중국의 농업은 더 생산적이고, 기술은 더 발전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압도적인 최대 무역 파트너이자 석유 및 기타 화석연료의 최대 시장으로 푸틴에게 있어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푸틴에게 전쟁을 끝내라는 압력을 가하거나 석유 수입을 중단 혹은 제한하면 전쟁은 끝날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진핑은 그렇게 할 이유가 별로 없다. 중국은 할인된 가격에 러시아산 석유를 사고 있고,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오바마 정권이 시작한 ‘아시아로의 중심 이동’에 대해 신경을 충분히 쏟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전쟁에 외교적으로 개입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무역 및 기타 분야에서 혜택을 얻기를 원하고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적어도 공개적으로 제의를 한 건 없지만 말이다. (전쟁의 장기화가 목표가 아니라면 미국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미국뿐이다. 우리는 미국이 지금까지 전쟁을 멈추게 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다. 첫째, 유라시아 심장부의 주요 라이벌을 파괴할 수 있다는 즐거운 전망, 둘째, 정치적으로 연결돼 있는 무기, 항공우주 및 화석연료 부문에서 얻는 막대한 이익, 셋째, 유럽연합과 NATO 국가에 대한 미국의 지배 재확인, 넷째, 대만을 합병하려 한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임을 중국에게 보여주는 것 (물론 여기서 차이점은 대만이 국제법상으로 중국의 일부인 ‘일국양제’라는 점이다), 다섯째, 미국의 정치 및 경제적 패권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환상 때문이다. 이 모든 이유는 모순과 자기기만으로 가득차 있다. 또 이 모든 이유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해체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전쟁 종식을 촉구할 이기적이지만 좋은 이유도 존재한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미국의 바이든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공화당이 민주당 정권의 끝없는 전쟁과 무한한 대외지출을 이슈로 삼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미국이 종전 합의를 축구할 또 다른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패배하기 전에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다. (미국이 최근 우크라이나의 전략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전쟁의 패배를 자신이 아닌 동맹국의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일 수 있다). (미국이 중시하지는 않지만) 전쟁을 끝낼 이타적인 이유도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막대한 인명 피해와 앞으로 발생할 사상자 수(러시아와 미국의 집속탄은 향후 수십 년 동안 계속 사망자를 낼 것이다), 둘째, 핵전쟁의 가능성, 셋째, 전쟁으로 인한 환경 피해와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거대한 투쟁에 집중하려는 것 때문이다.
지금부터가 악플을 부를 부분이다
미국은 평화를 위해 양보할 의향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도록 젤렌스키를 압박해야 한다. 완전한 승리가 헛된 희망인 상황에서 다른 대안은 없다.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항상 바보 같은 일이다. 내가 이전 카운터펀치 글에서 주장했듯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도, 전쟁 발발 하루, 한 달, 또는 1년 후에도 동일한 조건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었다. 평화를 위해 땅을 포기했으면 됐다. 러시아에게는 그들이 이미 가진 것, 그러니까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방의 일부를 주는 대신 러시아군 철수, 우크라이나의 주권 인정, 상호불가침 조약을 요구하고 대러시아 제재의 점진적 완화를 약속했으면 전쟁이 끝났을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왜 러시아에게 영토를 양도해야 하는가, 이는 침략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아닌가?’.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이 우크라이나의 생존을 위한 대가이자 재건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우크라이나가 완전한 영토 보전을 위해 최후의 1인까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미국이 이런 최대의 목표를 지지할 필요는 없다. 푸틴이 다음에는 폴란드나 다른 NATO 국가를 점령할 히틀러라는 미국 매파의 주장은 전쟁 초기에도 터무니없었지만, 러시아의 군사적 약점이 드러난 지금에는 더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바스를 지도에서 찾기는커녕, 돈바스에 대해 들어본 미국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쟁 때문에 돈바스는 흔한 지명이 됐다. 미국의 외국 개입 역사를 감안할 때 국가 주권의 신성함을 외치는 것은 극도로 위선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나쁜 것은 미국이 국가 주권의 신성함을 외치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적어도 양심적으로 허용되는 대가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좌파가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자유주의자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역사적으로 해왔던 일, 즉 미국 제국주의와 군사적 개입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핵무기 철폐, 극소수의 부자가 아닌 일반 사람을 위한 경제, 사람이 살만한 지구를 위해 조직화 사업을 벌여야 한다. 뉴욕의 내 옛 동지들이 최소한 이 마지막 두 목표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