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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리에겐 북·러 밀착에 관여할 지렛대가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전략적 '밀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그 동안의 북·러 관계를 크게 뛰어넘는 공조 체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위성이나 잠수함과 같은 첨단 기술을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뒤를 잇는다.

흔히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 혹은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과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이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냉전 시기에도 북한과 중국, 러시아(구 소련)의 관계는 한국과 미국의 그것 같은 군사동맹이 아니었다. 하물며 탈냉전 이후 북·중, 북·러는 겉으로만 우호적이었지 실상에 있어서는 평범한 국제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이 독자적 핵개발을 시도할 때 중국과 러시아가 UN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 북한을 제재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북·러 관계는 변화의 문턱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 서방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는 더 이상 서방과 보조를 맞추는 대신 북한과의 새로운 군사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당장 7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다른 국가들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그들(북한)과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UN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북한과 군사협력을 가속화한다면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동유럽의 군사적 대치 상태가 한반도에서 재연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가 이에 개입할 지렛대가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이미 우리 정부는 우회적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러시아와의 경제·문화 교류도 크게 축소했다. 러시아의 정책에 개입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중국을 우회하여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아세안+3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7일 "중국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는데, 중국이 이에 실질적으로 호응할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이 자신들의 '핵심이익'이라고 간주해 온 문제들에서 우리가 미국·일본과 같은 편에 섰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중·러의 면전에서 "국제사회 평화를 해치는 북한과 군사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했는데 이 역시 상대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이념'보다 실력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 나아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입장이나 정책도 아무 의미가 없다. 현실에 눈을 감고 목소리만 높여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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