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해영의 지정학산책] ‘한일중’ 대 ‘한중일’

내 기억이 맞다면 일본이 중국보다 앞에 놓인 건 윤석열 정부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중국과 국교 수립 이후엔 분명히 그럴 거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우리 역사가 시작된 이래 새로운 역사시대가 개창된 셈이다. 우리말에서 ‘친일파’라고 했을 때 연상되는 그런 엄청난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윤정부는 분명 ‘친일’정권이다. 그리고 다소 극우적인 색채도 띤다. 어떤 형태로든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되었다고 여기는 국민이 소수라는 배경에서 보자면 대단한 실험이자 모험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일중’은 ‘3일 천하’였다. 그새 ‘한일중’이 ‘한중일’로 바뀌었다. 9월 12일자 국무회의 대통령 발언에서 말이다. 나름의 안도감(?)과 함께 나는 이날의 국무회의 대통령 발언을 보다가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이면을 나름 들여다보노라니 대통령 쪽에 뭔가 커다란 착각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한중 회담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2023.09.07. ⓒ뉴시스

첫째,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중국 총리에게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 구축에 협력하자고 했다고 한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는 원문으로 하자면 이른바 ‘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 즉 우리말로 흔히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취임 직후인 작년부터 국제회의 석상에서 자주 했던 말이고, 또 이 말의 세세한 의미를 알 리 없는 기자들이 여러 가지로 번역해서 기사화하곤 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규칙기반 질서‘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질서의 다른 표현과 마찬가지다. 어딜 가든 미 국무부 장관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블링컨 장관 본인이 어디에서 이 말은 ‘리버럴liberal’ 국제질서를 의미한다고 직접 해설했고, 그 반대는 ‘일리버럴illiberal’ 국제질서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말이 겨냥한 대상이 바로 중국이다. 그리고 러시아다. 그래서 중, 러는 여기에 대항해 ‘국제법기반 국제질서’를 공동성명 등에서 이전부터 사용해 왔다.

요컨대, 대통령은 중국 총리 앞에 가서 중국을 욕하고 비난할 때 사용하는 그런 질서를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하자고 말한 것이다. 그 질서의 내용이 다자주의건 자유무역이건 상관없다. 문제는 규칙기반 질서라는 것이 대표적인 반중, 반러의 미국중심 단극질서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나로선 대통령 주변의 그 누구도 이 개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우리끼리 있을 때야 별무 상관이겠지만, 한 나라를 대표해 참석한 ‘우방’의 정상급 관료에게 그 나라를 비난할 때 쓰는 용어를 사용해 협력하자고 한다면 과연 그 말의 진정성을 누가 믿어 줄 것인가.

둘째, “북한 문제가 한중 관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여기서 북핵 문제가 ‘북한’ 문제로 바뀌는 저간의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여기서 북한 문제는 ‘북핵 문제’를 우선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8월 말 미 시카고대학의 미어샤이머 교수가 우리나라 통일부 <한반도포럼> 온라인 강연에서 말한 것을 좀 상기해 보자. 그에 따르면 북핵이 있기 때문에 중국은 남동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의 미국과의 대결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북한이 핵을 통해 스스로를 방위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군사력을 북한 쪽으로 투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만일 중국이 직접 북한 방위에 역량을 고도로 투입한다면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졌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북핵 문제가 한중 관계 걸림돌이니 한중 관계 개선을 당신들이 원한다면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하라는 그런 취지로 이해된다. 이 경우 대통령의 말이 설득력을 갖추고자 한다면, 만일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하지 않으면 중국이 엄청난 손해를 본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헛짚어도 아주 크게 헛짚은 말이다. 한중관계가 나빠지면 당장 손해를 보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그래서 북핵 문제 때문에 한중관계가 ‘걸림돌’이 되어도 더 급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가져온 논리가 많이 엉뚱하다.

중국 총리에게 중국 적대적 표현으로 쓰며 협력을 구하고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해놓고 북러관계 견제하겠다는 대통령
한반도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불의 고리’가 됐다


셋째, 한일중이 한중일로 ‘잠시’ 바뀐 것은 분명 북러 정상회담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외교적 정의나 수사가 가벼이 조변석개하는 이유를 장삼이사도 모를 리 없다. 당연히 중국도 이를 놓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일종의 메시지다. 즉 우리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할 건데, 당신들은 특히 중국은 북한하고 놀지 말라는 그런 메시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북한이 저러는 건 과거 1960년대 북한의 한 번은 중국, 한 번은 소련식의 줄타기 외교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알다시피 당시 중소분쟁은 실로 전쟁도 불사할 정도였다. 1960년대 냉전시대 북한 외교의 연장에서 지금의 북러관계를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한국이 북중러, 북방 삼각의 전략적 협력을 저지하고, 중국을 우리 쪽으로 끌어낼 유인과 실력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중국에 제공할 지도 모를 그런 이익보다 더 큰 이익을 우리가 중국에게 줄 수 있다면 말이다. 즉 올해 양국이 합의한 것처럼 중국에게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힘 2‘를 통해 제공할 저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와 그리고 지금도 공급되는 엄청난 석유와 석탄 등 에너지자원, 중미경쟁에서 중국에 보태 줄 미국을 능가할지도 모를 정도의 막강한 러시아의 핵억제력, 미국 항모를 제압할 각종 극초음속 무기 등등을 제공할 정도의 그런 아이템 말이다. 그러면 중국도 아마 맘을 달리 먹을지도 모른다. 중러관계는 현재 일종의 ‘반半-동맹semi alliance’의 수준에 와있다. 이는 단순히 동아시아가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의 단극질서에 대항하는 다극질서의 주축이다. 과연 우리에게 중러의 사실상 동맹 혹은 준동맹관계를 ‘뽀갤’ 그럴 실력이 있는 것일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의 궁전에서 열린 만찬 중 건배하고 있다. 2023.03.22. ⓒ뉴시스

나는 대통령의 일부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러 양국을 상대로 그것도 동시에 말폭탄을 마구잡이로 난사할 수 있는 나라, 양국 모두를 ‘적대시’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것이 가져올 외교적 후과를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지금의 북러관계는 현 정부의 한미일 혹은 미일한 3각 군사동맹이 불러온 후과다. 더 직접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올 상반기 미 국방부 유출문서(Pentagon leak)는 한국이 155밀리 포탄 33만발을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는지 너무나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다. 이미 한국이 소위 ‘레드라인’을 넘은 지는 오래전 일이다. 여기에다 수조 원을 덤으로 얹어 준다고 한다. 핀란드의 나토가입에 대해 러시아의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푸틴이 ‘거울방식으로mirror-like’ 대응할 것이라고 작년에 답한 바 있다. 핀란드가 가입하든지 안 하든지 그쪽 사정이겠지만, 만일 핵을 국경에 배치하면 마찬가지 핵을, 대포를 배치하면 대포를, 병력을 배치하면 병력을 배치하겠다는 의미다. 오늘의 북러 정상회담은 캠프데이비드 회담의 ‘미러링’이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돈을 지원했으니 거기에 대략 등가적인 대북 지원을, 한미일 군사훈련을 하니 또 거기에 맞춰 북중러 군사훈련을. 그런 방식 말이다. 그리고 한국이 제일 아파하는 것이 대북제재 완화라면 이 역시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와 상관없이 중러가 대북 유엔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미국이 이를 거부한 것은 오래전 일이기도 하다.

이제 한반도는 세계최강의 핵강국 미, 러, 중 여기다 북핵까지 서로를 겨누는, 그리고 365일 매일 서로를 겨냥한 군사연습이 일상이 되는 실로 세상을 통틀어 인간이 만든 가장 위험한 ‘불의 고리’가 되고 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결과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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