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정·성폭력 재발방지와 관련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성인지 예산, 성 인권 교육 예산도 모두 삭감됐다. ‘여가부 지우기’에 예산안이 누더기가 된 셈이다.
가정·성폭력 재발방지 사업은 가정폭력 가해자 교정 치료와 성폭력 가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교육이다. 올해로 20여 년 동안 진행된 사업들임에도 12억이었던 예산을 이번에 전액 삭감했다. 정부는 일부 사업이 법무부와 중복된다는 등의 예산 삭감 이유를 설명했지만, 현장을 무시한 채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지우기’ 기조에만 과도하게 치우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초·중·고교 학생의 성 인권 교육 예산 역시 5억5600만원 모두 삭감됐다.
성인지 예산의 경우 약 24조원으로 편성하면서 올해 대비 9조원(27.1%)을 삭감했다. 이는 2014년 이후 최저치 수준이다. 성인지 예산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예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편성하는 재원으로 각 정부부처에 편성되는데, 재정당국인 기재부를 비롯해 교육부, 법무부 모두 이 예산을 삭감했다. 특히 교육부에 편성된 ‘대학 내 성범죄 근절 및 안전 환경 조성’을 위한 예산은 50%(2억4600만원), 이공계 여성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이공계 전문기술 인력양성’ 예산은 무려 81.4%(128억 8600만 원)나 삭감되었다.
최근 스토킹 등 성폭력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작 관련 예산 편성이 후퇴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신당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스토킹 범죄의 위험은 여전하다. 올해 들어 경찰에 입건된 스토킹 범죄는 7000여건을 넘은 데다 얼마 전 6세 딸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도 스토킹 범죄였다. 피해 상담 건수도 2020년 1175건에서 2022년 6766건으로 6배나 폭증했다. 그런데 이 같은 스토킹 피해자를 지원대상으로 하는 예산은 고작 4억원(392억에서 396억) 밖에 늘지 않아 사실상 감액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은 최근 연달아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해결해 주거나 성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자는 사회적 요구에 비추어 봤을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성’과 ‘성평등’을 지우려는 현 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국민의 안전보다 대통령의 심기를 더 중요하게 살핀 재정당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