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라는 말이 있다. 15세기 초~17세기 초 백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로 진출했던 때를 뜻한다.
대항해를 주도했던 인물은 ‘항해왕’으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Henrique O Navegador, 1394~1460)였다. 엔히크는 1415년 ‘그리스도 기사단’을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아프리카로 진출한 인물이었다. 엔히크의 대항해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에 도착하는 족족 그 지역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명분은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어느 곳에 유토피아에 가까운 기독교 왕국이 존재한다”는 신화를 믿었다.
사제왕 요한의 신화
이 신화의 내용은 이렇다. 기독교 왕국을 통치하는 자는 ‘사제왕 요한(Presbyter Johannes)’이었다. 요한은 예수의 탄생을 목격했던 동방 박사 세 사람 중 한 명의 후손으로 덕이 많고 관대한 왕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나라를 풍요로운 기독교 왕국으로 가꿨는데 그 땅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에덴동산과 이웃해 있었다.
유럽인들은 이 땅을 찾기를 갈망했다. 그들이 먼저 기독교 왕국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13세기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이었다. 하지만 14세기 들어 몽골이 붕괴되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를 새로운 기독교 왕국 후보로 점찍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엔히크 왕자가 아프리카 진출을 시도한 명분도 여기에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왕국과 연합해 아프리카를 점령한 이교도 무리들을 무찌르겠다는 것이었다. 엔히크의 군대 이름이 ‘그리스도 기사단’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항해왕으로 불렸던 포르투갈의 엔히크 ⓒ기타
물론 사제왕 요한에 관한 이야기는 지어낸 신화일 뿐이다. 몽골은 물론 에티오피아 그 어느 곳에도 사제왕 요한은 존재하지 않았고, 기독교 왕국도 없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이 이야기를 앞세워 아프리카 침공을 감행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프리카를 장악한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야 그곳의 막대한 자원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이후에도 지속된 유럽의 아프리카 침탈은 세계 지도의 모양을 바꾸는 코미디로 이어졌다. 북아프리카 지역의 지도를 보면 신기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국경선이 마치 자로 그은 듯 일직선으로 돼 있는 것이다. 국경이란 보통 강이나 산 등 지리적 경계선에서 주로 결정된다. 그런데 북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은 그냥 일직선으로 죽 이어져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880년대 유럽 국가들은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쟁탈전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1881년 튀니지, 1884년 기니를 합병했다. 프랑스의 라이벌 영국도 1882년 이집트, 1884년 수단과 에리트레아, 소말리아를 각각 자기 땅으로 삼았다. 독일도 1884년에 토고, 카메룬, 나미비아를 각각 자국의 식민지라고 선언했다.
유럽 국가들이 너도나도 아프리카를 탐내니 분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쟁이 가열되자 유럽 각 나라들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독일 베를린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프리카 지도를 펼쳐놓고 자로 죽죽 선을 그으며 각자의 땅을 지정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베를린 컨퍼런스다. 북부 아프리카 국경선이 직선인 이유는 베를린에 모인 유럽인들이 지도에다 자를 대고 국경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칼?
유럽에서 기독교가 번성했던 것과 달리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는 이슬람교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기독교도들은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종교 패권을 넘겨준 이유를 “그들이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을 휘두르며 종교를 퍼뜨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이슬람교도들이 땅을 점령한 뒤 그곳 주민들에게 “믿을래? 죽을래?”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증거로 대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 570~632)가 태어난 성지 메카(Mecca)가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 위에는 “알라 외에는 신(神)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다”라는 글귀가 적혀있고 그 아래 칼이 한 자루 그려져 있다. 이것이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을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억지 해석에 불과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에 그려진 칼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를 상징한다. 게다가 이 국기는 이슬람이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 포교되던 7~8세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고작 46년 전인 1973년 만들어졌다.
실제 이슬람교도들은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슬람교도들은 오른손과 왼손을 매우 정확히 구분한다. 깨끗한 것을 만질 때에는 오른손, 용변을 본 뒤 물로 씻을 때 닦아내는 손은 왼손을 쓴다.
만약 이들이 한 손에 코란, 한손에 칼을 들었다면 가장 중요한 코란은 당연히 오른손으로 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왼손에 칼을 쥐고 전쟁을 벌였다는 이야기인데, 이슬람 전사들이 모조리 왼손잡이가 아닌 한 이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슬람이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기독교를 압도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헌금이었다. 종교가 국교로 숭배되던 시절, 헌금은 내도 그만 안 내도 그만인 돈이 아니라 반드시 내야하는 세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헌금이 십일조(소득의 10분의 1을 헌금으로 내야 함)였던 반면 이슬람교의 헌금은 소득의 2.5%만 내면 됐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이 차이는 매우 컸다. 이슬람교를 믿는 것이 기독교를 믿는 것에 비해 돈이 4분의 1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이슬람교가 기독교에 비해 우위를 점했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슬람 금융에 대한 논란
이명박 정권 시절 묘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에 핵발전소를 짓기로 하는 등 중동 국가들과 경제 교류를 활발히 하던 중이었다. 경제 교류가 많아지면 당연히 금융 거래도 잦아진다. 이슬람권 은행으로부터 우리가 돈을 빌릴 때도 있고, 이슬람권 기업에 우리 은행이 돈을 빌려줄 일도 생긴다.
문제는 이슬람권 은행의 개념이 우리나라의 은행과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근본적으로 이자를 금지한다. 이것이 이슬람 율법에 명시돼 있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이자를 정당한 소득이라고 가르친다. 경제학은 이자를 ‘인내의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이 최신 이어폰을 사고 싶다고 생각해보자. 이어폰 가격이 10만 원이다. 마침 여러분 수중에 10만 원이 있다. 그걸 들고 냉큼 이어폰을 사면 여러분 수중에는 땡전 한 푼 안 남게 된다.
마침 친구 중 한 명도 같은 이어폰을 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친구 수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다. 친구가 나에게 와서 “나 지금 이어폰을 못 사면 죽을 것 같으니 10만 원만 빌려주라”고 간청을 한다. 이어폰 못 산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냐만, 이 친구 표정은 진짜 죽을 것 같다.
이때 여러분이 10만 원을 빌려주려면 매우 큰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이어폰을 사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하다. 그리고 그 돈을 빌려주면, 마침내 소중한 친구 한 명의 목숨을 건진다!
인내심이 이렇게 큰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인내의 대가를 친구에게 요구할 수 있다. 이자를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생긴 것이다. 염치가 있는 친구라면 10만 원을 빌리면서 “정말 고맙다. 나중에 돈 생기면 갚을게. 그리고 돈가스도 살게”라고 제안한다. 여기서 받는 돈가스가 10만 원을 빌려준 인내의 대가, 즉 이자다.
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인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슬람교에서는 형제애(Islam Brotherhoods)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이어폰을 못 사서 죽을 것 같다면, 우리는 친구로서 당연히 그 정도 돈은 빌려줄 수 있다. 이는 너무 당연한 도리이기 때문에 대가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슬람교 은행에는 이자라는 개념이 없다. 돈이 돈을 버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금지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이자를 받으려면, 반드시 실물 경제가 포함이 돼야 한다. 단순히 돈만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는 없고, 실제 투자를 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등 실물 경제행위가 꼭 중간에 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거래를 한국과 이슬람 국가들이 하면 복잡한 세금 문제가 생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 이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되지만, 그 사이에 물건을 사고파는 식으로 실물 경제가 끼면 내야 하는 세금이 더 불어난다. 우리나라는 어떤 거래에도 대부분 세금을 매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한국 정부는 이슬람권과 금융거래를 할 때 몇 가지 세금을 면제하는 법을 만들려고 했다. 세금을 면제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세금을 물리게 돼 이슬람권 국가들과 금융거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추진되자 국내 기독교계가 극심히 반발했다. “왜 하필 이슬람교에만 세금을 면제해주느냐?”는 게 기독교계의 반발이었다.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정부가 세금 감면을 추진하면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법에 긍정적이었던 국회의원들에게도 “기독교의 적으로 간주하고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문자가 쏟아졌다. 기독교인들은 “2.5%씩 떼는 이슬람교의 헌금이 테러 자금으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로 이 법은 무산되고 말았다.
종교에서 시작된 문화의 차이는 가끔 이런 극심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중세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졌던 두 종교의 패권 다툼은 세금 문제가 얽히면서 아직도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