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국가보안법 제2조와 제7조에 관한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재청 사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2023.09.26 ⓒ민중의소리
국가보안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7조가 위헌인지 여부를 심판해달라는 요청에 헌법재판소가 또다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벌써 8번째다. 이적표현물 소지만으로도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9명 중 과반인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 결정의 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결국 합헌 결정이 났다.
헌재는 26일 오후 국가보안법 2조와 7조 조항들에 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 대한 심리를 마치고 이같이 결정했다. 2017년 수원지법과 2019년 대전지법이 각각 낸 위헌제청과 개인 헌법소원 등 모두 11건에 대한 결론이 병합된 사건이다. 즉, 해당 법조항들로 처벌 대상이 된 당사자 이를 판결해야 하는 법원들이 제기한 것들이었다.
심판 대상은 ‘반국가단체’에 대한 정의를 다룬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각종 이적행위와 이적표현물에 관한 처벌 규정을 담은 7조 1·3·5항이었다.
헌재는 이 가운데 이적행위를 찬양 또는 고무하면 처벌하는 7조 1항과 이적표현물을 유포하거나 소지만 해도 처벌하는 7조 5항에 대해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두 조항에 대해 모두 합헌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의 근거 논리는 위헌심판 공개변론에서 국가보안법이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온 국방부의 논리와 판박이였다.
4명의 재판관은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북한으로 인한 대한민국 체제 존립의 위협 역시 지속되고 있다”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봐온 국가보안법의 전통적 입장을 변경해야 할 만큼 국제정세나 북한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합헌 의견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해당 조항의 처벌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기존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례가 축적되면서 이적행위 조항 및 이적표현물 조항의 구성 요건 등을 해석하는 규범적 질서가 더욱 확고하게 형성됐다”며 “이적행위 조항 및 이적표현물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미칠 위험성이 명백한 경우에 한해 국가보안법이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해 온 헌재 결정 및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이적행위 조항 및 이적표현물 조항의 적용 범위는 이미 최소한으로 축소됐다”며 해당 조항이 이념적 성향에 따른 탄압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최근 전자매체 형태의 이적표현물이 증가하고 있고 있기 때문에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거나 취득하는 행위를 금지할 필요성은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반면 3명의 재판관(김기영·문형배, 이미선)은 두 조항에 대해 모두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개념으로, 개인의 인격을 보장하는 가장 존엄한 기본권 중 하나”라며 해당 국가보안법 조항에 대해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과도하고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조항에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험이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고, 구체적인 위험이 임박했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도 행위자가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적행위로 인해 구체적 위험이 임박한 경우에도 형법상의 내란죄 혹은 그 미수죄, 내란의 예비 또는 선동죄 등을 통해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적행위 조항을 통한 별도의 처벌 필요성도 크지 않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전자매체 형태의 이적표현물이 많아져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의 정보통신망은 양방향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전자매체 형식으로 유통되는 이적표현물의 경우, 사상의 자유 경쟁 시장에서 신속하게 검증되고 배제될 수도 있으므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이런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이들은 “이적행위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 이상, 이적행위 조항의 행위를 할 목적을 주관적 구성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이적표현물 조항 역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 내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다.
나머지 2명의 재판관(유남석·정경미)은 이적표현물 조항 중 소지와 취득 부분에 대해서만 위헌 의견을 냈다. 이에 따르면 총 5명의 재판관이 이적 표현물의 소지와 취득 부분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낸 것으로, 헌재에서 다수 의견을 차지한다. 앞서 2015년 헌재가 국가보안법 7조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에도, 재판관 9명 중 과반인 5명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때도 단 한 명이 모자랐기 때문에 최종 합헌 결정으로 정리가 됐던 것이었다.
이날 2명의 재판관은 “이적표현물의 소지, 취득 행위는 양심상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지식, 정보를 습득하거나 보관하는 행위로, 양심 형성의 자유의 보호 영역에 속한다”며 “양심 형성의 자유는 외부의 간섭과 강제로부터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기본권이므로, 이적표현물의 소지나 취득 행위를 통해 형성된 양심적 결정이 외부로 표현되고 실현되지 않은 단계에서 이를 처벌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국가의 안정과 생존 및 자위 확보라는 입법 목적은 이적표현물의 유포, 전파를 금지하고 처벌함으로써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따라서 이적포현물을 소지 또는 취득한 자가 이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만을 근거로 이적표현물의 소지 또는 취득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적표현물의 소지 행위는 계속범에 해당해 사실상 공소시효가 의미가 없고, 행위자는 자신이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벌되는 경우도 있어 형벌권이 남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그외 ‘반국가단체’를 정의한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반국가단체’ 형성 또는 가입 시 처벌하는 7조 3항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는 모두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심판 청구 대상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2조 1항에 대해 헌재는 “법원의 법률 해석이나 재판 결과를 다투는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관계자들과 접경지역 주민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심판 선고에 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헌법재판소 선고를 규탄하고 있다. 2023.09.26 ⓒ민중의소리
이런 헌재의 결정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 위헌소송 대리인단 단장인 최병모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은 본래 제정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이 법이 제정된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왔다”며 “그런데 이 체제에 순응적인 헌법재판소가 또 극히 보수적인 현실을 옹호하는 판결을 했다”고 개탄했다.
최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7조의 경우 이미 노무현 정권 때 여야가 합의해서 폐지하자는 합의까지 거의 이르렀던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대로 살아남아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거의 모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약 80~90%가 국가보안법 7조의 찬양, 고무, 이적표현물 제작 및 소지, 반포 관련 조항에 위반한 것들”이라며 “거의 모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들이 이 조항 때문에 터무니없이 처벌되고 터무니없이 강한 제제 아래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이번에는 적어도 이적표현물 소지, 반포, 운반에 관한 조항에 대해선 위헌 결정이 내려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통탄스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도 이날 긴급성명을 내고 “반민주·반헌법적 헌재의 결정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국민행동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고 헌재에 위헌 의견서를 제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에도,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폐지와 개정을 권고한 유엔 인권기구들의 지적에도, 바로 2주 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공식 보고된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에도 꿈쩍 않는 대한민국 헌재”라며 “헌재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헌재는 이날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규제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대북전단살포금지법) 위헌 확인 사건에 대해서는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헌재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심판 때와는 달리,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헌재는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면서도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