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주최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윤미향 의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국회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은 10년 전 박근혜 정부 당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이후 처음이다. 국민들로부터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의 뒤를 잇는 듯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공안몰이가 이제는 국회로까지 뻗는 형국이다.
이번 수사는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의 고발로 시작됐다. 이 시의원은 윤 의원이 반국가단체 행사에 참석해 사전 접촉 신고 없이 총련 구성원을 만났다며 지난 5일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냈다. 앞서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인 엄마부대와 위안부사기청산연대가 같은 내용으로 서울서부지검에 낸 고발 사건도 서울경찰청이 넘겨받아 함께 수사할 계획이다. 보수언론이 근거가 불분명한 의혹을 제기하면 정치권이 이에 호응하며 의혹을 증폭시키고, 보수단체가 행동으로 옮겨 고발하면 수사당국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는 일련의 흐름은 이제 낯설지도 않다.
지금까지 확인된 건 9월 1일 간토학살 100주기를 맞아 윤 의원이 국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일본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한 것이 전부이다. 이 추도식은 50년을 이어온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때 아닌 논란에 휩싸인 총련은 추도식을 준비한 수많은 단체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윤 의원이 그곳에서 총련 소속 인사와 만났다든지, 대화를 나눴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총련과의 접촉을 문제 삼는 것 자체도 한심하다. 일본에서 총련은 합법적 단체이며 양심적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움직여 왔다. 그러다보니 한일 교류 과정에서 총련 소속 인사들을 마주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자유민주주의’는 총련을 허용하는데, 윤석열 정부의 ‘자유민주주의’는 총련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도 불법이라는 건가.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칼처럼 쥐고 휘두르고 있는 것 자체가 참담한 일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치안유지법에 연원을 두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75년 전 형법이 제정되기 전에 임시적으로 적용하자는 주장 아래 날치기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 국가보안법을 이제는 100년 전 일제로부터 땅을 빼앗기고 높은 소작료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듯 일본으로 들어갔다가 학살당한 우리 동포들을 추모한 데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은 추도식에 참석한 윤 의원을 겨냥해 “반국가행위”를 운운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고 우리 동포들을 모함하는 해괴한 헛소문을 퍼뜨려 학살하던 잔혹했던 시절과 지금이 무엇이 다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뒤안길로 진작 사라졌어야 할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철 지난 이념몰이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