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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배신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 칼럼의 간판이 ‘협동의 경제학’이고, 내가 이 칼럼에서 협동에 대해 자주 언급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인간에 대해 매우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내 개인적 성격이 관대하냐 쪼잔하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종종 언급하는 협동의 경제학이 마냥 인간의 관대함을 믿는 분야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당연히 협동적인 인간도 있고 배신을 일삼는 인간도 있다. 테레사 수녀님 같이 이타적인 사람도 있고, 이명박처럼 이기적인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고 협동의 경제학은 이 두 영역을 모두 연구한다.

이런 이유로 배신은 협동 경제학에서 꽤 중요한 연구 과제다. 배신자를 처벌할 것인가, 혹은 관용을 베풀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매우 다양한 연구가 존재한다. 그런데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결론은 거의 일맥상통한다. 배신자에 대해 단호한 응징을 가하는 것이 협동적 사회를 강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팃포탯 전략의 교훈

게임이론 분야에는 팃포탯 전략(tit for tat)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하면 ‘눈에는 눈, 귀에는 귀’를 기본으로 하는 보복 전략이다.

이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 상황에서 첫 판 때 나는 상대에게 반드시 협력한다. 나에게 결정된 행동은 이 첫 판 뿐이다. 이후에 내 행동은 전적으로 상대에 달렸다. 상대가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한다.

이 전략이 놀라운 이유는, 이런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상대방이 펼치는 웬만한 전략은 다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과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 교수가 개최한 죄수의 딜레마 대회에서 팃포탯은 2회 연속 압도적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단순한 전략이 왜 강력할까? 나의 반복되고 규칙적인 행동이 상대방에게 분명한 경고를 날리기 때문이다. 상대가 협력하면 나도 협력한다.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한다. 이게 반복되면 상대는 분명히 알게 된다. ‘내가 배신하면 상대는 반드시 다음 판에서 나를 응징하겠구나. 반면 내가 협력하면 상대도 나를 도와줘 나에게 이익이 되는 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전략의 또 다른 위대한 점은 상대의 성품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상대가 이명박 같은 나쁜 자이건 테레사 수녀님 같은 훌륭한 분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일관되게 보복과 협동을 구사하면 설혹 이명박 같은 나쁜 자도 결국 협동의 길에 동참하게 돼 있다. 그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상대가 협동을 하건 배신을 하건 무조건 용서해주는 전략도 있다. 그런데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전략을 협동(Cooperate) 전략이라고 부르는데 프랑스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이 전략은 12개 참가 전략 중 고작 8위에 그쳤다. 상대를 무조건 용서하는 건 별 볼일이 없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결국 팃포탯 전략의 가르침은 배신자를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반복된 공공재 게임의 교훈

이번에는 다른 연구를 살펴보자. 이번에 다룰 이야기는 공공재 게임(public goods game)이라는 게임 이론이다. 게임 과정이 꽤 복잡하지만 단순화하면 이렇다.

참가자 다섯 명에게 1만 원씩 나눠준 뒤 받은 돈 중 일부를 공공금고에 기부하라고 요청한다. 얼마를 기부하건 상관이 없고,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참가자가 돈을 기부하면 그 돈은 세 배로 불어 공공금고에 적립된다. 그리고 불어난 돈은 참가자 다섯 명에게 5분의 1씩 분배된다. 누가 얼마를 기부했건 받는 돈은 5분의 1로 똑같다.

이 게임의 취지는 이렇다. 우리가 공공을 위해 기부를 하면 그 돈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매우 큰 혜택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세금을 많이 내 북유럽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게임을 해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혜택만 챙기고 내 돈은 내려 하지 않는 이기적 인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세금은 내기 싫어하면서 복지 혜택은 챙기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하다.

문제는 이 게임을 반복할 때 벌어진다. 첫 판에서는 돈을 기부하지 않은 이명박 같은 인간이 이익을 본다. 자기 돈도 아끼고, 5분의 1에 해당하는 분배금도 받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23.09.21. ⓒ뉴스1

하지만 이 게임이 반복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첫판에서 이명박 같은 인간이 기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나머지 참가자들도 속속 기부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왜 나만 기부를 해서 남 좋은 일을 시켜줘?’ 심리가 작용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판이 거듭되면 결국 다섯 명 모두 아무도 기부하지 않는 일이 생긴다.

이를 막는 가장 선명한 방법은 어떻게든 첫판에서 배신을 선택한 이명박 같은 인간을 색출해 게임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다시피 이기심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서 단 한 명의 배신자를 방치하더라도 배신자가 이익을 챙기는 순간 다른 사람들도 배신의 유혹을 받는다.

이 연구 또한 배신자를 색출하고 응징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렇듯 협동의 경제학이라 이름 붙인 대부분의 연구들은 배신자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원칙으로 삼는 특징이 있다.

배신은 행복하지 않다

배신자에 대한 처벌은 인간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동물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대표적 동물이 흡혈박쥐다. 이 박쥐는 소나 말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데 생후 2년까지는 너무 어려서 흡혈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러면 이 어린 박쥐들은 다 죽느냐? 그렇지 않다. 사냥에 성공한 성인 흡혈박쥐들이 어린 흡혈박쥐에게 피를 나눠주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에게만 나눠주는 게 아니다. 남의 자식에게도 기꺼이 자기가 얻은 피를 나눠 준다. 매우 협동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무리 중에 만약 얻은 피를 혼자 홀라당 다 먹는 이명박 같은 박쥐가 등장했다고 치자. 박쥐 무리는 그 배신자 박쥐를 즉시 따돌려버린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 배신자 박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혜택도 베풀지 않는다.

이렇게 강력히 응징을 해야 배신자 박쥐의 추가 출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 사회도 협동적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배신자를 강력히 응징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신경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 인간이 돈에 관한 선택을 할 때 신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신경경제학자인 케빈 맥카베(Kevin McCabe) 조지메이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신뢰와 배신이 모두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는 이유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 덕분이다.

옥시토신은 사랑, 행복, 돌봄 등의 마음을 유발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많이 분비될수록 사람은 남을 더 돌보게 된다. 그리고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될수록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도 늘어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이 말은 남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실제 미국 클레어몬트 칼리지 경제학과 폴 잭(Paul Zak)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게임에서 남을 배신한 플레이어보다 신뢰를 보여준 플레이어의 몸에서 옥시토신이 훨씬 더 많이 분비됐고 훨씬 더 많이 행복해했다.

배신은 옥시토신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나올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돌봄, 나눔에도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런 배신자들이 신뢰로 연결된 동지들에 비해 훨씬 덜 행복하다는 것이다. 옥시토신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배신을 통해 당장의 이익을 취하는 것, 그게 잠깐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영원히 달콤할 수는 없다. 특히 협동적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해 배신을 응징하는 체계를 잘 갖춘 공동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배신하는 것이 스스로의 삶을 그다지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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