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나이지리아에 빈곤의 저주를 걸다 _ 자원의 저주

[연재] 추석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 ⑤

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여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비트코인,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_ 가상화폐의 등장
② 자유무역을 내팽개친 미국과 유럽의 한판 무역 분쟁 _ 항공기 보조금 분쟁
③ 이슬람,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를 제압하다_ 세금과 헌금 전쟁
④ 브렉시트와 트럼프,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다 _ 보호무역주의의 부활
⑤ 석유, 나이지리아에 빈곤의 저주를 걸다 _ 자원의 저주
⑥ 해적질 논란까지 등장한 마스크 쟁탈전 _ 코로나 경제 분쟁

1976년 대통령 박정희가 연두 기자회견에서 “영일만 부근 내륙에서 양질의 석유를 발견했다. 이 7광구에 석유가 묻혀 있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우리도 중동 국가들처럼 산유국이 될 수 있다.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1980년 가수 정난이는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 ‘7광구’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 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 제 7광구! 검은 진주~”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가요는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국민들에게 석유는 말 그대로 ‘검은 진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박정희가 탐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석유 매장 가능성을 발표한 것이다. 이후 7광구는 한일 양국이 몇 차례 공동 개발에 나섰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결국 이곳은 “석유가 매장돼 있어도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과 함께 마무리됐다.

물론 7광구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7광구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여전히 제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한일 양국의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아직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번 기사의 주제가 아니니 생략하기로 한다.

1970년대 국민들이 7광구에 열광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중동 국가들이 담합해 석유 가격을 어마어마하게 올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석유파동이라고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 석유파동으로 석유 한 방을 나지 않는 대한민국 경제는 극심한 위기에 빠졌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점이 있다. 만약 당시 영일만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졌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당시 국민들의 열망처럼 우리도 산유국이 돼 부자 나라가 됐을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경제학의 우려다.

자원의 저주

1993년 영국 랭커스터 대학교(Lancaster University) 리차드 오티(Richard Auty) 교수가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더 풍요롭게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단 천연자원이 발견된 나라는 그 자원만 믿고 다른 산업 발전에 힘을 쏟지 않는다. 정부도 수입의 대부분을 자원을 팔아 번 돈으로 채우기 때문에 세금을 걷는 일에 소홀해진다.

‘세금을 덜 걷으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현실은 좀 다르다. 국민들은 세금 부담이 없으니 어떤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건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원 부국(富國)에서는 종종 독재가 발생한다. 독재는 경제적 비효율을 유발하고, 그 때문에 경제 발전은 더 더뎌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원의 저주가 일어나는 중요한 이유는 그 자원을 둘러싼 내부 세력의 다툼 때문이다. 자원을 차지하기만 하면 엄청난 부(富)를 거머쥘 수 있기에 자원 부국은 숱한 내전(內戰)에 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오티는 “자원을 가진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 못한 나라들보다 경제성장 속도가 늦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만이 자원의 저주를 겪는 것은 아니다. 자원의 저주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가 네덜란드다. 1959년 네덜란드 앞바다에서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천연가스 수출로 큰돈을 벌게 된 네덜란드는 게을러졌다. 천연가스 이외의 다른 수출산업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네덜란드는 천연가스라는 ‘로또’를 맞고도 꽤 오랜 기간 경기침체에 빠지는 악몽을 경험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일단 천연가스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內戰)이 벌어지지 않았다. 경제 위기가 가속화되자 정부는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정책을 바꿔나갔다. 천연가스로 번 돈을 기술 개발과 산업 시설에 투자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나이지리아가 겪었던 자원의 저주


하지만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달랐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나이지리아는 여느 아프리카 국가처럼 빈곤에 허덕였다. 그런데 1970년 나이지리아 니제르 강 삼각주 지역에서 유전이 터졌다. 유전에 묻힌 석유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이지리아는 단번에 막강한 산유국이 됐다. 나이지리아는 1971년 주로 중동 국가들로 구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에 가입했다. 이후 석유 생산량을 늘리며 세계 10대 석유 수출국에 올랐다. 미국 CIA가 발간하는 월드팩트북(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2018년 기준 석유 수출로 세계 8위에 올랐다.

나이지리아 국민들은 석유가 당연히 그들의 빈곤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었다. 실제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하며 나이지리아에는 달러가 쏟아졌다.

문제는 이 시기 나이지리아가 석유 산업 외에 그 어떤 산업도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발전은커녕, 기존 나이지리아의 주축 산업이었던 농업마저 내팽개쳤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나이지리아는 세계 최대 코코아 수출국이었지만 석유가 발견된 이후 코코아 생산은 반토막이 났다. 고무와 면화, 땅콩 생산도 29%, 65%, 64%가 줄었다.

정부의 부정부패도 극심했다. 나이지리아 정부 고위 관료들이 석유와 관련해 빼돌린 돈이 400조 원에 육박한다는 추산이 나왔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석유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1994년 니제르 강 삼각주 지역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쫓아냈고, 이에 저항하는 주민 2,000여 명을 죽였다.

나이지리아 석유 정제 시설 ⓒⓒWish for Africa

석유를 두고 내전까지 벌어졌다. 온갖 반란 조직이 만들어져 시도 때도 없이 석유 시설을 공격했다. 특히 ‘나이지리아 석유 위기(Nigeria oil crisis)’로 불리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2004년 1~9월 석유 관련 시설 581곳이 내전으로 파괴됐다. 반란군은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송유관 중간에 다른 관을 꽂아 석유를 빼돌렸다. 망가진 송유관에서 석유가 줄줄 샜다. 2006년 내전으로 훼손된 석유는 하루 63만 배럴, 1년 2억 3,000만 배럴에 육박했다.

나이지리아 국민들에게 석유는 검은 진주가 아니라 ‘검은 저주’였다. 2016년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400만 명이 넘는 나이지리아 국민이 식량난에 허덕였다. 5세 미만 어린이 40만 명이 영양실조에 걸렸다. 석유에 의존해 농업을 내팽개친 채, 군벌들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총질을 한 결과였다.

민주주의의 중요성


자원의 저주는 ‘법칙’이 아니다. 나이지리아처럼 혹독한 자원의 저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네덜란드처럼 이를 극복한 사례도 있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후진국일수록 자원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선진국일수록 자원의 저주에서 쉽게 벗어난다.

그런데 이 차이가 과연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 때문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가 예외를 만든 경우다.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보츠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60달러였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6배나 되는 넓은 나라에 중학교가 한 곳 밖에 없었다. 당시 서구 언론은 보츠와나를 “길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황무지”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이 보츠와나에 1969년에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됐다. 하지만 보츠와나는 나이지리아처럼 자원의 저주에서 헤매지도 않았다. 1983~1985년 아프리카 대륙에 엄청난 가뭄이 덮쳐 에티오피아에서 무려 100만 명이 굶어 죽었을 때 보츠와나에서는 단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나이지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222달러(138위)였지만 보츠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7,859달러(78위)나 된다. 그래서 서구 사회에서는 보츠와나를 ‘아프리카의 모범’ 혹은 ‘아프리카의 예외’라고 부른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1998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이를 “민주주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독재자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권력이 견제를 받지 않으니 독재자는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다. 권력자는 원래 ‘다음 선거에서 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굶주린 국민들을 돌보는 법이다.

이 때문에 여당과 야당이 적절히 힘을 나누고 경쟁하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굶어죽는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 센은 “민주주의 국가는 단 한 번의 기근도 겪은 적이 없다”는 말로 자신의 견해를 요약했다.

보츠와나가 자원의 저주를 극복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그들은 내전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다이아몬드를 관리했다. 독재와 쿠데타가 판치는 아프리카에서 보츠와나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몇 안 되는 나라다.

2대 대통령 퀘트 마시레(Ketumile Masire) 이후 이 나라 대통령은 두 번 이상 연임한 적이 없다. 모두 깨끗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이 민주주의가 보츠와나를 자원의 저주에서 구원했다. 민주주의 정부는 언제나 국민의 눈치를 본다. 그래서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로 얻은 이익을 국민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한 나라에서 지하자원이 발견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일 수도, 참혹한 저주일 수도 있다. 그것은 결국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소망대로 영일만에서 석유가 쏟아졌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에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그 결과는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976년 박정희는 유신개헌으로 종신 집권을 꿈꾸던 독재자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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