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여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비트코인,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_ 가상화폐의 등장 ② 자유무역을 내팽개친 미국과 유럽의 한판 무역 분쟁 _ 항공기 보조금 분쟁 ③ 이슬람,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를 제압하다_ 세금과 헌금 전쟁 ④ 브렉시트와 트럼프,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다 _ 보호무역주의의 부활 ⑤ 석유, 나이지리아에 빈곤의 저주를 걸다 _ 자원의 저주 ⑥ 해적질 논란까지 등장한 마스크 쟁탈전 _ 코로나 경제 분쟁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 정부는 제발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
애덤 스미스(Adam Smith) 이래 주류 경제학을 형성한 시장주의자들이 250년 가까이 고수한 한결같은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주류’가 된 이유는,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체로 이 주장을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세금을 많이 걷어서는 안 된다. 복지정책도 함부로 펼쳐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다 시장이 알아서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자들이 자본가들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기업에 세금을 걷으려 할 때마다 자본가들은 시장의 우수함을 설파하며 이에 맞섰다. 정부가 최저임금 같은 제도로 노동자를 보호하려 해도 자본가들은 “최저임금제도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극렬히 반대했다.
염치없는 자본
그런데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 전 그리스 재무부장관은 이런 자본가들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웃는다. 바루파키스의 주장을 잠시 들어보자.
“국가 권력 없이 개인의 이윤과 시장경제는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국가는 운하를 건설하고 실업자들을 구제했다. 병원을 짓고 보건계획을 세워 전염병을 퇴치했다. 자본가들에게 양질의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해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학교도 세웠다. 국가는 시장경제를 안정화시켰다.
그렇게 부(富)는 노동자, 발명가, 국가공무원과 기업가에 의해 함께 생산되었지만, 그 부는 가장 힘 있는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국가가 세금을 통해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 간다고 국가를 원망한다.
강자들은 국가를 비난하지만, 간이나 콩팥이 필요한 것처럼 강자들에게는 국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힘 있는 개인들은 국가를 악마라고 비난하면서도 더욱더 국가에 매달린다. 그러면서도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시장의 전지전능함을 맹신하고 정부의 기능을 악마화한 기업들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이들이야말로 국가로부터 가장 강력하게 보호를 받았던 자들이라는 뜻이다.
생각해보자. 월가의 탐욕으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졌을 때, 미국 정부가 수조 원에 이르는 구제금융과 수경 원에 이르는 달러를 퍼붓지 않았다면 장담컨대 그들은 모조리 망했다. 미국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부어 구제해줬기에 그들이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군수기업들? 미국 정부가 때때로 전쟁을 일으켜주지 않았다면 그들 또한 절대 지금 같은 거대 세력이 될 수 없었다. 실제 미국 군산복합체는 정부를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이토록 정부로부터 막대한 혜택을 받은 자들이 정작 세금을 내라고 하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게 가증스럽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정부의 비호가 없었다면 현대차가 만든 포니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난생 처음 만들어본 그 허접한 성능의 차가 미국과 독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과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나?
문어발 확장을 고집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IMF)를 맞았을 때, 구제금융에 들어간 돈은 또 누가 댄 건가? 이것 역시 전부 국민의 세금이었다. 만약 이때 정부가 구제금융으로 그들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숱한 기업들이 그대로 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죽어가던 기업을 공적자금으로 살려놓으면 그건 자기들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혜택처럼 생각하면서, 국가가 다양한 복지정책 등을 통해 가난한 국민들을 좀 살려보려고 하면 그들은 “왜 자꾸 정부가 세금을 걷어 시장에 개입하나?”라며 반발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염치가 많이 없는 짓이다.
마스크가 촉발시킨 시장 경제 논쟁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초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 품귀 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 이 사태야말로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주류 경제학의 논리가 산산조각이 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는 사태 초기 부족한 마스크의 적절한 분배를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정부가 요일마다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들도 일정량 이상을 사지 못하도록 통제를 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약국 앞에서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장면이 심심찮게 발견됐다.
그런데 이 시기 일부 시장주의자들이 “마스크 5부제는 사회주의 경제정책”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마스크가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시장의 가격 조절에 의해 마스크 공급이 늘어날 터인데 정부가 왜 시장에 개입하느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특히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부족한 마스크는 국제 무역시장에서 수입을 하면 해결이 된다.”는 현실 모르는 주장을 펼쳐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게 어디 될 일인가? 마스크가 우리나라에서만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시장은 그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마스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높아져 공급이 늘고, 그에 따라 자연히 다시 가격이 내려 안정이 돼야 한다. 이게 시장의 기능이다.
하지만 마스크 수요가 갑자기 너무 폭증하는 바람에 공급이 수요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몇몇 이들이 마스크 사재기를 통해 폭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시장의 기능은 더 무너져 내렸다.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자랑하는 무역시장의 효율성도 웃기는 이야기가 돼버렸다. 한 나라에서 부족한 물품이 생기더라도 자유무역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나라에서 물품을 수입해 효율적으로 경제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오랜 주장이었다.
하지만 마스크 부족은 한 나라에서만 발발한 사태가 아니었다. 전 세계가 동시에 마스크가 태부족한 상태에 빠졌는데, 무역시장 아니라 무역시장 할아버지가 와도 이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마스크 부족 사태는 초유의 국제적 분쟁으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쌀이나 밀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곡물도 아니고,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 제품도 아닌, 고작 마스크 따위(!)가 전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 4월 미국 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DPA, Defense Production Act)이라는 것을 발동해 마스크를 생산하던 3M에게 “중국 현지에서 생산한 마스크를 모두 미국으로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에서 시작됐다.
DPA는 한국 전쟁 때인 1950년 만들어진 법으로 전쟁 같은 비상상황이 벌어졌을 때 미국 정부가 기업들의 생산품을 통제하는 일종의 전쟁 동원령이다. 이 법이 발동되면 기업은 자신의 생산품을 정부가 원하는 곳에 가장 먼저 조달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전쟁 동원령은 시장 규칙에 매우 어긋나는 일이다. 기업이 물건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곳에 팔아야 시장경제지, 정부가 “여기에 팔아. 저기에는 팔지 말고.”라고 명령하는 게 시장경제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스크가 부족해진 미국이 당시를 전시에 준하는 상황으로 보고 이 법을 동원해 시장 질서를 먼저 허물어뜨린 것이다.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첫날이었던 2020년 3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한 시민이 신분증을 제시하며 마스크를 구매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게다가 미국은 DPA를 이용해 3M에 “아시아 및 캐나다와 중남미에 마스크 및 인공호흡기 공급을 중단하라.”고까지 요구했다. 그런데 이것은 3M에게 실로 치명적인 요구였다.
왜냐하면 3M이 비록 미국에 기반을 두긴 했어도 본질은 엄연히 다국적 거대기업(multinational conglomerate)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생산시설을 두고 전 세계에 물건을 판매하는 3M에게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모두 끊어라.”라고 명령하는 것은 사업을 포기하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3M은 “이런 식이면 상대 나라가 보복에 나설 것이고 3M은 물론 미국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라며 반발했지만 미국 정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런 조치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나라는 캐나다였다. 캐나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의 일원으로 나름 미국과 친밀한 나라 중 하나였다.
실제 캐나다와 미국은 주요 스포츠 리그를 공유할 정도로 국민들끼리도 정서적으로 가깝다. 메이저리그(MLB) 팀 중 류현진 선수가 소속된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캐나다 소속이고, 프로농구 리그(NBA)에도 캐나디 팀 토론토 렙터스가 참여하고 있다. 아이스하키 리그(NHL)에는 오타와 세너터스, 카나디앵 드 몽레알, 밴쿠버 캐넉스 등 무려 7개 캐나다 팀이 리그에서 경쟁 중이다.
그런데 미국이 마스크와 의료장비의 캐나다 수출을 금지해 버린 것이다. 미국의 조치 발표 이후 더그 포드(Doug Ford) 온타리오 주 총리가 즉각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각 나라가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미국은 또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결국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까지 나서 “미국이 실수하고 있다.”며 열을 올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게 진짜 웃긴 일인 것이, 미국은 자국의 의료인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다. 헌데 당시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병원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간호사가 무려 1,600여 명이나 됐다.
당시 미국에는 코로나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감염병 확산에 맞설 전문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매일 국경을 넘나드는 캐나다 의료진이 절실히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캐나다 의료진이 필요한 것은 필요한 것이고, 마스크는 내어줄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한 것이다.
급기야 마스크 부족 사태는 국가 간 해적질 논란으로까지 확대됐다. 2020년 4월, 독일 베를린 시는 3M에 경찰들이 사용할 마스크 20만 장을 주문했다. 3M은 이 마스크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뒤 이를 베를린으로 배송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운송 중간 기착지였던 태국 방콕 공항에서 이 마스크를 압류한 뒤 미국으로 날름 들고 튀어버린 것이다.
베를린 시가 “미국이 현대판 해적질을 했다.”라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마스크는 이미 미국으로 사라진 뒤였다. 참고로 해적질을 당한 독일도 당시 자국 기업의 마스크 수출을 금지한 상태였다.
연대와 협력이라는 새로운 과제
당시 선진국들이 벌인 낮 뜨거운 행태 중 압권은 이웃 일본이 한 짓이었다. 2020년 3월 일본 사이타마 현이 재일(在日) 조선인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만 쏙 빼고 마스크를 유치원에 배포하는 얍삽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얍삽하고 안 얍삽하고를 떠나 그런 짓까지 해가며 마스크를 확보하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살펴보면 문제가 해결이 되기는커녕 문제가 더 악화된다. 이게 경제학적 딜레마다.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경제학 개념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미생물학자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이 1968년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 ‘공유지의 비극’에서 출발한 이론이다. 생물학자의 이론이지만 경제학에 워낙 큰 충격을 준 덕에 지금까지도 경제학 논문에서 최다 인용을 자랑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이론은 간단하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유지에서 사람들이 이기심을 부리면 시장은 작동하지 않고 공멸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가딘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목초지를 예로 들었다. 이런 공유지는 누구의 땅도 아니기에 아무도 목초지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이기적 마음을 품어 자기만 양을 더 많이 기르려고 한다. 이러면 초원에는 양이 넘쳐나고, 초원은 황폐화된다. 이 이론은 “이기심이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던 주류경제학의 전제에 심각한 균열을 냈다.
그래서 이런 공유지는 절대로 각자의 이기심에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가 개입해 관리를 하던지, 아니면 지역 주민들끼리 협의체를 만들어 규칙을 정하던지 해야 한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지역 주민들의 연대와 협업이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한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이 연구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거머쥐었을 정도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도대체 무엇을 공유지로 볼 것이냐?’는 문제다.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면, 공유지의 핵심은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 것, 네 것으로 구분이 잘 된다면 각자에게 소유권을 명확히 해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자기 땅은 자기가 알아서 잘 관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 것, 네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기와 바다다. 아무리 “여기는 내 공기, 저기는 네 공기” 이렇게 구분을 지어도 공기를 타고 움직이는 오염물질이나 바이러스는 막을 수 없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여기는 내 바다, 저기는 네 바다” 이렇게 구분을 지어도 바다 속으로 이동하는 물고기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등어에게 “너는 우리 바다 소속 고등어이니 저쪽 바다로 넘어가서 잡히면 안 돼!” 이렇게 강요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코로나19가 바로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가 공유지이기에 “여기는 내 공기, 저기는 네 공기” 식의 이기적 해법으로는 공기 중으로 이동하는 감염병 바이러스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오스트롬은 이 문제의 해법으로 사회적 연대와 협동을 이야기했다. 공유지 비극 문제는 혼자 살겠다고 이기심을 부리는 순간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 다 죽어!” 상황이 도래하므로 협업과 연대를 통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재일 조선인 아이들에게 마스크 지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일 조선인들이 코로나에 왕창 감염되면 같은 땅에 사는 일본인들은 안전한가? 바이러스가 일본인은 피해가고 재일 한국인만 공격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짓이 멍청하다는 거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당장 급하다고 전 세계에 적절히 배분돼야 할 마스크를 해적질까지 해가며 싹쓸이를 했다. 그래서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신음하면 미국은 안전한가?
심지어 미국은 이웃 캐나다에 공급돼야 할 의료장비 수출마저 막았다. 이웃 캐나다가 코로나에 시달리면 미국은 안전한가? 바로 이웃인데? 매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병원으로 출퇴근하는 간호사가 1,600여 명이나 되는데? 캐나다 아이스하키 팀 소속 선수들이 매일 미국으로 넘어와 시합을 하는데?
“미국에서 일하는 간호사들한테는 마스크를 주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간호사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마스크가 부족해 질병에 노출된 가족 및 이웃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그러면 그 간호사들은 안전한가? 그 간호사들이 안전하지 않다면 미국은 안전한가?
코로나19는 바로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나 혼자만 안전하겠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바이러스가 공공재인 공기를 타고 감염되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한 안전은 나 혼자만의 안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전, 세계 모두의 안전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마스크 쟁탈전은 강대국들의 추악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리고 그 추악한 민낯이 더 이상 세계를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데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 또한 만천하에 드러났다. 코로나19는 어쩌면 이기심과 경쟁이 아니라 연대와 협동, 공생의 미덕이야말로 인류가 갖춰야 할 새로운 덕목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