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계열사 사장이 오너 졸개냐? 공사 구분 안 되는 LG 총수 일가

내가 과거 한 종합일간지에서 일했던 시절 이야기. 선후배들과 회사 안에서 서성이는데 복도에서 한 중년과 스쳤다. 그때 선배가 나한테 해 준 이야기는 “야, 알아둬라. 저 사람이 우리 회사 실세야”였다.

“왜요? 저분이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라는 내 질문에 선배의 답은 이랬다. “저 사람이 우리 회사 금고지기거든. 아주 오래전부터 오너 일가의 자금을 관리했어. 그러니까 실세지.”

알아보니 당시 그 중년인은 그 신문사 재무 담당 부장이었다. 그런데 왜 신문사 재무 담당 부장이 오너 일가의 자금을 관리한단 말인가? 신문사는 주식회사고, 그 주식회사에 속한 사람은 법인을 위해 일을 한다. 오너 일가의 집사 노릇을 하는 게 당연히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식은 내가 그 직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그 회사에서 2001년 경제부로 발령받아 증권 담당 기자로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스크로부터 지시가 내려왔다. “000 종목 주가 전망에 대해 상세한 보고서를 올려라”는 지시였다.

나는 기사를 쓰라는 것도 아니고 왜 특정 종목의 주가 분석 보고서를 데스크에게 올려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이유를 선배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선배들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오너가 그 종목에 투자했잖아. 넌 그것도 모르냐?”고 알려줬다.

진짜 웃기는 짜장들 아닌가? 기자는 기사를 쓰라고 뽑은 사람이지 오너가 투자한 종목의 주가 전망을 하는 사람이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오너 일가는 너무 태연히 시킨다. 내가 한국 기업들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한국의 재벌 오너들은 주식회사와 개인사업자의 차이가 뭔지를 모른다.

오너가 개인사업자라면 회삿돈을 어떻게 쓰건 그건 오너 마음이다. 하지만 주식회사를 세웠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주식회사는 엄연한 법인이고, 법인이 설립되는 순간 법인 소속 재산은 오너 개인의 것이 아니다.

한국 재벌들은 이 차이를 모르는 거다. 버젓이 주식회사를 세워놓고 세금도 개인사업자보다 훨씬 덜 내면서 회삿돈을 마치 자기 금고 속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회사 재무 담당 부장이 ‘오너 자금 관리인’ 소리나 듣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 공사 구분도 안 되나?

내가 이 이야기를 정색하면서 꺼내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부터 LG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독자 여러분들도 들어보셨을 것이다. 장자 승계라는 중세 봉건시대에나 통할 법한 요상한 원칙을 갖고 있는 LG 그룹은 선대 회장이 작고하자 경영권과 주식을 장남 구광모 회장에게 몰아줬다.

그런데 구광모 회장은 선대 구본무 회장의 친자(親子)가 아니다. 아들이 없었던 구본무 회장이 양자로 들인 사람이다. 이 희대의 코미디 같은 경영권 승계에 뒤탈이 없을 리가 없다. 구본무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이 두 딸은 구본무 회장의 친딸이다)이 구광모 현 회장에게 몰아준 주식에 대해 법적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 경영권 분쟁이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지에 관해 코딱지만큼도 관심이 없다. 장자승계라는 코미디가 웃길 뿐이고, 그걸 위해서 양자를 들인 봉건적 사고방식에 콧방귀가 날 뿐이다.

그런데 내가 이 일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난주(5일)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이 서울서부지법 제11민사부에 출석했다는 것이다. 하 사장은 당연히 현 구광모 회장에게 유리한 증언을 잔뜩 하고 나왔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LG 트윈타워 (자료사진) 2022.06.17 ⓒ민중의소리

문제는 하 사장이 구본무 선대회장의 별세 전후 때 그룹 지주사인 ㈜LG의 재무관리팀장을 맡아 그룹 총수 일가의 재산 관리와 상속 분할 협의 등을 총괄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니, LG그룹 지주회사 ㈜LG의 재무관리팀장이, 그것도 무려 사장급의 인사가, 오너 일가의 재산 관리와 상속 분할을 왜 협의하나? 이건 자기들끼리 변호사 수임해서 해결해야 하는 일 아니냔 말이다.

심지어 하 사장은 “원고들은 이후로도 상속세 납부나 재산 관리를 평소처럼 재무관리팀에서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인즉슨 회사에 적을 두지 않은 사람도 오너 일가이기만 하면 회사 재무관리팀에서 재산 관리를 해 줬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왜? 국내 4대 재벌 LG그룹 지주회사의 재무관리팀이 오너 일가 따까리냐? 주식회사가 구 씨 일가가 운영하는 동네 구멍가게냐고?

재무통이 금고지기?

이게 일본 말이어서 별로 쓰고 싶지는 않은데, 경제부 기자들이 흔히 쓰는 속어 중에 ‘야도이’라는 게 있다. 야도이란 ‘고용 사장’이라는 뜻의 일본어인데 한국에서는 힘이 없는 ‘바지 사장’이라는 비하의 의미가 강하다. 보통 재벌 오너가 아닌 전문 경영인들, 계열사 사장들을 ‘야도이’라고 부른다.

이 말이 기자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이유는 실제 한국 재벌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들이 다들 야도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너의 금고지기’라 불렸던 재무 전문가들은 야도이를 넘어 오너의 충복, 혹은 따라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재무 전문가들이 사장 타이틀을 달고 오너 비자금이나 관리하는 이 한심한 작태는 ‘이건희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학수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의 등장 이후 더 강화됐다. 이학수가 삼성 이건희 일가의 비자금을 훌륭히 관리(?)해주자 오너들은 앞다퉈 재무전문가들을 집사처럼 부려먹었다. 이들은 (월급은 주식회사에서 받으면서) 오너 뒤처리를 전담하고 다녔다.

LG그룹은 2002년 대선 자금 차떼기 사건의 주인공이다. 선거가 한창 달아오르던 그해 10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이 LG그룹에 대선자금을 요구하자 LG가 무려 150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이 후보 측에 전달한 그 사건이다. 5만 원 권이 없던 시절 그 엄청난 양의 대선 자금을 사과박스 62개에 담아 2.5톤짜리 탑차에 실어 날랐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전설로 회자된다.

그런데 당시 그 비자금 150억 원이 보관됐던 장소가 구 씨 일가 지하실도 아니고 LG본사 여의도 트윈타워 안 비밀금고였다. 도대체 주식회사 본사에 왜 이런 비밀금고가 있나? 그리고 그 비밀금고에 비자금을 넣고 관리한 이는 누구였겠나?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강유식 당시 LG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이었다. 강유식은 당시 이 자금을 이회창 측에 전달하면서 “비자금은 주주들의 상속 및 증여에 대비해 마련해둔 현금”이라고 밝혔다.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여기서 주주들이라 하면 구 씨 일가일 텐데 오너 일가의 상속, 증여세를 왜 상속받는 자가 아니라 주식회사 LG가 대비하냐고? 그것도 회삿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때 이 일을 주도했던 강유식, 이 자는 구본무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자다. 그런데 이 사람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춘 LG의 대표적 재무통이다. 기업 회계를 투명하게 감시하라고 만든 직업이 공인회계사인데 이 인간은 오너 졸개가 돼서 오너 일가의 비자금이나 관리해주고 앉았다는 이야기다. 이게 정상이냐?

아무튼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진심으로 또 한 번 한국의 재벌들이 공사 구분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인 주식회사와 개인사업자의 차이도 모른다. 진짜 하는 짓들이 구리기 짝이 없다. 이런 자들이 글로벌 기업을 운영한다고? 글로벌이 비웃는다. 웃기는 소리 작작들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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