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수사기관이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제기했던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의 과거 수사 전력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검찰단으로부터 항명죄 수사를 받고 있는 박 전 단장 측은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해군검찰단 등 복수의 군 수사기관이 ‘피의자가 처리한 사건들’에 대해 그 기록을 불법적으로 열람하고 있다고 한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니,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란다”고 국방부 장관에 요청했다.
군검찰단의 박 전 단장 항명죄 수사의 타당성조차 불명확한 상황에서 박 전 단장의 과거 수사 내용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의 저의가 무엇인지 수상할 따름이다. 아마 군 수사기관은 과거 수사 과정에서도 윗선의 지시와 충돌한 적이 있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펼 수도 있겠으나, 그런 배경이 과거 수사기록에 담겨 있을 리가 만무하며, 항명죄와 무관한 과거 행적을 뒤져서 지금 수사의 근거로 쓴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결국 박 전 단장이 과거 수사 과정에서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없는지 들여다보고, 이를 토대로 박 전 단장을 흠집내서 숨통을 조이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는 전형적인 별건 수사로, 민간 검찰이 늘 의심받던 정치 수사 행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박 전 단장이 다른 군인들과 달리 윗선의 지시에 굴복하지 않고 윗선의 외압 의혹을 폭로한 마당에, 마냥 은밀한 방식으로 박 전 단장을 찍어누르긴 어렵다고 판단해 민간 검찰의 정치 수사 행태를 답습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군 당국은 당초 박 전 단장이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빼라고 했다’는 윗선 외압 의혹을 제기하자마자 ‘사단장을 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초급간부들까지 혐의 대상에 넣은 것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여론전을 폈다. 마치 박 전 단장이 스스로 돋보이려고 애꿎은 후배들까지 무리하게 처벌받게 하려고 했다는 프레임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박 전 단장으로부터 사건을 회수해간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단장 등 장성급 간부들에게 면죄부를 준 채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면서, 군 당국의 여론전은 궁색해졌다.
비록 지금은 군 당국이 항명죄로 엮고, 과거 행적을 뒤져서 박 전 단장을 괴롭힐 수 있는 위치에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사안은 구조적으로 단순히 항명죄 수사로만 결론을 내기 어렵다. 박 전 단장이 지휘했던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초동조사의 정당성 및 박 전 단장이 폭로했던 외압 의혹에 대한 진상이 함께 규명되어야 하고, 그 결론에 따라 박 전 단장 항명죄에 대한 실체도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압 의혹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고발이 이미 이뤄졌고, 정치권에서는 특검 도입 절차를 밟고 있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 역시 경찰의 독립적 수사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향후 이 사안들에 대한 제3의 수사기관의 독립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사안의 진상이 하나하나 밝혀진다고 했을 때, 과연 군 당국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군 당국이 장래에 최소한의 존엄을 인정받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박 전 단장에 대한 흠집내기 시도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해병대원 사망 사건과 외압 의혹 진상 규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박 전 단장의 항명죄 수사를 중단하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