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 본사 앞에서 열린 전국 67개 검찰청 특수활동비 검증결과 기자회견에서 검찰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2개월마다 자료를 폐기하게 되는 게 오히려 원칙이었거든요.(7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 “지침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상황에서 교육할 때 월별로 폐기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교육자료였다고 합니다.(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2017년 1~8월 검찰의 특수활동비(특활비) 자료 불법 폐기 의혹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해명은 한 달 만에 뒤바뀌었다. 한 장관의 주장과 달리 검찰 역시 법령에 따른 예산·회계 서류의 보존 기한이 5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검찰 내부 문건이 공개된 직후였다.
그런데 한 장관의 추가 해명과도 배치되는 정황이 14일 또다시 드러났다. 전국 일선 검찰청의 특활비 자료를 검증해 보니, 일부 검찰청에서 2017년 1~8월의 특활비 자료를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예산 및 회계와 관련된 기록물은 5년간 보존하도록 하고 있다. 만일 한 장관의 주장처럼 ‘매월 특활비 자료를 폐기하라’는 교육을 받았다면, 검찰 내부에서 위법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모순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뉴스타파 등 6개 언론사와 3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구성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은 이날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67개 검찰청 중 자료를 수령하지 못한 9개 검찰청을 제외한 56개 검찰청의 특활비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검증 결과, 56개 검찰청 중 42개의 검찰청이 2017년 1~8월 특활비 집행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면, 14개 검찰청은 이 시기 특활비 집행 관련 자료를 일부라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부산지검과 부산지검 동부·서부지청, 광주지검, 광주지검 장흥지청의 경우 이 기간 특활비 자료가 전부 존재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한 장관은 두 달 또는 한 달 폐기가 원칙, 관행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5개의 검찰청은 그 원칙과 관행이 적용되지 않은 건가. ‘원칙’이라고 했다가 ‘교육자료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말을 바꾸던데, 이 검찰청들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인가”라며 “한 장관의 특활비 자료 폐기와 관련한 그동안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게 이번에 다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었다.
한 장관은 2017년 9월 특활비 관련 지침이 시행된 후에는 특활비 자료가 “잘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게 공동취재단의 지적이다.
하 대표는 “2017년 9~12월 대검찰청에서만 2억원의 특활비 영수증이 없었고, 대구지검 서부지청, 대구지검 김천지청, 대구지검 상주지청, 광주지검 해남지청은 같은 기간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전체 자료가 다 폐기된 것”이라며 “2017년 8월 이전 자료는 다 폐기했다는 (한 장관의) 해명도 엉터리고, 2017년 9월 이후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는 해명도 엉터리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공기청정기 렌탈비도 기밀 수사? “빙산의 일각 중의 일각”이라는 황당한 검찰 특활비 실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 1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본사 앞에서 전국 67개 검찰청 특수활동비 예산 검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9.14 ⓒ뉴스1
이번 검증 과정에서는 검찰 특활비의 오·남용 실태도 새롭게 확인됐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 안보, 경호 등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쓰여야 하는 돈이다. 그런데 특활비 취지와 동떨어진 사용 내역이 다수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광주지검 장흥지청이 특활비를 공기청정기 렌탈비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동취재단이 확보한 특활비 자료는 집행 명목과 수령인 등을 확인할 수 없도록 먹지로 가려진 상태였지만, 미처 가리지 못한 자료 중 코웨이 공기청정기 렌탈 영수증을 발견한 것이다.
뉴스타파 박중석 기자는 “장흥지청은 당초 잘못을 인정하고 국고 반납을 언급했다. 그런데 3일 뒤 다시 연락하니 ‘당시엔 코로나19 상황이어서 검사실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공기청정기를 설치했기 때문에 특활비 집행 목적에 부합한다’고 했다. 당초 밝힌 세금 반납 의사를 철회하고, 대검과 협의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특활비로 검찰 간부들의 전출 기념사진을 찍거나 수사와 무관한 부서에서 특활비를 사용한 사례, 지검장 퇴임이나 이임 전 특활비를 몰아 쓴 사례, 정기적으로 각 부서에 배분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 등도 있었다. 특활비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만난 검찰 관계자들조차 특활비를 회식비나 격려금 형식으로 사용한다고 얘기했다고 공동취재단은 전했다. 하 대표는 “검찰이 가린다고 가리다가 제대로 못 가린 경우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것”이라며 “지금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특활비 용도에 맞지 않는 수많은 부정 사례가 드러난 만큼, 검찰의 특수활동비를 폐지 또는 삭감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채연하 사무처장은 “검찰은 특활비가 기밀 수사에 쓰이기 때문에 영수증을 제대로 첨부할 수도 없고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공기청정기 렌탈이 기밀 수사인가. 기념사진 찍는 게 기밀 수사인가”라며 “이번 예산 국회에서 굳이 수사에 필요하지 않은 예산을 허리띠로 졸라매는 모습을 국회가 보여줘야 한다. 법무부와 검찰도 특활비의 취지에 정확하게 맞게 스스로의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검찰의 특활비 오·남용 실태를 발표한 이날 공교롭게도 검찰은 뉴스타파를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이로 인해 기자회견도 당초 공지된 건물 내부 회의실이 아닌 건물 밖 주차장에서 진행됐다.
하 대표는 “검찰이 뉴스타파를 압수수색하는데, 특활비 자료를 불법 폐기한 전국의 검찰청부터 먼저 압수수색돼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검찰청은 압수수색을 받지 않고 언론에 대해서만 무차별적으로 압수수색하는 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고 비판했다.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 1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본사 앞에서 전국 67개 검찰청 특수활동비 예산 검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9.14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