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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전호권의 충만함

전호권 두 번째 음반 [야즈드의 불빛]

싱어송라이터 전호권의 두 번째 정규 음반 (야즈드의 불빛) ⓒ전호권

싱어송라이터 전호권의 두 번째 정규 음반 [야즈드의 불빛]은 자연으로 가득 차 있다. 이란의 야즈드에서 본 풍경만은 아니다. 노래 속 화자는 늘 바깥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 바깥은 도시가 없고 자연이 있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그들의 눈과 귀와 몸에 와 닿는 햇살, 바람, 자연의 소리와 생물은 두 사람이 느끼는 평화와 행복을 증거하고 배가시킨다. 첫 곡 ‘흰 자욱’에서 “저 먼 수평선”, “10월의 볕”, “바닷소리”가 담당한 역할을 타이틀 곡 ‘맑은 시’에서는 “하늘”, “언덕”, “노란 유채”, “노란 꽃길” 같은 자연 공간과 생명이 해낸다. 자연은 두 사람의 교감을 방해하지 않고 더욱 깊이 이끄는 효과를 발휘한다. 자연 속에서 사랑이 깊어진다. 자연이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든다.

돈이 있어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와 상대의 조건을 꼼꼼하게 따지는 현실을 찾을 수 없는 노래다. 음반에는 에로틱한 욕망 또한 발산하지 않아 해맑은 노래들뿐이다. 포크 음악은 전통적으로 자연을 찬미하고 자연을 닮은 삶을 지향하면서 차분하고 사색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전호권은 포크음악의 전통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계승한다. 그래서 AI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을 노래 속에서 찾아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농사를 짓거나 자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삶을 노래하지는 않으며, 자연을 사유하는 곡은 아니다.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을 비판하는 곡 또한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노래,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하는 관계를 노래하는 곡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바뀌지 않는 삶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전호권 (Jeon Ho Kwon) - 맑은 시 (Clear Poetry)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과학으로 지렁이 하나 만들지 못하고, 누구도 돈을 먹고 살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무엇보다 위대해보이지만 자연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하루도 살 수 없다. 인간은 그걸 알면서 모른 척 하는 이상한 족속인데, “모래 위 너의 발자국”, “은빛 머금은 저 바다”, “풀잎들 피어나는 봄날에 해변에서”를 노래하는 전호권의 노래를 들으면 자연이 로맨틱한 순간의 배경만으로 존재하고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인간의 영혼을 채우는 삶과 기억의 실체임을 알아차릴지 모른다.

또한 전호권은 ‘길 위에서’에서는 “여행자의 마음”을 노래하고, 거의 모든 곡에서 상대와의 합일을 지향한다. 대중음악에 흔한 이별이나 이별 후의 상실감은 그의 노래에 존재하지 않는다. 열띤 고백이나 설레는 마음을 노래하지 않아도 거의 모든 곡에는 상대가 함께 있다. 그래서 전호권의 노래는 충만하다. 전호권의 충만함은 발산하는 충만함, 과시하는 충만함과 거리가 멀다. 그의 충만함은 고요함에 가까운 충만함이고 조심스러운 충만함이다. “맑은 시와 단어는 반듯한 기도를 닮아”라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음악의 당연한 귀결이다.

전호권은 자신이 쓰고 여린 목소리로 부른 노래를 음반에 담으면서 프로듀서 김수진과 함께 최소한의 악기만 활용한다. ‘숨’처럼 여러 사운드를 겹치는 곡이 있지만, 대개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만 동원하는 음악은 음반이 포크 장르라는 사실만 고지하진 않는다. 이 소박한 편성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음반은 전호권이 좋은 곡을 써내는 송라이터이기 때문에 감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전형적인 구성의 잔잔한 연주와 노래에 빠져드는 이유는 전호권이 노랫말의 속도와 풍경을 제대로 담지한 멜로디를 구현해내기 때문이다.

전호권 (Jeon Ho Kwon) LIVE @ '야즈드의 불빛 발매 기념 공연' (Full Video)

그리고 투명한 연주와 사운드 메이킹은 노래의 순수한 기운을 수수하고 소박하게 표출한다. 팝 발라드와 전호권의 노래는 이 지점에서 완전히 갈라진다. 전호권의 노래 속 연주는 감정을 배가시키려 하지 않는다. 상황을 부풀리거나 사운드를 주도할 욕심 또한 없다. 목소리 옆에서 어눌하게 존재하는 연주는 “서투른 마음의 우리”라는 노랫말을 음반 내내 표현한다. 오직 존재하고 느끼며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데 충실하려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그래서 자연을 닮은 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닌 10곡은 끝나지 않은 더위와 답답한 세상사에 지친 이들이 순정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버텨준다. 무너뜨리거나 훼손하진 못할 마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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