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상승세를 보이던 집값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기미를 보이자, 윤석열 정부가 ‘주택 공급 부족’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이 신규 사업을 꺼리면서 인허가나 착공이 크게 줄었고, 이에 따라 2~3년 뒤 주택공급 물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주택 공급 부족론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공급물량을 늘려 공급부족에 따른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계획이지만, 실제로는 안정되고 있던 집값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일 국토교통부(국토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주택 인허가 누적 실적은 20만7,278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29.9%(8만8,577가구) 감소했다. 같은 기간 착공은 22만3,082가구에서 10만2,299가구로 54.1% 줄었다.
통상 주택은 인허가 3~5년, 착공 2~3년 뒤 공급이 이뤄진다. 올해 감소한 인허가, 착공 실적으로 인해 2~3년 뒤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최근 인허가 물량이 예측보다 부진하다”며 “LH를 필두로 한 공공주택 공급과 K-건설의 도약을 위한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을지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파트 자료사진. ⓒ김슬찬 기자
‘공급 부족’ 공식화한 윤석열정부, 집값 자극할까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이 오히려 수요를 부추겨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요소수 부족 사태 때를 생각해 보면 사재기나 가격 폭등 등을 우려해 직접적인 언급하는 걸 피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게 상식이다”라면서 “하지만 최근 정부는 직접 나서 ‘주택 공급 부족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의아해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어떤 의도에서 공급 부족을 강조했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안정돼 가던 집값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말하는 공급 부족이 현실화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최근 주택 인허가, 착공 물량이 급감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실제로는 이전까지 주택경기 호황으로 인해 인허가가 너무 많아 발생한 ‘기고효과’라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2015~2020년까진 부동산 경기가 좋아 인허가 착공이 너무 많았던 것”이라며 “호황기와 비교해 인허가 실적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지 이전과 비교하면 공급부족을 우려할 만큼 낮은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토부 주택통계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가 호황으로 접어들기 이전인 2010년대 초반 주택 인허가 실적은 올해(20만7,278가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11년 7월 주택 인허가 실적은 21만4,145호, 2012년 28만2,147호, 2013년 21만6,518호 등이다.
물론 분양 물량이 소폭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주택공급량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신규 주택 물량은 감소하더라도, 기존 재고 매물과 미분양 물량 등을 감안하면 공급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일반적으로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공급 물량은 건설사가 짓는 물량이 다가 아니다”라며 “건설사가 아파트를 조금 덜 짓더라도, 기존에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팔려고 한다면 공급은 더 늘어난다. 진짜 집값은 바로 이런 공급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집값은 공급과 함께 수요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공급이 아무리 많아도 수요가 더 많으면 가격이 상승한다”며 “반대로 공급이 감소해도 수요가 더 줄어들면 가격은 하락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최근 집값은 주택 공급량과 상관없이 등락을 반복했다. 국토부 준공실적 자료를 살펴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준공실적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특히 2018년 준공물량은 약 48만호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기간 집값은 상승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매물이 늘어나 집값이 안정화돼야 하지만, 오히려 오른 것이다. 반대로 2019년 준공 물량은 약 40만호로 전년보다 감소했지만, 집값은 하락했다. 작년에도 준공물량은 줄었는데, 집값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정부의 주택 공급 부족 우려에 대해 “과장된 평가”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대표는 정부의 공급 부족론에 대해 “‘공급 부족’ 이슈가 생기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집이 부족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수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특례보금자리론 자료사진 ⓒ뉴시스
‘대출 풀어’ 집값 올린 윤석열정부, 집값 안정 대책으로는 ‘공급 확대’?
‘공급 물량 확대’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안정화돼 가던 집값이 올해 다시 오르기 시작한 건 정부의 정책금융 상품의 영향인데, 정작 집값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공급 확대’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1월 특례보금자리론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대출 신청액은 1년 공급 한도(39조6천억원)의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연 4%대의 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을 해준다.
또 정부는 올해 7월 만기 5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만기가 길어지는 만큼 차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올해 총 8조3천억원이 공급됐다.
이 대표는 “정부가 정말 집값 안정을 원한다면 공급을 늘릴 게 아니라 대출을 규제하고 건전한 가계대출을 유지하겠다고 해야 한다”면서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 사는 사람들이 줄여 수요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돼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공급을 늘리더라도 수요가 그보다 많으면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위해 국내 주택 공급의 공공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주택 인허가 물량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92%에 달했다. 공공의 비중은 8%에 그쳤다.
이 대표는 “주택공급의 민간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집값이 오르면 너무 많이 공급돼 미분양이 증가하고,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점차 공급이 필요한 상황에선 오히려 공급을 줄인다”며 “부동산 경기나 집값과 상관없이 꾸준히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선 공공의 비중을 늘리는 게 핵심 과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