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해병대 실종자 수색 사고 생존자 가족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업무상과실치상 고발 기자회견에서 생존자 A병장 어머니가 사단장 고발에 대한 심경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9.13 ⓒ민중의소리
지난 7월 윗선의 무리한 지시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순직한 고 채 모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던 피해 생존 병사인 A병장 어머니가 13일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채 상병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자신 역시 생사를 오간 두려움 속에서 힘들어하던 A병장은 현재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다.
A병장 어머니는 이날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임 사단장이 사고를 예방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예하 부대 현장 지휘관들에게 무리한 수중 수색을 지시함으로써 당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A병장 어머니는 아들이 복무 중인 상황에서도 어렵게 용기를 냈다. 당시 사고로 숨진 채 상병과 자신의 아들처럼 물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난 해병대원들을 위해서였다. A병장 어머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심장이 뜯겨가는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A병장 어머니는 “아들은 자신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으로 돌아온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통화에서 ‘엄마 내가 ○○(채 상병)을 못 잡았어’라며 울었다”며 “사고 이후 아들을 처음 본 건 사고일로부터 17일이 지난 8월 4일이었는데 잠꾸러기였던 아들은 집에 온 날도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다 깨기도 하고, 울면서 깨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A병장 어머니는 “사고 이후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 그 사고에서 생존해 돌아온 모든 아들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여기저기 했지만, 들리는 말은 사령관이 생존장병을 모아두고 사과나 위로가 아닌 ‘채 상병은 잊지 말되, 언제든 전투가 가능하게끔 준비하라’는 말이었다고 한다”며 “정작 입수 명령을 내렸던 사단장은 현장에서 포병대대가 제일 문제라며 잔뜩 혼을 낸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A병장 어머니는 “저는 더 이상 이 사고를 사고라 부르고 싶지도 않다. 이건 살인 행위”라며 “전 제 아들에게 잘못한 일에는 진심으로 반성과 사과를 하며 책임지는 게 명예라고 가르쳤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던 그것을 그냥 덮고 넘어간다면 나중에는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가르침도 알려주었다. 저는 대한민국 해병대가 제 생각과 같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작금의 현실에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A병장 어머니는 “함께 생활한 형제 같은 채 상병을 잃은 아이들에게 해병대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줬나”라며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임성근 사단장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7월 19일 수해복구 작전에 투입된 해병대원을 전우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저 당신들의 무사안일,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였나”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이어 “돌아오지 못하는 채 상병과 그 복구 작전인지 몰살 작전인지 모를 곳에 투입됐던 대원들 모두 제 아들들”이라며 “제 아들들 모두 정상으로 돌려놓으시라”고 절규했다.
A병장 어머니는 “제 아들과 당시 투입된 대원들 대부분이 아직 군에 남아있다. 그로 인해 오늘 이 자리는 몹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지만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서 호소한다”며 “지금 그 아이들을 지켜주실 분들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뿐이다. 부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입대한 우리 아들들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시선을 조금 더 모아주길 간절히 부탁한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사단장의 지시. 사고 발생 하루 전, 당시 사단장은 장병들에게 '해병대'가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라고 했고, 안전상 일렬로 작업하던 것을 비효율적이라며 4인 1조로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하라고 질책했다. ⓒ군인권센터
앞서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A병장 소속 부대는 상관으로부터 임무 투입과 관련된 제대로 된 지침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단순 수해복구 작업으로만 알고 있었던 대원들은 구명조끼 대신 삽이나 갈퀴, 고무장화 등을 챙겨왔고, 임 사단장은 ‘떠들거나 웃는 모습이 외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스카프로 얼굴 두르고 작업하라’는 취지의 지시만 내렸다. 이후 임 사단장의 지시도 대원들의 안전조치가 아닌 군의 대외 이미지와 관련된 내용뿐이었다.
특히 “포병이 비효율적”이라며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실시하라”는 임 사단장의 질책성 지시가 내려온 뒤,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라는 사단 전파 사항이 전달된다. 전날까지 이뤄지지 않은 수중 수색이 이뤄지게 된 배경이다. 이로 인해 숨진 채 상병을 비롯한 8명의 대원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생존 병사들에 대한 조치도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사고 직후에도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기는커녕 장시간 모래사장에 방치되어 있다가 기자들의 눈을 피해 풀숲에 세워진 관광버스에 태워진 뒤 숙소로 복귀해 진술서부터 작성했고, 다음날에는 채 상병 유가족을 만나야 한다며 이른 아침부터 포항으로 급히 이동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며 “당초 피해자들은 동료의 유가족을 만나 사고 경위에 대해 질문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해병대 1사단은 피해자들뿐 아니라 지휘관과 간부를 대거 동석시켜 사고 경험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 이는 유가족에게는 진실에 접근할 기회를 차단한 행태이고 피해자들에게는 자책감만 키우는 부적절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임 소장은 “심지어 임 사단장은 사고 발생 후 A병장 등 물에 휩쓸렸던 병사들을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한다. 임 사단장은 피해자들과 같은 부대 안에 있으면서도 사고 발생으로부터 2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사과는커녕 위로나 격려조차 하지 않았다”며 “외부 전문가를 불러 트라우마 치유를 하겠다고 언론 보도까지 냈지만 실상은 집체 교육 형태로 트라우마에 대해 교육받는 것이 전부일 뿐이었고, 군병원 정신과 내원이나 병영생활상담관 상담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지휘관에게 이야기하라는 정도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A병장의 어머니는 임 사단장이 분명한 책임을 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작전’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전체적인 강물 유속이나 강바닥 (지형) 등 모든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하는 자리 아닌가”라며 “이건 분명한 사단장의 과실이고, 제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에 불과하다”고 분노했다.
당초 채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던 해병대 수사단도 임 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법에 따라 경찰에 이첩한 바 있다. 하지만 전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은 ‘이첩을 보류하라’는 상관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 및 항명죄 수사 대상이 됐다. 이후 재조사에 나선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를 뒤집고, 임 사단장 등 4명에 대한 혐의는 특정하지 않은 채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A병장 어머니가 임 사단장 고발을 결심한 이유도 사건의 진상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군인권센터는 “A병장은 아직 현역으로 복무 중이다. 아들이 아직 군대 내에 있으니 어머니가 고발을 결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며 “하지만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가 사실상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이렇게 사건 수사가 유야무야되면 추후 다른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도 쉽지 않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고발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인권센터는 “외압으로 얼룩져 꼬여버린 사건의 출발은 여전히 임성근 사단장이다. 임 사단장의 죄책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 외압에 관계된 모든 이가 유죄”라며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채 상병 유족과 A병장을 비롯한 피해자들, 그리고 마음 졸였을 그 가족들이 진실에 닿을 수 있는 길은 임 사단장의 범죄 행위를 낱낱이 밝혀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3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해병대 실종자 수색 사고 생존자 가족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업무상과실치상 고발 기자회견에서 생존자 A병장 어머니가 사단장 고발에 대한 심경을 밝힌 후 눈물을 닦고 있다. 2023.09.13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