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국민주권을 부정하고 이를 국가혼란으로 치부하는 발언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임명 전 극우적 행보에 이어 민주공화국 공직자로서 자격을 의심케 하는 발언에 당사자와 임면권자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김영호 장관은 5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민간인 신분일 때 몸담은 보수단체와 관련한 질의에 답하면서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하는 게 국민주권론”이라면서도 “국민 5천만이 모두 주권자로서 권력을 직접 행사한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 1조2항에서 얘기하는 국민주권론이라는 것은 주권의 소재와 행사를 구분하고 있다”며 “국민이 주권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주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장관은 대통령 선출과 국회의원 선출을 국민주권 행사 방식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는 초등학생들이 사회 시간에 배우는 기본상식과도 거리가 멀다. 선거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는 주권 행사의 한 방법일 뿐이다. 국민투표나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 직접민주주의, 그리고 지방자치, 집회시위, 언론과 시민사회 등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여러 방식이며 이를 국민의 권리로 보장하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다. 즉 헌법도, 교과서도 5천만 국민이 주권을 적극 행사하도록 장려하고 있는데 장관은 그걸 ‘무정부 상태’라고 폄하했다.
김 장관의 인식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5천만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면 왜 무정부 상태가 되는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두고 국민은 생업에 종사하다 투표나 하라는 것이 과거 독재정권의 선동이었다. 김 장관과 현 정권 실세 여럿이 함께 했던 한국자유회의라는 보수단체 역시 퇴행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지금도 실존한다.
헌법 1조를 부정하는 인사를 국무위원으로 둔 정부를 정상이라 할 수 없다. 김 장관은 자신의 발언을 합당하게 해명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든지 직에서 내려와 뉴라이트 지식인으로 살든지 택해야 한다.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반복하는 윤석열 대통령도 임면권자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 장관의 인식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풀지 못한다면 경질하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건대 민주주의의 요체인 국민주권은 단지 공산주의 반대라는 깃발을 흔든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대중은 틀려도 나는 틀리지 않는다는 인식과 국민 위에 서려는 자세에 대해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에게 배우고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게 민주국가 정치인과 공직자의 기본 중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