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일 폐막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드러나 파장을 일으켰다. 나토 공동선언문 초안에 '가입 조건을 충족하고 동맹국이 동의하면 우크라이나에 가입 초청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를 확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시작하기도 전에 자기 트위터에 “터무니없다”, “나약하다”며 가입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나토를 비난했다. 이에 서방 국가들이 분노했고, 특히 흥분한 미국이 공동 선언문에서 '초청'이라는 단어를 아예 빼버리는 방안까지 검토하다가 철회한 것이다. 그런데 8월 중반부터는 서방 언론이 6월 초 시작된 후 별 성과가 없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두고 벌어지는 서방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책임 공방을 보도할 정도로 양측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과연 실패한 것인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는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소개한다.
마이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까다로운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드럽고 상냥한 외교관이다. 하지만 8월 31일 그가 폭발했다. “반격이 느리다고 비판하는 것은 매일 목숨을 희생하는 우크라이나 군인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모든 비판자들은 입 다물고 우크라이나에 와서 1평방 센티미터라도 스스로 해방시켜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익명의 관리들이 전장에서 우크라이나의 진전이 느리다고 문제 삼고 우크라이나의 군사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이 몇 주간 계속 보도하자 그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볼썽사나운 의견대립이다. 그래도 필요한 문제제기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반격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가?
미국과 영국은 6월 반격 몇 달 전부터 우크라이나와 긴밀히 협력했다. 양국은 정보와 조언을 제공하고, 다양한 공격이 어떻게 전개될지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세밀한 전쟁 훈련을 실시했으며, 서방 장비를 가장 많이 지원받은 여단의 설계와 훈련을 도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4월에 발생한 미국의 기밀문서 대규모 유출로 충격을 받았고, 반격을 연기한 후 정보를 많이 공유하지 않았다. (4월 6일부터 여러 미국 1급 기밀문서가 온라인상에 퍼졌는데, 거기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사상자 규모, 양 진영의 군사적 취약점, 우크라이나가 기다려온 봄 반격을 시작했을 때 예상되는 양쪽의 상대적 장점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전략 전술을 둘러싼 핵심 논쟁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올해 상반기에 전략적으로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저항의 상징이 된 동부 돈바스 지역의 마을 바흐무트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쟁을 세밀하게 추적 중인 로찬컨설팅의 콘라드 무지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마을을 지키기로 한 결정이 이후 반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비축된 포탄을 모두 소진했고, 러시아는 남쪽에 (지금은 해고된 장군의 이름을 딴) ‘소로비킨 라인’이라 불리는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었다.
반격 개시 이후에도 동맹들의 내부 갈등이 계속됐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남쪽의 주요 공격 축인 아조프해에 병력을 집중하라고 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을 더 긴 전선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병력을 분할했다. 대부분 구식 장비로 무장한 가장 경험 많은 여단은 바흐무트에 남았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인맥이 좋은 바흐무트 주변의 여단들이 군사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탄약을 배분받는 등 정치적인 고려가 군사 전략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최신 장비로 무장했지만 경험이 적은 여단을 더 중요한 남쪽 축에 배치했다. 이들은 러시아 대포와 드론, 헬리콥터로 뒤덮인 지뢰가 빽빽한 전장에서 순식간에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훈련되지 않은 지휘관들은 아군 지뢰를 밟거나 공격 타이밍을 잘못 맞추는 등 실수를 연발했다. 러시아 군대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만과 롭 리는 경험이 많은 우크라이나 여단에게 새 장비가 주어졌다면 신생 여단이 저지른 실수 중 상당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초기 실수에 대해 일부 책임이 반격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있다고도 말한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서비스연구소(RUSI)의 잭 와틀링과 닉 레이놀즈는 이번 공격이 새로운 종류의 센서와 드론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의 국제 파트너들이 우크라이나 군대에게 훈련시키려고 했던 전술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의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이 없었던 20세기의 작전 분석에 기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서양 기획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러시아의 방어시설이 훨씬 튼튼했다.
누구의 책임이든 뭔가 잘못됐다는 건 분명하다. 로찬컨설팅의 무지카는 공격이 중단될 경우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는 비상계획이 우크라이나에게 없었다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지휘관들은 결국 중무장을 보류하고 더 단순한 전략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공병이 기어다니며 지뢰를 하나씩 제거했고, 대규모 여단이 아닌 소대와 중대가 나무나 숲을 장애물 삼아 노출을 최소화하며 매우 더디게 전진했다. 덕분에 병력과 장비 손실은 크지 않았지만, 5일에 700미터에서 1,200미터 정도의 진격만 가능해 러시아군이 방어선을 리셋할 시간이 충분했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의 진격 속도가 조금은 빨라졌다고 한다).
이는 두 가지 논쟁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리스크를 너무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 서방 관련자는 우크라이나가 계획대로 더 대담하게 대규모 공격을 계속했다면 초반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해도 러시아 전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해서 반격 기간을 단축하고 전체적인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지친 시민군이 러시아군의 인해전술을 따라 하기 어렵고, 설혹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유혈 사태가 더 커지기만 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두 번째 논쟁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전쟁 방식을 모방해야 하는지, 아니면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서방은 기갑 부대가 보병, 포병, 방공, 그리고 전자 및 사이버 공격이 함께 이뤄지는 통합작전을 선호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뤄진 5주간의 사전 공격 훈련만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이런 방식에 능숙해질 수 없었다. 한 미국 관련자는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소련식의 사고에 얽매여 있다고 불평했다. 우크라이나는 정밀 공격보다 포격을 퍼붓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양국 간에 갈등이 있다고 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주요 탄약 공급처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관련자는 우크라이나의 사고방식과 전술을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미 해병대 출신의 군사전술 전문가인 B.A. 프리드먼은 우크라이나의 방식이 사실은 목적에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1918년 봄 1차 대전 서부전선에서 수년간 교착 상태에 빠진 독일군은 대규모 부대가 포격에 너무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독일은 적진을 돌파하고 영토를 점령할 수 있는 작고 민첩하며 고도로 훈련된 ‘스톰 트루퍼’를 먼저 투입하고 중무장한 부대는 그 뒤를 따르게 했다. 프리드먼은 효과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우크라이나의 공군력이 약하기 때문에, 공군이 강화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가 선택한 방식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했다. 유럽의 많은 군 장교도 훈련과 장비를 잘 갖춘 자국 군대라도 수로비킨 전선을 뚫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
프리드먼은 또한 미국이 전술에 대해 훈수할 입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최근 전투 경험의 대부분이 소규모 부대가 엄폐물을 이용해 산악지역이나 사막과 같은 진격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 지상군의 두 주요 훈련센터인 육군의 포트 어윈과 해병대의 트웬티나인 팜스 훈련센터 모두가 캘리포니아의 사막에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한마디로 미국은 전투에서든 훈련에서든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경험이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와틀링과 레이놀즈는 지난 18개월 동안 우크라이나 일반병의 급격한 증가와 장교의 감소로 인해 공격 작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하급 지도자가 지적한다. 그 결과 결정권이 고위 장교에게 넘어가면서 이미 일이 많던 여단 사령부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렸다.
이번 여름에 이뤄진 도네츠크주의 리브노필 마을 공격이 대표적인 예다. 공격자는 연기를 내뿜어 자기 움직임을 은폐하고 적을 혼란에 빠뜨려야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포격을 가할 때 연막을 사용한 경우는 3%에 불과했다. 고위 지휘관들이 드론을 통해 전투를 지켜보는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상사가 멀리서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솔선수범할 수 있는 믿음직한 하급 장교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훈련의 질도 중요하다. 와틀링과 레이놀즈는 서방의 훈련시설이 나토의 안전문화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드론은 포병 부대가 목표물을 발견하고 보병이 정찰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토 훈련 지역에서는 드론이 항로를 벗어날 것을 우려해 드론 비행 시기와 방법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또한 안전 규칙으로 인해 포병 기술은 일반적으로 교육 과정 후반부에 가르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는 포병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전투를 할 수가 없다. 유럽의 보건 및 안전 규칙이 국가 생존을 위한 전쟁에 적합하지 않다.
이런 문제의 대부분은 현재 반격 중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결국 기계 및 기갑 병력을 다시 투입해야 할 것이다. 지뢰밭이 1차 방어선 너머에는 밀도가 낮기 때문에 돌파구 마련이 더 쉬워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가을까지 싸울 수 있는 탄약은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9월 10일에 곧 우크라이나의 우기가 시작돼 비와 진흙 때문에 차량 진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본격적인 전투를 할 수 있는 날이 30~45일 정도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는 로보티네 마을 주변의 자포리자에서 러시아의 3개 방어선 중 첫 번째 방어선을 뚫고 동쪽의 베르보베로 진격해 노보프로코피브카 마을을 향하며 남쪽 지방에서 이전보다는 빠르게 진격하고 있다. 9월 13일에는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이용하는 크림반도 조선소를 미사일로 공격해 선박에 불을 질렀다. 러시아는 76 공습 사단의 예비 병력을 투입해야 했지만 우크라이나가 8월에 먼저 예비 병력을 투입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양측에게 아직 지치지 않은 병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병력 감소율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앞서는 것 같지만,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에게는 구멍을 메울 정도의 예비군은 충분히 남아 있다고 한다.
로찬컨설팅의 무지카는 러시아 전선이 붕괴되지 않는 한, 지난 3개월 동안 이뤄진 전투가 앞으로도 몇 달 동안 계속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야만 상황이 더 빨라질 것이라 주장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자문을 구한 수십 명의 서방 관리도 겨울이 오기 전에 큰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데 회의적이다. 그들 중 하나는 ‘우리가 생각한 타임라인을 연장해야 한다’고 했다. 매우 긴 투쟁이 될 수 있다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