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이날 한 장관은 출장비 공개와 관련해 질문을 받고 항소하지 않고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2023.09.01. ⓒ뉴시
한동훈 장관과 법무부의 행태는 참으로 놀랍다. 필자는 한동훈 장관이 2022년 6월 29일부터 7월 7일까지 다녀온 미국 출장비의 집행 내역과 지출 증빙 서류의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당연히 공개해야 할 정보를 ‘외교 관계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되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서 비공개하는 바람에, 필자는 에너지와 시간, 비용(인지대)을 들여 행정소송까지 벌여야 했다.
출장 가서 쓴 교통비, 숙박비의 액수와 그 증빙 서류(영수증)을 공개하는 것이 어떻게 외교 관계에 관한 사항이고,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친다는 말인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법원의 단호한 판결
그리고 지난 8월 24일 서울행정법원은 한동훈 장관의 미국 출장비 집행 내역과 지출 증빙 서류를 모두 공개하라는 취지의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법무부 측이 주장한 비공개 사유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출장 업무가 종료된 사후에 출장 경비의 세부적인 집행 내역 및 지출 증빙 서류를 추가적으로 공개한다고 하여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발생한다고 볼만한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바”라고 하여, 법무부 측의 주장을 단호하게 기각했다.
판결 이후 지난 9월 1일 국회 법사위에서 항소 여부에 관한 질의가 있자, 한동훈 장관은 항소하지 않고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9월 1일 국회 법사위에서 항소 여부에 관한 질의가 있자, 한동훈 장관은 항소하지 않고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국회 속기록
그래서 필자는 곧 정보를 공개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필자는 항소 기간이 지나서 판결이 확정된 9월 9일 이후에도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를 공개한다던 한동훈 장관은 몰타와 안도라로 해외 출장을 갔다고 한다.
물론 장관이 출장을 갔어도 담당자들은 국내에 있으니 정보 공개를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보 공개 결정은 대체로 과장 전결 사항이기도 하다. 그리고 법원 판결이 확정됐으니, 판단이 필요한 사항도 없다. 판결대로 공개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장관이 출장 갔어도 정보 공개를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런데 법무부의 그 누구도 필자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용증명받고도 아무 연락없어
게다가 판결이 확정된 후에도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필자는 지난 9월 12일 내용 증명 우편을 보냈다. 내용 증명에서 필자는 ‘받는 즉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내용 증명이 도착했는데도,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 자신 있게 ‘공개하겠다’는 얘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필자가 법무부장관 앞으로 보낸 내용 증명 ⓒ하승수
장관이 국회에서 항소하지 않고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했으면, 곧바로 시행하면 될 일이다. 항소기간이 지나기 전에 공개해도 되고, 최소한 판결이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한동훈 장관이 전임 정권 것도 공개하겠다고 해서, 필자는 이미 9월 1일에 ‘2015년 이후 법무부장관 해외 출장비 집행 내역과 지출 증빙 서류’ 전체에 대해 정보 공개 청구를 해 둔 상황이다.
그러니 더 이상 전임 정권 핑계를 댈 이유도 없다. 원래 정보 공개 청구는 청구한 순서대로 공개하게 되어 있으니, 한동훈 장관 본인 것부터 공개하는 것이 법 조항에 따르는 것이다. 게다가 소송까지 해서 법원 판결까지 확정됐으니, 즉시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전임 정권 것도 공개하면 된다.
게다가 한동훈 장관의 미국 출장비 집행 내역과 지출 증빙 서류의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니다.
정보공개소송에서는 재판부가 해당 정보를 비공개로 열람심사하는 제도가 있다. 그래서 변론기일에 법무부 소송 수행자가 재판부에 비공개로 자료를 제출했고, 재판부는 그 서류를 보고 비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 법무부가 제출하는 서류의 분량을 보니, 서류 봉투 1개 안에 들어갈 정도의 분량이었다. 그러니까 분량이 많아서 공개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일도 없다. 그런데 왜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청구인이자 소송 원고인 필자에게 아무 연락도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원희룡보다 못한 한동훈
모든 장관이 한동훈 장관 경우처럼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도 아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올해 1월 미국 출장을 다녀 왔다. 필자는 원희룡 장관의 미국 출장비에 대해서도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국토교통부는 교통비와 숙박비 영수증을 모두 공개했다.
영수증을 보면,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교통비를 얼마나 썼고, 숙박은 어디서 했고 숙박비는 얼마를 쓴 지에 관한 증빙서류일 뿐이다.
외교 관계하고 전혀 상관없는 정보이고, 공개된다고 해서 국익을 해칠 우려는 손톱 만큼도 없다.
그런데 법무부는 왜 비공개를 했는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언제 공개한다는 연락도 없는 상황이다.
조금은 더 지켜보겠지만, 그래도 아무 연락이 없거나 정보 공개를 지연시킨다면 또 다른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디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