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한철의 교육단상] 2023년 여름을 관통한 교사 행동을 보면서

9월 21일, 국회는 교권 보호 4법을 국회 본회의 1호 안건으로 통과시켰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행동이 없었다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이루지 못할 큰 성과다. 아직 핵심 법인 아동학대 처벌 관련법 개정이 남았지만 교사들의 행동으로 이만큼 만들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9번의 집회는 규모 면에서 계속 상승하였다. 물론 내용과 구호, 요구도 변화했다. 하지만 집회의 모습과 발언은 거의 반복적이었다. 하나의 사안이니 비슷한 형태와 내용인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교사들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논쟁을 위한 글은 아니다. 거대한 사건을 돌아보는데 의미가 있다.

왜 반성하는 사람은 없는가?

이번 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구도 먼저 반성하지 않았다. 전국 13,000여 교장 중 800여명의 학교장들은 등 떠밀리다시피 교사 집회 지지 성명을 내었다. 일부 가해 학부모도, 사건이 일어난 학교도, 교육청, 교육부, 정부 모두 얼마나 집회를 이어갈지 지켜볼 뿐 먼저 사과하지 않았다. 교사를 어렵게 만든 것은 외부의 공격이나 무관심이 전부는 아니다.

무엇보다 학폭법, 아동복지법 등이 학교에 들어오면서 저학년의 학습, 생활지도가 어려워지자 학교는 저경력 교사들에게 저학년을 오롯이 맡겼다. 그전에는 지도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초등 저학년 아이들을 고경력의 교사들이 도맡았었다. 이번 서이초 교사와 호원초 교사들 모두 저경력 교사들이다. 저경력 교사들을 싸움터에 밀어 넣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전세계에서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초등학교 교장들에게 묻고 싶다. 누구 한명의 관리자라도 교사들이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병가, 연가, 병휴직, 직위해제를 당할 때 무엇을 한 것이 있는가. 교육청과 교육부에 청원하고 싸워 다른 형태로 근무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학교 관리자는 교사들을 먼저 분리하고 무시했다. 10년 넘게 교사들이 거의 무고에 가깝게 배제되고 공격받을 때 관리자인 교감과 교장은 어디에 있었는가.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교육감들이나 관료들은 기소되고 당선무효형을 받아도 월급 타먹고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근무한다. 반면 교사들이 아동복지법으로 고발만 당해도 학교에서 쫓아내 버리고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교육청과 교육부는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 지원은 물론 교사들이 학교에서 배제되더라도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게 해야 했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앞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서 지난 7월 숨진 서이초 교사 대학·대학원 동기 동료들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교사들을 힘들게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교사들이 목숨을 던질 만큼 힘들게 한 것은 학부모 뿐만이 아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책임이 더 크다. 교원단체와 교사들이 끊임없이 법개정과 교사 보호를 외쳤지만 그들은 무시했다.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교사들을 분리시키고 징계하는데 앞장섰다. 그들이 교사들에게 들이댄 잣대만큼 학부모들에게도 엄격하게 했다면, 그리고 법과 생활지도 규정을 고쳤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회에서 교사들은 시종일관 학부모들로부터 당한 사례를 열거하면서 함께 분노하고 공감했다. 교사들의 공감과는 달리 집회에 참가했던 다른 사람들은 좀 더 나아가기를 원했다. 정작 아무 일도 안 한 교육청과 교육부, 국회를 향했다면 더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정부나 권력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분열이다. 아쉽다.

시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교사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었을까

전국민이 교사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 학부모를 제외한 대다수 시민들은 교사들의 행동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온전한 마음을 주기 어려웠다. 실제 많은 사람들은 교사들의 집회 발언과 학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교사 행동에 대해 우호적인 시민과 학교와 교사들을 지지하고 응원한 학부모들에 대한 배려가 아쉬웠다.

단체와 정치는 선이 아니고 개인지성, 탈정치는 선인가

사람이 모여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번 집회는 내내 탈정치를 내세우며 스스로 정치적이지 않은 집회라고 공언해 왔다. 서이초 사건 이후 집회는 가장 정치적인 공간에서 가장 정치적인 요구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탈정치는 무슨 의미인가. 지구 전체가 정치적인 공간이고 모든 사람들이 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교사들이 익명에 숨고 정치를 혐오하면 정치를 배워야 하는 학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검은 점으로 표현한 개인적인 참여 원칙을 금과옥조로 집회를 성공시킨 것은 대단한 성과다. 그러나 단체 소속을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모습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교원 5단체, 6단체가 대표로 협상을 주도했다. 교사들에게 내재하는 단체에 대한 불편함과 개인으로서의 편안함이 탈정치성과 함께 빚어낸 결과인 것 같다. 씁쓸하다. 아무리 파편화되고 개별화된 사회이지만 힘과 의견을 모으고 주장을 정연하게 할 수 있는 그릇은 필요하다.

서이초 사망 교사 49재를 맞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추모객들이 추모 글귀를 붙이고 있다. 2023.09.04. ⓒ뉴시스

두려움과 자기검열을 걷어 내었으면

30만, 10만이 모이는 집회에서 사회자가 얼굴을 가린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두려움이다. 서이초 교사는 보호자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감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사들이 여전히 두려움을 표현해야 했는지. 교사들의 요구가 정당했고 30만이 모였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집회는 계속될 것이다. 두려움 없는 당당함을 보고 싶다.

집회에서 줄을 맞추고 스스로 질서 유지인을 운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집회 자체가 국가나 정부에 불편함을 주면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학교에서 질서와 줄 세우기를 한다고 집회까지 그렇게 해야 했는가? 좀 과하게 표현하면 군대 같은 질서 유지, 한국 교육을 대표하는 획일주의적 모습 같아 의아했다. 우리가 괜찮은 시위 문화라고 생각하는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와 비교되는 건 왜일까. 왜 국회와 정부는 불편해하지 않는데, 지지하고 응원하는 우리 시민이 불편한가.

좀 더 근원적인 교육 문제를 이야기 하면 어떨까

학교가 왜 이렇게 되었나. 교원평가, 성과급 제도, 학폭법, 아동복지 관련법 등이 학교를 황폐화시켰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 신자유주의로 강화된 약육강식 경쟁 교육, 학교를 시장의 일부로 보는 시장주의 교육 사회, 공동체와 개인의 부조화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학교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서이초 관련 집회로 교육부가 교원평가 유예를 먼저 이야기하고 서술형교원평가를 없애겠다고 한 것은 결국 교사들의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교사 행동은 어느 노동조합의 집회도 파업도 아니었다. 교사들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전체 교사 50여만 명 중 30여만 명이 모였다. 요구도 단순했다. 어떻게 보면 집회 규모에 비해 요구는 너무 소박했다. 교사들의 행동이 없었다면 소박한 요구조차도 개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국회에 개정을 요구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번 교사 행동의 힘은 막강했다. 시민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보는 듯 전율을 느꼈다. 교사들이 깨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학교 교실이 이렇듯 힘들다는 것과 교사들의 어려움을 만천하에 알렸다. 큰 성과다. 이제 한고비를 넘겼다. 시민들은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새로운 요구로 새로운 교사 행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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