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여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비트코인,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_ 가상화폐의 등장 ② 자유무역을 내팽개친 미국과 유럽의 한판 무역 분쟁 _ 항공기 보조금 분쟁 ③ 이슬람,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를 제압하다_ 세금과 헌금 전쟁 ④ 브렉시트와 트럼프,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다 _ 보호무역주의의 부활 ⑤ 석유, 나이지리아에 빈곤의 저주를 걸다 _ 자원의 저주 ⑥ 해적질 논란까지 등장한 마스크 쟁탈전 _ 코로나 경제 분쟁
1630년대 네덜란드 한 상인의 집. 배로 장사를 하는 이 상인은 어느 날 자신의 물건을 잘 운반해준 선원을 집으로 불렀다. “특별히 귀한 물건을 잘 운반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상인은 선원에게 귀한 연어를 상으로 줬다.
기분이 좋아진 선원, 무심코 그 집에서 나오다가 마침 창가에 놓인 양파 하나를 발견한다. ‘이걸 연어에 곁들여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에 선원은 별 죄책감 없이 양파를 들고 나왔다. 선원은 그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양파를 곁들인 연어를 냠냠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선원은 바로 감옥으로 붙잡혀갔다. 죄목은 튤립 뿌리 절도죄. 선원이 들고 나온 것은 양파가 아니라 ‘샘퍼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의 튤립 뿌리였다. 그리고 그 튤립 뿌리의 가격은 자그마치 황소 30마리와 맞먹는 것이었다.
튤립 뿌리가 뭐기에 그렇게 비쌌냐고? 말 그대로 튤립의 뿌리일 뿐이다. 용도가 뭐냐고? 그냥 잘 심으면 튤립이 예쁘게 피는 거다. 그런데 왜 그게 그렇게 비쌌냐고?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네덜란드 튤립 뿌리 투기 사건’으로 기록된 당시의 이야기는 금융 역사에서 아주 유명한 일화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튤립 뿌리가 큰 인기를 끌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귀하다는 튤립 뿌리를 하나둘씩 사들였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니 가격이 폭등했다. 사람들은 ‘튤립 뿌리를 사두면 가격이 올라서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더 많은 튤립 뿌리를 사재기했다. 그럴수록 튤립 뿌리의 가격은 더 올랐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꽃송이 하나 피게 하는 역할밖에 못하는 튤립 뿌리가 황소 30마리 가격까지 치솟은 것이다.
전 세계에 몰아닥친 비트코인 열풍
2017년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사실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조차 잘 몰랐다. 세간의 관심사는 오로지 비트코인의 가격이었다.
2013년 초까지 비트코인 하나의 가격은 대략 30달러 정도였다. 그런데 슬금슬금 가격이 오르더니 그해 12월 가격이 1,000달러를 넘어섰다. 1년 만에 30배가 넘게 오른 것이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저게 뭔데 가격이 저렇게 오른단 말인가?’ 대략 1,000달러 내외를 오르내리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7년 들어 급등을 시작해 5월 2,000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다.
이때부터 비트코인의 가격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솟았다. 그해 8월초 3,000달러를 돌파한 비트코인은 9월에 4,000달러를 넘어서더니 10월에는 5,000달러마저 돌파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1월, 비트코인 가격은 마침내 1만 달러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비트코인 ⓒ기타
하지만 돌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름세를 탄 비트코인 가격은 마치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로켓 같았다. 언론이 비트코인 가격 급등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심리로 몰려들었다. 그해 12월 비트코인 가격은 2만 달러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등락을 거듭했으나 상승 추세는 꺾이지 않았다. 2021년 초 5만 달러를 돌파한 비트코인은 그해 말 6만 달러 선마저 거침없이 뚫었다. 30달러짜리가 8년 만에 2,000배나 급등한 것이다.
모든 투기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튤립 뿌리는 튤립 뿌리일 뿐, 결코 황소 300마리의 가격에 걸맞은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당연히 17세기 네덜란드 일대를 휩쓴 튤립 뿌리 열풍에도 끝이 있었다. 사람들이 ‘도대체 튤립 뿌리가 왜 이렇게 비싼 거야?’라는 합리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튤립 뿌리를 팔기 시작한다. 당연히 튤립 뿌리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면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야겠다’는 불안감이 투자자들을 엄습한다. 너도나도 튤립 뿌리를 팔기 시작하는 순간, 투기의 끝이 보인다. 튤립 뿌리 가격은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온다. 황소 30마리 가격에 튤립 뿌리를 산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탐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한 때 6만 달러를 넘어섰던 비트코인 열풍도 2021년 말을 기점으로 점차 가라앉았다. 올해 초 한 때 1만 6,000달러 선까지 폭락했던 비트코인은 최근 2만 5,000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중이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혹자는 “비트코인은 튤립 뿌리처럼 아무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 0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폭락할 것이다”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비트코인은 다르다. 미래에 전 세계에 통용될 화폐로서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며 장밋빛 미래를 점친다. 도대체 비트코인이 뭐기에 아직도 논란이 끝나지 않은 걸까?
가상화폐란 무엇인가?
비트코인은 가상화폐의 선구자로 불린다. 가상화폐란 말 그대로 지폐나 동전처럼 눈으로 보이는 실체가 없는 돈을 뜻한다. “지폐나 동전이 아닌데 화폐라고요?”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으나, 잘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지폐와 동전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생각해보라. 식당에서 결제를 할 때에도 지폐보다 신용카드를 더 많이 사용한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에는 아예 지폐 사용이 불가능하다. 돈을 주고받을 때에도 은행 간 계좌이체를 이용하지, 사람끼리 직접 만나 돈을 주고받는 일은 많지 않다.
그래서 가상화폐라는 것이 등장했다. 어차피 지폐를 주고받지 않을 바에야 그게 왜 꼭 ‘달러’나 ‘원’같이 국가가 보증한 화폐여야 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눈으로 실체를 볼 수 없지만, 컴퓨터 등의 기계에 남아 온라인에서 거래를 할 수 있는 돈의 역할을 한다.
다만 가상화폐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돈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돈으로 인정을 해 줘야 비로소 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종이쪼가리에 세종대왕님 얼굴 대충 그려 넣고 마트에 가서 “이거 이래봬도 세종대왕님입니다. 만 원으로 쳐주시죠”라고 주장하면 얻어터지기 십상이다. 즉 누군가가 가상화폐를 만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그 돈을 화폐로 인정을 해 줘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실물을 기반으로 한 달러나 원 같은 화폐는 국가가 수량을 엄격히 관리한다. 아무나 돈을 찍어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가상화폐는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그 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리고 아무나 만들 수 있는 화폐를 사람들이 신뢰할 리가 없다.
그래서 가상화폐는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없도록 복잡한 암호가 걸려있다. 가상화폐를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당연히 비트코인만이 유일한 가상화폐가 아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기에 가상화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비트코인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가장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요즘 거래되는 가상화폐만 대략 1,000개가 넘는데 그 중 비트코인이 가장 유명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달러나 원으로도 충분히 온라인 거래를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가상화폐를 만들었을까?’라는 점이다.
가상화폐는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존재 및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와 관련이 있다. 지금도 세계 각 나라는 무역을 할 때 달러를 사용한다. 이처럼 무역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기축통화(基軸通貨)라고 부른다.
그런데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이름의 초대형 금융위기가 터졌다. 미국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려 16조 달러(1경 9,000조 원)에 이르는 달러를 새로 찍어댔다.
문제는 갑자기 새 달러가 쏟아지면서 국제 무역질서가 엉망이 돼버렸다는 데 있었다. 미국이 달러를 마구잡이로 찍어대면 달러의 가치가 하락해 전 세계가 고통을 받았다. 어제까지 1달러로 초콜릿 하나를 사고 팔 수 있었는데, 달러가 흔해지는 바람에 초콜릿 가격이 2달러로 급등하는 혼란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이 자국 경제 살리겠다고 국제 무역질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횡포에 분개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가상화폐의 선두주자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실존하는 인물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는 “달러의 폐단을 막기 위해 중립적인 화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고 알려졌다. 어떤 패권국가에도 종속되지 않는 공정한 결제수단, 그것이 바로 나카모토가 지향하는 비트코인의 역할이었다.
물론 나카모토의 소망과 달리 비트코인은 지금 투기의 대상이 돼 버렸다.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결제수단이라는 원래 목적은 사라지고, 튤립 뿌리처럼 돈 놓고 돈 먹기를 부추기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사기다!”라고 외치고 끝내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물론 비트코인 투자가 튤립 뿌리 투기처럼 사기극으로 마무리될 수 있고, 최근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매우 위험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상화폐로 얼마 벌었어?”라는 돈벌이의 관점을 벗어난다면, 가상화폐가 현재의 국제 경제 질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도대체 왜 달러를 거의 유일한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기여하는 달러를 대체하겠다는 꿈을 가진 가상화폐. 그것이 성공을 거둘지 실패를 거둘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든 돈이 그렇듯 사람들이 가상화폐를 가치 있는 돈으로 인정해주면 가상화폐는 세계 경제 질서를 바꾸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아무도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가상화폐는 내가 종이쪼가리에 그린 세종대왕 그림처럼 처량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상화폐가 “왜 미국이 보유한 달러만이 유일한 기축통화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세계 사회에 남겼다는 점이다. 그 새로운 도전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우리에게는 꽤 가치 있는 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