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희곡의 거장,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원작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가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탄생했다. 성종완 연출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창작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가 8월 26일 링크 아트홀에서 개막했다. 원작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을 비롯하여 국립문학상, 마리아 롤란드상, 레오폴도 카노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첫 번째 희곡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여러 차례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 바 있다. 필자 역시 연극으로 이 작품을 처음 만났다. 이번 작품은 세계 최초의 뮤지컬 버전이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성종완 연출과 김은영 작곡가는 ‘사의 찬미’와 ‘웨스턴 스토리’를 함께 만들었던 창작진이다. 이들이 다시 의기투합해 만들어낸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에서 성종완 연출은 모든 장면마다 인물의 시선과 감각 등을 설정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즉 등장인물의 시선이 어떻게 다르게 조명되는 지가 이 작품을 감상하는 포인트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고 싶은 자, 새로운 의문을 던지는 자, 그 뒤에 숨은 자
‘돈 파블로 맹인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장애를 잊을 만큼 안전하고 완벽한 학교다. 학생들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가 없이 학교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모든 동선을 기억하고 있고 학생들의 이동에 위험 요소는 거의 없는 듯하다. 학생들은 돈 파블로 학교의 모범생 까를로스를 둘러싸고 휴가를 보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때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듣지 못하는 지팡이 소리를 듣게 된다. 학생들의 웅성거림은 커지고 그곳에 전학을 온 이그나시오가 등장한다. 학생들은 지팡이를 사용하는 이그나시오를 낯설어 하고 이그나시오는 학교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다른 친구들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뉴프로덕션
돈 파블로 맹인 학교에서 자신감에 찬 일상을 보내던 학생들은 별빛을 동경하는 전학생 ‘이그나시오’로 인해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그나시오는 장님이란 현실을 외면하고 비장애인과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학생들이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불행하지만 그 불행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이그나시오의 이야기에 학생들은 하나둘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가져왔던 신념은 어느새 조금씩 허물어지고 학생들은 다시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다.
반면 돈 파블로 학교의 이념을 굳게 믿고 있는 까를로스는 이그나시오를 향해 경고를 보낸다. 학교의 유일한 비장애인이자 학생들의 상황을 지켜보던 도냐 페삐따 선생은 까를로스에게 의미심장한 책임감을 상기시킨다. 학생들은 점점 더 이그나시오의 생각에 동조하기 시작하고 까를로스의 연인 후아나까지 이그나시오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주된 갈등 이외에도 극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도 존재한다. 현실에 삶에 만족하기에 변화를 싫어하는 학생, 변화에 쉽게 따르는 학생, 상황에 따라 한순간에 입장이 변하는 학생 등 현실의 축소판을 볼 수 있다.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과 새로운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 그 뒤에 숨은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가 뒤엉킨 ‘돈 파블로 맹인학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뮤지컬로 돌아온 작품 들여다보기
이 작품은 등장인물 각각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집중해 보면 좋다. 공간적 배경이 맹인학교이고, 주인공들이 시각장애인이지만 틀을 넓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입해도 무방하다. 작가 부에로 바예호의 작품 속 ‘장애인’은 인간의 한계를 뜻하기 때문인데,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장애’ 소재를 통해서 불평등과 차별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작품 속 ‘어둠’ 역시 잘못된 것을 무시하고 편안한 삶에 안주하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뉴프로덕션
지금까지 안전하고 완벽하다고 느끼는 학교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 학생들의 반응은 무척 익숙하다. 현실에서 비일비재한 현상이기 때문에 작품 속 등장인물과 현실의 우리들을 연결해 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연극으로 보았다면 음악과 춤을 입고 뮤지컬로 어떻게 변신했는지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연극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이야기의 틀은 그대로여서 뮤지컬 자체로 감상하면 된다.
이그나시오역에는 배우 정재환, 홍승안, 그리고 윤재호가 캐스팅됐다. 도냐 페피따역에 배우 이영미와 문혜원이 무대에 오른다. 까를로스 역에는 배우 박정원, 양희준, 노윤이 캐스팅됐다. 후아나 역에는 배우 한재아, 주다온이 참여한다. 창작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오는 11월 26일(일)까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페이코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공연날짜 : 2023년 8월 26일(토) ~ 11월 26일(일) 공연장소 : 링크아트센터 페이코홀 공연시간 : 화, 목, 금 19:30/수 15:00, 19:30/토, 일, 공휴일 14:00, 18:30 (월 공연없음) 러닝타임 : 약 150분 (인터미션 포함) 관람연령 : 13세 이상 관람가 원작 :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각색/연출 : 성종완 작곡 : 김은영 번역 함유선 : 안무 신선호 출연진 : 박정원, 양희준, 노윤, 한재아, 주다온, 정재환, 홍승안, 윤재호, 이영미, 문혜원, 이진혁, 황성재, 전해주, 선유하, 김도원, 김하연, 조민호, 박주혁, 김동준, 이지우 문의 : 더웨이브 02-6954-0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