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중기재정운용 및 내년도 예산 편성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김기현 대표, 한덕수 국무총리, 윤 대통령,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철규 사무총장. ⓒ제공 : 뉴스1, 대통령실
윤석열 정부가 자신하던 ‘상저하고’는 없었다. 눈 앞에 오아시스가 실제였는지, 신기루였는지 불분명하다. 어느쪽이든, 예측에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하고 정확한 예측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정부의 실력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윤석열 정부 그 자체다. 위기를 타개할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년 경제는 상반기에 수출, 민생 등의 어려움이 집중되고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회복되는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2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이다.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내놓은 예상이었다. 당시 기재부는 △가파른 금리인상 영향에 따른 내수 부진, △제조업 경기 및 교역 위축 등으로 “세계경제 성장세가 크게 약화될 전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 확산으로 하반기 세계 경제는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예상은 현실이 됐다. 상반기, 한국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코로나19 펜데믹이 지나고 경제성장률을 이끌던 소비가 급감하며 쪼그라들다. 무역수지는 연이은 적자였다. 무역수지 적자는 올 5월까지 15개월 연속 이어졌다. 상반기 누적 적자만 262억1천만달러에 달했다. 6월에 간신히 흑자전환했으나, 수출이 늘어서 기록한 흑자가 아니었다. 수입이 줄어 나타난 ‘불황형 흑자’였다. 불황형 흑자는 8월까지 계속됐다. ‘상저’의 예상은 불행하게도 맞아들어갔다.
문제는 하반기였다. ‘하고’의 장밋빛 전망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실종됐다. 중국은 흔들렸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중국 수출도 잠식했다. 상반기, 중국 수출 금액은 전년 대비 10% 이상 급감했다. 한국으로부터의 수입 규모는 5월 한달에만 30% 가까이 급감했다. 한국은 반도체 등 중간재의 중국 수출 비중이 크다. 중국은 한국의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 수출한다. 중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한국과의 교역 규모도 급감했다.
설상가상, 중국 부동산 위기가 확산하며 경제를 위축시켰다. 중국 부동산 가격은 연일 하락했고 그에 따라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 위기가 부각됐다. 시장 1위 업체의 디폴트 소식에 부동산 시장은 더 침체했다. 중국 국민들의 전체 자산 70%는 부동산이다. 자산 가격 하락은 소비 감소로 이어졌고 전세계 경기, 특히 한국 경제는 리오프닝 온기를 느낄수 없었다. 한미일 동맹 강황에 따른 중국 당국의 판단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 단체 관광을 허용했으나,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인 관광객은 별다른 증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기간, 일본 경제가 올초 흑자 전환에 성공해 경제성장률에서 30년 만에 한국을 추월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고집 부리면 손해는 국민 몫
“경기가 바닥을 다지면서 점점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추경호 부총리의 말이다. 추석 직전, 이미 사라진 ‘상저하고’를 아직도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비쳤다. 추 부총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내 기업들은 10월에도 부진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금융업을 제외한 제조·비제조 부문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전망치는 90.6을 기록했다. BSI 전망치가 100보다 높으면 전월보다 경기 전망이 긍정적이며,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이라는 의미라고 본다. 비관적 전망은 점점 심화하고 있다. 10월 BSI 전망치는 9월 96.9에 비해 6.3포인트 하락했다.
기업 뿐 아니라 소비자 경기 인식도 4개월 만에 비관적으로 돌아섰다. 정부가 내세웠던 ‘상저하고’와 완전히 반대 흐름이다. 한국은행이 추석 직전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9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7을 나타냈다. 8월 지수 103.1보다 3.4포인트나 폭락했다. 지수는 4개월 만에 100을 밑돌았다. 지난 5월98.0을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한국 경제를 끌어가는 플레이어들의 전망은 ‘하저’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결국, 안타깝게도, 한국 경제는 상저하저로 수렴하고 있다. 국제 기관들은 한국 경제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내내 하향 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IMF는 불황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세계경제와 달리 한국 경제는 저성장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IMF는 지난 7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지난 4월 전망치(1.5%)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아시아 개발은행(ADB·1.3%)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5%) 등 주요 해외 기관은 줄줄이 한국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1.4%)와 한국은행(1.4%), 한국개발연구원(KDI·1.5%)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한국의 전망치가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세계 주요 국가들의 전망치는 속속 상향 조정됐다. OECD는 미국 전망치를 1.6%에서 2.2%, 일본은 1.3%에서 1.8%, 프랑스는 0.8%에서 1.0%로 각각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했다.
윤석열 정부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비가 위축되고 기입이 투자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 확대를 통해 성장률을 견인해야 하지만, 정부는 건전 재정론을 성경이나 불경이나 되는 듯 되뇌고 있다. 정부는 내년 나라살림 규모를 올해보다 2.8% 증가한 656조9천억원으로 정했다. 증가 했다고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야 하는 의무 증가를 제외하면 실질 마이너스다. 예산 증가율은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방만하게 나라살림을 운영할 경우 재정건전성에 대한 대외신인도 저하가 우려된다”며 긴축 재정 이유를 설명했다. 1%대 저성장이 확인되고 내년 경제성장률 역시 1%대를 기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와중에 나온 경제수장의 말 치고는 지나치게 편협해 보인다. 전체 경제를 보지 않고 재정 곳간만 지키겠다는 아집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출 억제로 부채비율을 관리하겠다면서 국가 경제가 쪼그라들어 수입이 축소되는 역효과는 애써 모른체 하는 모양새다.
주원 현대연경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실장은 “재정, 통화정책 모두 단기적으로 유연성을 갖고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재정정책은 단기적으로 경기 침체 방어,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망 구축 등 재정의 경기 안정화 기능을 고려하고 통화정책은 자금시장 경색, 실물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