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을 내팽개친 미국과 유럽의 한판 무역 분쟁 _ 항공기 보조금 분쟁

[연재] 추석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 ②

*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여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비트코인,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_ 가상화폐의 등장
② 자유무역을 내팽개친 미국과 유럽의 한판 무역 분쟁 _ 항공기 보조금 분쟁
③ 이슬람,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를 제압하다_ 세금과 헌금 전쟁
④ 브렉시트와 트럼프,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다 _ 보호무역주의의 부활
⑤ 석유, 나이지리아에 빈곤의 저주를 걸다 _ 자원의 저주
⑥ 해적질 논란까지 등장한 마스크 쟁탈전 _ 코로나 경제 분쟁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정주영 신화’라는 것이 나돌고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이 우리나라를 공업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찬사가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주영을 “자동차(현대차)와 조선(현대중공업) 등의 분야를 개척해 경공업 위주 산업구조를 중화학공업 위주로 바꿔놓은 위대한 선각자”라고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주영이 정녕 위대한 선각자인가? 천만의 말씀. 일단 자동차와 조선은 정주영이 개발한 산업이 아니다. 선진국이 하던 것을 따라 한 산업이다. 이런 방식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경영이라고 부른다. 남들이 새 분야를 개척하면 번개같이 흉내를 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에게 선각자 칭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위대한’ 경영인이기는 했나? 이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그가 이뤄낸 대부분의 성취는 타인의 희생에 엄청난 행운이 더해진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경영은 모범적이지도 않았다. 요즘 누군가가 정주영처럼 경영했다가는 단번에 기업을 말아먹을 것이다. 모범이 되지 않는 경영을 어찌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정주영에 대한 평가는 이 기사의 주제가 아니므로 이 문제는 이쯤에서 접기로 하자. 다만 정주영에 대한 평가 중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정주영이 과연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자동차와 조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이건 정말 천만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 점을 제대로 검토해야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에 어떤 중대한 차이가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이 자동차 제조국이 된 까닭


정주영의 현대는 1976년 최초의 국산차 포니를 생산했다. 그런데 당시 포니의 성능은 그다지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한 번도 차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가 자동차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게 성능이 뛰어나면 되레 이상한 것 아닌가?

하지만 포니는 허접한 성능에 비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성공을 거뒀다. 첫 청약을 받은 1976년 1월 26일, 현대차는 하루 만에 1,000대가 넘는 포니 주문을 받았다. 국민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동차를, 출시가 되기 두 달 전부터 미리 사겠다고 줄을 섰다는 이야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국산차를 사랑하는 것이 애국이다.”라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심지어 “외제차를 타는 것은 범죄”라는 인식마저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보자. 1971년 정부는 ‘외제차 자진 신고 기간’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외제차 소유자는 빨리 자수하라는 이야기인데, 외제차 타는 게 무슨 간첩짓인가? 그게 뭐라고 자수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현대차가 포니를 앞세워 국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이유는 바로 이런 사회 분위기 덕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없었다면 포니가 미국이나 일본, 독일의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와 경쟁해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외제차를 타는 것은 범죄”라는 분위기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1970년대는 박정희 독재 시절이었다. 언론마저 독재자에게 통제되던 시절이었으니 언론이 “외제차 타는 것은 범죄다”라는 기사를 쏟아낸 것도 박정희의 의중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박정희 독재정부 시절 한국은 절대 자유무역 시장에 동참하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나서서 “외제차 타는 것은 범죄”라며 국내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는데 그게 무슨 자유무역인가? 대놓고 보호무역이지!

그리고 이런 일은 자유무역 시장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자유무역 시대에 이런 짓(!)을 하면 미국 등 강대국이 이를 절대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압력을 가하건 무역 보복을 가하건 어떤 형태로건 이런 짓을 하는 국가를 강력히 응징한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빈곤 국가들이 아직도 공업화를 이루지 못한 이유가 바로 자유무역의 횡포 탓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보호무역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진영의 맹주 미국이 이를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대륙과 연결된 유일한 자유진영 국가였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 즉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은 모두 사회주의 국가였다.

물론 일본이 있긴 했지만 일본은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였다. 이 말은, 지리적으로 볼 때 한국을 잃으면 미국은 동아시아 대륙의 가장 중요한 거점을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하는 동아시아 자유진영의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1960년대까지 한국에 밀가루 등 먹을 것을 원조해주던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국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공산화될 위험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판단 아래 미국은 한국의 공업화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1977년 미국 의회가 작성한 <프레이저 보고서>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John F. Kennedy, 1917~1963)은 “미국이 개입했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면서 남한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난다.

즉 당시 한국이 대놓고 보호무역을 실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주영이 위대해서, 혹은 박정희 같은 독재자가 좋은 정책을 펼쳐서가 아니라 미국의 정책 덕분이었다는 이야기다.

보조금, 보호무역의 은밀한 무기


경제학 교과서에는 관세, 수입 할당제, 그리고 수출 보조금 제도 등 세 가지가 보호무역을 대표하는 정책으로 나온다. 관세는 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물건에 세금을 매겨 가격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수입 할당제란 무엇인가? 보통 ‘쿼터(Quota)’라는 글자가 들어간 정책이 수입 할당제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물품 양의 상한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절대 수입하지 않는 정책을 뜻한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한국 영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1년에 수입되는 외화 숫자를 연간 40편으로 제한했다. 이런 게 바로 대표적인 수입 할당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1970년대 한국은 절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스크린 쿼터제’도 같은 맥락의 정책이었다. 물론 스크린 쿼터제는 수입되는 외국 영화의 양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의 의무 상영일을 정한 제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외국 영화의 수입을 제한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1년에 100일 이상 한국 영화를 틀어야 한다.’는 규칙은 ‘1년에 외국 영화를 265일 이하로 상영해야 한다.’는 할당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도 이 짓을 오랫동안 해왔다. 자국 어민을 보호하겠다며 한국산 김과 고등어, 오징어 등 17개 수산물에 대해 수입 쿼터제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2004년부터 이 제도의 철폐를 요구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의 행태를 항의해왔는데 일본은 그 때마다 찔끔찔끔 쿼터의 양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마지막으로 수출 보조금 정책을 살펴보자. 이 제도는 정부가 외국에 물건을 수출하는 자국 기업에 보조금 등 각종 지원을 퍼부어 수출을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이 제도가 각광받는 이유는 관세와 수입 할당제에 비해 독특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관세와 수입 할당제가 “너희 물건 안 살 거야!”라는 노골적인 선언인 반면 수출 보조금은 “우리 기업 힘내라!” 식의 응원이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노골적 반감에 비해 우리 기업에 대한 응원은 상대로부터 반감을 덜 사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가 “일본 기업 죽어라!”라고 말하면 당연히 일본이 발끈하겠지만, “한국 기업 힘내라!”라고 말하면 발끈하기가 좀 그런 거다.

그래서 수출 보조금 정책은 많은 국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 보호무역 정책으로 자리를 잡았다. 말로는 자유무역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자국 기업을 유무형으로 지원하는 보조금 정책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유럽, 보잉에 맞서 다국적 연합 기업을 설립하다


19세기 이전까지 패권 세력이었던 유럽과 20세기 이후 패권 세력인 미국은 아직도 곳곳에서 경제적으로 충돌을 한다. 두 진영 모두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첨단 산업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양 세력이 충돌하는 대표적 분야가 바로 항공 산업, 특히 비행기 제조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이나 배를 만드는 조선 산업에서는 한국과 일본(최근에는 중국도 여기에 끼려고 노력 중이다) 등 아시아 국가들도 선두그룹에서 각축을 벌이지만 항공 산업에서만큼은 미국과 유럽이 양대 산맥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항공 산업은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여객기 한 대 가격이 작은 것은 1,000억 원, 큰 것은 4,000억 원을 넘는다. 큰 비행기 한 대를 팔면 대략 자동차 만 대를 파는 것과 비슷한 매출이 나오는 셈이다.

게다가 항공기는 정기적으로 교체해주는 것이 좋다. 물론 오래 타자면 못 탈 것도 없는데, 이게 경제적으로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 오래 된 비행기일수록 연료도 많이 먹고, 고장도 잦아 수리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항공사들은 비행기 나이가 30살 정도 되면 교체를 고려한다. 짧게는 20년 만에 교체되는 항공기도 여럿 있다. 항공기 산업이 정기적으로 엄청난 매출을 유발하는 이유다.

이 노다지 산업 분야의 터줏대감은 미국의 보잉(Boeing)이었다. 1916년 윌리엄 에드워드 보잉(William Edward Boeing, 1881~1956)에 의해 설립된 보잉은 여객기뿐 아니라 전투기와 우주선 등 하늘을 나는 모든 기체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린 대표적 기업이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에어버스(Airbus)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국 항공사 보잉의 본사 ⓒⓒ플리커

이 노다지 산업을 미국이 독식하는 것에 분노한 유럽 국가들이 연합 전선 구축에 나섰다.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 유럽을 대표하는 각 나라 정부가 돈을 대 1970년 다국적 항공기업 에어버스를 설립한 것이다.

물론 후발주자 에어버스가 압도적 강자 보잉을 따라잡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에어버스에 ‘유럽의 자존심’을 걸었다. 각국 정부는 이 다국적 연합 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지원 덕에 에어버스는 야금야금 보잉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1991년까지만 해도 80%가 넘는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던 보잉의 기세는 21세기 들어 현저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에어버스는 1999년 말 시장점유율을 30%가까이로 끌어올리더니 2001년 38%, 2002년 44%로 점유율을 높여나갔다. 그리고 2003년 마침내 52%의 점유율로 40%대에 그친 보잉을 역전시켰다.

이후 두 회사는 전체 항공기 시장의 90%를 절반씩 나눠가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계속했다. 지금도 두 회사는 시장점유율 45% 내외의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쟁을 계속 중이다.

보잉과 에어버스의 낯 뜨거운 보조금 분쟁


미국과 유럽은 이 두 기업의 경쟁에 자존심을 걸었다. 경쟁이 심해지자 “너네 비행기는 안전하지 않아!”, “무슨 소리, 너네 비행기는 시끄러워!” 이런 유치짬뽕한 다툼까지 벌어졌다.

돈과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 벌어지자 미국과 유럽은 이 두 기업에 각종 지원을 퍼부었다. 평소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과 유럽은 정작 자기들끼리 경쟁이 벌어지자 그 가면을 미련 없이 벗어던졌다.

에어버스가 시장점유율에서 보잉을 역전시킨 21세기 초반 미국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미국 정부의 사주(!)를 받은 보잉이 “유럽연합(EU)이 에어버스에 보조금을 퍼주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는 맞는 이야기이면서 웃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EU가 에어버스에 보조금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정부도 보잉에 유무형의 지원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EU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보잉도 연구 및 개발 측면에서 미국 정부와 항공우주국(NASA)의 집중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세금 우대 혜택까지 누리고 있다. 이게 보조금 받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게 EU의 주장이었다.

말로 으르렁거리던 양측은 2019년 미국이 실질적인 보복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멱살다짐을 시작했다. 미국은 “EU가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미국에게는 연간 75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 상당의 유럽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권리가 있다.”라는 세계무역기구(WTO) 판정을 근거로 에어버스 항공기에 10%, 위스키와 치즈, 와인 등 수입품에 25% 관세를 매겼다. 이듬해인 2020년 미국은 에어버스 항공기의 수입 관세를 15%로 인상하며 분쟁 수위를 높였다.

당연히 EU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20년 EU는 미국의 보복에 대한 재보복 차원에서 미국에서 수입되는 물품 40억 달러(약 4조 4,000억 원)어치에 관세를 물렸다. 이 조치 역시 “미국도 보잉에 실질적인 보조금을 지급했으므로 무역규정에 어긋난다.”는 WTO 결정을 근거로 이뤄졌다. 결국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의 싸움이 벌어진 셈인데, 이 두 마리의 개는 “나는 겨만 묻은 개고 쟤야 말로 똥이 묻은 개다.”라며 서로를 헐뜯었다.

이 분쟁은 2021년 양측이 상대에게 부과했던 관세를 5년 동안 유예하기로 하면서 휴전에 돌입했다. 이런 싸움을 계속해봐야 양쪽 다 얻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항공기 산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이라는 또 다른 경쟁자의 등장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과 EU가 벌인 낯 뜨거운 분쟁은 이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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