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여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비트코인,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_ 가상화폐의 등장 ② 자유무역을 내팽개친 미국과 유럽의 한판 무역 분쟁 _ 항공기 보조금 분쟁 ③ 이슬람,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를 제압하다_ 세금과 헌금 전쟁 ④ 브렉시트와 트럼프,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다 _ 보호무역주의의 부활 ⑤ 석유, 나이지리아에 빈곤의 저주를 걸다 _ 자원의 저주 ⑥ 해적질 논란까지 등장한 마스크 쟁탈전 _ 코로나 경제 분쟁
미국이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할 당시,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재임 1861~1865) 대통령이 참모들과 토론을 했다. 당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스스로 도약을 위해 준비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공업 기술은 영국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참모들이 “철도를 빨리 건설하기 위해서는 영국으로부터 레일을 수입해야 한다”라고 링컨에게 건의한다. 이때 링컨이 정색을 하고 참모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이봐, 만약 우리가 영국으로부터 철도 레일을 사오면 우리는 철도 레일을 얻지만 돈을 잃게 된다고. 하지만 생각을 해봐. 우리가 직접 철도 레일을 만들면, 우리 미국은 철도 레일도 얻고 돈도 지킬 수 있는 거지.”
어떤가? 그럴싸한가? 미국이 영국에 돈을 주고 레일을 사오면 미국 국민들의 돈이 영국으로 흘러나갈 것이다. 반면 미국 스스로 레일을 깔면 레일도 만들고 돈도 지키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꿩 먹고 알 먹고….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 같기는 하다.
자, 링컨의 이야기에 솔깃하다면 이번에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독자 여러분들은 혹시 치킨을 좋아하실까? 좋아하신다면, 링컨이 나타나 독자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떻겠나?
“이봐, 만약 너희가 치킨집에 치킨을 주문하면 너희는 치킨을 얻지만 돈을 잃게 된다고. 하지만 생각을 해봐. 너희가 직접 치킨을 만들면, 너희는 치킨도 얻고 돈도 지킬 수 있는 거지.”
이 이야기도 그럴싸한가? 그렇다면 제일 좋은 방법은 아예 닭을 직접 기르는 거다. 치킨 만든다고 마트에서 닭고기를 사오면 돈을 잃게 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집 앞에 마당을 만들고 거기서 닭을 기르면 우리는 닭고기도 얻고 돈도 지킬 수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닭을 튀기려면 튀김옷을 입혀야한다. 당연히 밀가루가 필요하다. 그런데 밀가루를 마트에서 사면 이것도 손해다. 돈이 나가니까! 그러니 밀도 직접 재배해야 마땅하다. 그러면 우리는 밀가루도 얻고 돈도 지킬 수 있다.
어, 그러고 보니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추와 토마토, 사탕수수도 직접 길러야 한다. 치킨 한 마리 먹으려고 정말 별 짓을 다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링컨의 이야기는 절대 솔깃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링컨의 오류와 분업의 효율성
경제학에서는 링컨의 저 (멍청한) 발언을 ‘링컨의 오류’라고 부른다. 링컨의 말이 잘못인 이유는 링컨이 분업의 효율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가 원시사회보다 효율적인 이유는 분업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분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TV를 보고 싶다면 TV를 자기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생선이 먹고 싶으면 생선을 직접 잡아야 한다. 쌀도 직접 재배해야 하고, 소도 직접 키워야 한다.
이것이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분업과 교환을 한다. 어민들은 물고기를 잡고, 농민들은 쌀을 재배한다. 공장에서는 TV를 만들고, 넓은 들판에서는 소를 키운다.
각자가 잘 하는 영역에서 생산품을 만든 뒤 교환을 하는 거다. 이러면 한 마을에서 소도 키우고 물고기도 잡고, TV도 만들고 쌀도 재배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업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증명이 된 사실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무역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 나라마다 잘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한 나라가 “우리 돈 나가는 게 너무 아까우니 우리는 스스로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주장하는 건 아둔하다. 바다가 있는 나라는 물고기를 잡고, 농지가 풍부한 나라는 곡물을 재배한다. 그리고 무역을 통해 교환을 하면 분업의 효율성을 누릴 수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보호무역의 부활
그런데 2016년 서구 사회에서는 경제학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그 주인공은 19세기 최강대국 영국과, 20세기 이후 최강대국 미국이었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영국이었다. 2016년 6월 23일, 영국 국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브렉시트(Brexit)다. 브렉시트란 영국을 뜻하는 브리튼(Britain)과 ‘탈퇴’를 뜻하는 엑시트(Exit)라는 단어를 합친 것이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브렉시트가 유럽 다른 나라들과 자유로운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EU에 포함돼 있었을 때 영국은 유럽 여러 나라들과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며 분업의 이익을 누렸다. 그런데 영국은 자기 손으로 이 분업의 효율성을 걷어차 버렸다.
국제 사회는 물론 영국 내부에서조차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경고를 쏟아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국 국민들은 EU로부터 탈퇴하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영국이 EU를 공식 탈퇴하면서 런던 의회광장에서 기념 집회가 열려 브렉시트 지지 여성이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이 바통을 미국이 이어받았다. 2016년 11월 9일, 미국 국민들은 ‘막말꾼’으로 불렸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마침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공공연히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한 인물이었다.
보호무역이란 외국과 무역을 할 때 자기 나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상품에 각종 규제를 거는 무역 정책을 뜻한다. 예를 들어 외국 제품이 수입되면 거기다가 세금을 왕창 물려 가격이 비싸지도록 하는 정책 같은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물론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역이 심각하게 줄어들어 분업이 주는 효율성이 사라진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놓고 ‘링컨의 오류’를 저지르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택이 얼마나 아둔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많은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를 새 지도자로 뽑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 수평폭력
두 나라는 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을까? 이에 대해 힌트가 되는 한 정신분석학자의 분석이 있다. 평생을 알제리 독립을 위해 싸웠던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의 연구다.
파농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수평폭력이라는 독특한 심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수평폭력이란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심리’를 뜻한다. 파농에 따르면 사람들은 삶이 힘들수록 수평폭력을 휘두른다.
파농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알제리의 현실을 지켜보고 나서였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알제리 민중들은 그 곤궁함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풀었다.
가난한 알제리 민중들은 옆 천막에서 시끄럽게 우는 아기를 찔러 죽였고 외상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점 주인을 살해했다. 삶이 힘들수록 그들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수평폭력을 가해 이를 보상받으려 했던 것이다.
영국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영국 보수파들은 국민들을 이렇게 선동했다.
“우리가 가난한 이유는 국경을 너무 쉽게 개방했기 때문이다. 아랍의 가난한 난민들이 유럽 대륙을 거쳐 영국으로 무더기로 건너와 일자리를 빼앗는 바람에 영국 서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따라서 영국은 EU를 탈퇴하고 아랍 난민들이 영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영국 민중들이 가난해진 것은 돈을 부자들이 휩쓸어갔기 때문이다. 2016년 영국은 소득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였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당시 영국의 상위 10% 부자들이 차지하는 소득은 국가 전체 재산의 54%로 절반을 넘어섰다. 반면 인구의 하위 20%가 보유한 재산은 전체 국가 재산 중 고작 0.8%에 불과했다.
그러나 빈곤에 빠진 영국 국민들은 부자들을 비난하는 대신 자기보다 약한 아랍 난민들에게 분을 쏟아냈다. 그 결과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하고 만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미국의 민중들은 돈을 휩쓸어 담은 금융자본과 대기업을 비난하는 대신 수평폭력에 기댔다.
트럼프는 “우리가 못 사는 이유는 멕시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이다. 그러니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워 멕시코 사람들을 쫓아내자”라고 선동했다. 국민들은 이에 열광했고 그 결과 미국은 분업과 무역의 효율성을 스스로 걷어차고 보호무역의 시대로 돌아가 버렸다.
빈곤의 끝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시대
1980년 신자유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래 43년이 지났다. 이 시기 미국과 영국의 빈부격차는 극심해졌고 서민들은 훨씬 더 가난해졌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가 홍보에 열을 올렸던 국제통화기금(IMF)같은 단체조차 최근 “더 이상 신자유주의로는 자본주의가 지속되기 어렵다”고 실토를 했을 정도다.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 최강대국 영국과 미국은 뜻밖에도 이 위기 국면에서 쇄국과 보호무역이라는 비효율을 선택했다. 비유하자면,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 더 사악한 악마를 고용했다고나 할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너무 갑자기 닥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위기는 옛 것이 사라졌으나 새 것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라는 명언을 남겼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위기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라는 옛 것이 사라졌는데, 인류는 다가올 새 시대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은 이 혼돈의 시기에 길을 잃고 가장 비효율적인 길을 선택했다.
과연 인류는 슬기롭게 혼란을 극복하고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인간적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새로운 경제적 세상을 열 수 있을까? 그 답은 지금부터 우리 인류가 얼마나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노력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20년 대선에서 낙선한 트럼프는 2024년 다시 미국 대통령에 출마할 예정이고, 그의 당선 가능성은 지금으로서 매우 높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