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명숙 칼럼] 정부에게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권한을 주겠다고?

가짜뉴스 대책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와 침해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3.08.25. ⓒ뉴시스

지난 4.19 기념추도사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공식행사 때마다 ‘가짜뉴스’ 운운했다. 이번 미국 방문 중에도 “인공지능(AI)과 디지털의 오남용이 만들어내는 가짜뉴스 확산을 방지하지 못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가 위협받게” 된다는 연설까지 할 정도로 ‘가짜뉴스 방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 그랬듯이, 대통령의 한마디는 시그널이 되어 정책으로 나타난다. 특히 ‘김만배 녹취 (뉴스타파) 보도’를 기회로 잡은 정부는 속도를 내 대응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9월 6일 ‘윤석열 커피 가짜뉴스’ 사건과 관련하여 가짜뉴스 퇴치 TF’ 내부의 대응팀을 만들어 대응한다고 보도자료를 내더니, 9월 8일에는 인터넷 매체-뉴스포털-방송 등을 통한 가짜뉴스 확산을 막겠다며, 핵심적인 유통 역할을 네이버 등 인터넷포털이 했다며 개선책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롤 배포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9월 1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 창구’를 개설해 접수 순서와 관계없이 신속하게 심의·구제 절차를 진행하는 ‘원스톱 패스트트랙’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민간기구인 방심위에 ‘가짜뉴스’ 제재 권한을 줄 법적 근거도 없지만 이런 발표를 했다. 보도자료에도 나왔듯이 ‘가짜뉴스의 정의 및 판단기준’은 없는데도 권한을 줬다. 방심위에 권한을 주자 방심위는 9월 21일에 인터넷 신문에 대한 내용규제를 선언했고, 26일에는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이하 ‘가짜뉴스 심의센터’)가 공식 출범했다.

가짜뉴스 판단할 기준이 없는데 권한을 준다고?


보도자료에 따르면, ‘가짜뉴스 심의센터’가 다루는 내용은 “긴급재난 사항, 중대한 공익 침해, 개인 또는 단체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금융시장 등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중대사항을 중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해당 사안에서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내용, 판단 기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가짜뉴스를 판단할 기준이 없는데 기관에 권한을 준다는 뜻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격이 아닐까. ‘가짜뉴스 심의센터’의 자의성은 커지고 심의자는 정부의 입맛대로 가짜뉴스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방심위는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게시물에 조치를 취할 법적 권한이 없는 기구이고, 인터넷 언론은 방심위 심의대상이 아님에도 이러한 위헌적인 활동을 당당하게 선포하다니 기가 막히다. 그런데도 그 영향력은 벌써 효과를 내고 있다. 네이버는 ‘정정보도 모음’이란 방식으로 바로 정부 방침에 호응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 암담하다. 설상가상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짜뉴스신고센터 운영에 협조적이고, 지난 8월 31일 보수단체가 연 가짜뉴스 시상식을 후원한 것에서 드러나듯, 친정부적 여론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국회 및 관계기관과 협의해 ▲가짜뉴스의 정의 및 판단기준, ▲사업자 자율규제 및 심의제도 개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보완 입법과 국회 계류 중인 관련 법안에 대한 입법 지원을 밝혔으나 법적 근거 없이 서둘러 센터를 만들고 추진하는 것은 초법적인 일이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여러 법적 제재가 가능한 상황에서 직접 심의해서 제재, 차단한다는 것은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대로 간다면 인터넷신문기사에 대해 방심위가 심의하고 기사에 대한 삭제 및 차단 조치까지 명령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결국, 정부가 밀어붙이는 가짜뉴스의 판단 기준은 ‘정부 비판적인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짜뉴스 심의는 인터넷 언론의 보도 기능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제공=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론의 자유 침해만이 아니라 시민의 알권리도 동시에 위축시킬 수 있다. 만약 심의센터가 정부 주장대로 권한을 갖는다면 지난해 미국순방 중 바이든을 비난한 발언을 보도한 MBC 탄압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터넷언론사나 포털에서 정부 비판적인 MBC의 해당기사를 소개하기도 전에 기사가 차단되어 이를 시민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시민들이 생각을 나눌 기회조차 차단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해당 사건에 대해 판단할 기회조차, 알권리조차 빼앗기게 되는 것이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가짜뉴스라는 낙인은 다양한 공론의 장소 없애고 소수자의 목소리 지워


정부의 방안은 국제인권기준에도 반한다. 한국도 가입되어 있는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이하 유엔자유권규약)에 따르면 추상적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불법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다.

이미 문재인 정부 때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담은 언론중재법에 대해 2021년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허위정보를 금지한다는 취지만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한 언론, 정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국제인권단체인 ARTICLE19도,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제인권기준에 따르면 국가는 정보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여 모든 통신수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증진시켜야 한다. 단지 정부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을 수는 없다.

더구나 무엇이 진실인가는 복잡한 사실 간의 관계가 있고, 맥락에 대한 사유 없이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데 가짜뉴스라고 신고하면 바로 차단이나 삭제까지 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힌다. 자유주의 사상가 밀이 말했듯이, 어떤 의견에 다소 거짓이 있더라도 일말의 진실이 있으며 지배적인 의견 하나가 전체의 진실을 담을 수는 없기에 반대의견과의 논쟁 속에서 남아있는 진실이 드러날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가짜뉴스라고 쉽게 딱지 붙이기는 어렵다. 또한 지배적인 의견이 치열하게 논쟁되지 않는다면, 합리적 근거에 대한 이해보다 편견에 따른 수용이 된다면 해당 의견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에 열린 공론의 장은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하면 상이한 시각과 관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활발하고 다면적인 공익 토론이 어려워진다. 가짜뉴스라는 낙인은 다양한 공론의 장소 없애고, 다양한 시각과 집단의 목소리를 지우게 된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08.18. ⓒ뉴스1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정부 비판적인 뉴스를 차단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지금도 일부 언론과 극우 유투브를 통해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심각하다. 소수자를 공격하고 혐오하는 발언을 강화하는 보도나 방송은 그렇지 않아도 배제된 사회적 소수자들의 설 곳을 줄이고 있다. 소수자들은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는데 위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혐오표현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시민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더 취약하게 만들기에 이에 대해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도 2016년 국가의 혐오표현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유엔인권기구의 권고와 반대로 가고 있다. 일부 극우유투버들에 의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방치하고, 인터넷 언론들에 대한 규제와 포털 규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언어와 대응은 좀 더 정교해져야 한다. ‘가짜뉴스’라는 표현이 겨누고 있는 것이 정부 비판적인 내용이지 ‘진짜와 가짜’의 대립이거나 ‘진실과 거짓’의 대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숱한 진짜 논쟁 속에서 혐오표현까지 수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론장의 민주주의와 다원성 보장’이다. 진실의 다면성을 시민들이 스스로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의 형성이며 다양한 의견의 존중과 사회적 소수자의 발언권 보장을 함께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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