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개념 연예인’에 대해 묻는다

지난 9월 12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뮤지션 김윤아를 맹비난했다. 밴드 자우림의 보컬이기도 한 김윤아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RIP(Rest in peace) 지구(地球)” 등의 글을 올리며 우려하는 의견을 표현한 뒤의 일이다. 김기현은 그날 서울특별시 중구 한국관광공사에서 열린 사단법인 문화자유행동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근 어떤 밴드 멤버가 오염처리수 방류 후 '지옥이 생각난다'고 이야기한 걸 들으며 개념 연예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며 김윤아를 공격했다. 그 후 김윤아의 소속사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는 "결코 정치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이 아니었고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와 아쉬움을 표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주 이 공방이 논란이 되긴 했지만, 날마다 수많은 이슈가 쏟아지는 한국 사회답게 금세 잊혀졌다. 김기현이나 김윤아 중에 누구도 더 이상 의견을 내놓지 않았고, 사람들의 관심도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않다. 모든 사건은 현실을 드러낸다.

가수 김윤아가 일본 오염수 방류에 분노하며 올린 사진 ⓒ김윤아 SNS

먼저 이번 사건은 집권여당의 대표인 정치인이 오염수 논란과 시민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윤아가 일본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윤석열 정부의 대응을 문제제기 하지 않았음에도 김윤아를 비난한 것은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민들의 여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김윤아의 소셜미디어 글은 시민 다수가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고백한 것뿐인데, 이를 비판한 걸 보면 시민의 우려를 외교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시민과 싸우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아주 잘 보인다. 실제로 75%에 달하는 시민들이 오염수 방류는 문제 있다고 했음에도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은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아직 별문제 없는 회 사먹기 퍼포먼스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더 따져봐야 할 지점은 김윤아를 개념 연예인이라고 칭송하는 반응과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라고 비난하는 반응의 충돌이다. 개념 연예인이라는 호칭은 이명박 정권 시기 광우병 소고기 관련 촛불 집회가 정국을 강타했을 때 생긴 호칭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를 용감하게 비판한 이들을 개념 연예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호칭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내내 여러 대중예술인들에게 이어졌다. 대중예술인이 정부를 비판할 때, 특히 국민의힘 계열의 정부를 비판할 때나 큰 액수를 기부할 때 주로 개념 연예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최근 배우 이영애가 이승만 기념관에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는 아무도 그를 개념 연예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는 개념 연예인이라는 호칭을 친 더불어민주당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만 사용한다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개념을 갖고 살아갈 텐데, 특정한 발언과 행동을 할 때만 개념 연예인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인정하지 않는 선별적 태도다. 이 같은 태도가 김윤아를 비판하는 김기현의 모습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뮤지션 신해철이 노무현 정권 당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며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을 때는 그를 개념 연예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개념 연예인이라는 호칭을 편파적으로 부여한다는 증거다.

개념은 우리 편에게만 부여하는 훈장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똑같을 수 없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대중예술인,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대중예술인에게도 개념 연예인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 다를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경우 김윤아를 비난하는 국민의힘 정치인과 지지자들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에게 비난받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대중예술인들은 여전히 솔직하기 어렵다. 자신이 중시하는 ‘개념’을 밝히기 어렵다. 대중예술인은 정치와 사회에 대해 순수하고 해맑아 보이는 태도를 고수하거나, 솔직한 의견을 표현할 때도 자신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계속 변명해야 한다.

더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은 작가나 교수, 판사, 의사 같은 이들이 정부를 비판할 때는 ‘개념 OO’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대중예술인이 특정한 사회적 발언을 할 때만 개념 연예인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이는 대중예술인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중예술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의 반영은 아닐까.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대중예술인을 ‘딴따라’라고 하대했다. ⓒpixabay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대중예술인을 ‘딴따라’라고 하대했다. 대중예술인은 생각 없이 춤과 노래, 연기만 잘하면 되는 기능인 취급을 해왔다. 그러면서 대선 때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면 얼굴마담처럼 활용할 뿐이었다. 만약 대중예술인이 평소에도 이런 저런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그들이 의미 있고 깊이 있는 의견을 내놓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사회라면 개념 연예인이라는 말이 필요했을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대중예술인의 의견과 자유와 존엄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개념 연예인이라는 단어로 존중하는 것처럼 포장한 것은 아닐까.

물론 개념 연예인이라는 호칭이 대중예술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용기 있는 대중예술인이 모두가 개념 연예인이 되지는 못한다. 실제로 여성 대중예술인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표현할 때, 한국 사회는 그를 개념 연예인이라고 칭송하지 않았다. 개념 연예인이라고 방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희롱하기 급급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개념 연예인이라는 개념을 중시하는,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게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은 그다지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부만이 일부만을 위해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개념 연예인이라는 호칭이 탐탁지 않은 이유다. 개념 예술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대중예술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그 개념 안에 더 많은 가치들이 채워지기를 바란다. 유인촌이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돌아온 세상에서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