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이앤씨는 과거 대림산업으로 연간 매출액(주택/토목/플랜트건설 분야)이 무려 12조 원을 넘는 기업이다. 국내 건설사 규모로도 3위에 이르는 초대형 기업이다. 그런데 작년 5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무려 8명의 노동자가 장비에 깔리고 추락하는 등의 사고로 사망했다. 물론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노동부 감독 결과에서는 총 79개 현장 중 61개 현장에서 209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발견되었는데 안전난간 미설치나 낙하물 방지 조치 등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도 19건이나 되었다. 이는 이 사업장에서 왜 연이은 사망사고가 발생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서슬 퍼런 중대재해처벌법 앞에서도 덤덤한 최고경영자의 태도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추락해 사망하는 노동자의 50%는 건설노동자이다. 건설업 취업자 수가 전체 취업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7%밖에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한편 지난해에도 우리나라 국민 중 약 1만3천명이 자살을 했다. 이 중 50%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과연 이들의 자살이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죽음일까? 그런데 자살한 노동자 중 산업재해로 승인되는 경우는 50명에 불과하다.(물론 정신질환으로 승인된 노동자의 규모는 약 500명에 이른다) 자살자의 대부분은 서비스산업 종사로 나타난다. 이러한 차이는 자살한 노동자의 유족이 산재 신청을 거의 하지 않는 상황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국민 사망원인의 4위에 자살이 올라가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통계이다. 우리나라 국민자살률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살아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와 튀르키예가 OECD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OECD 산업재해사망률 최고 국가로 남아 있을 상황이다.
일을 얻는 것도 힘든 나라, 일을 하면 죽는 비율도 높은 나라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런 조건에서 인구절벽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일을 얻는 것도 힘든 나라, 일을 하면 죽는 비율도 높은 나라,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용기가 참으로 귀감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위기적 구조 속에 있다. 산업재해, 불평등,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빈곤계층을 겨냥하고 있는 기후위기는 향후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펼쳐놓고 총체적인 해법을 찾아가기 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하지만 현 정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수사는 너무 더디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 작금에 와서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속에 ‘자기규율 예방체계’라는 개념을 도입해 ‘위험성 평가’에 힘을 싣는 듯하나 사실상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안 되었을 경우 벌칙도 없는 상황이다. 무엇을 어떻게 잘 관리하겠다는 시그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된다는 황당한 얘기도 앞으로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출생률이 낮아지고 인구가 절벽이 현실화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더 많이 유입시키면 될 거라는 얘기가 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실태가 보여주듯이 한국인의 하위 파트너로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면서 더 많이 죽도록 방치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정상국가가 되길 바란다.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찾아 해결해 가도 모자랄 판에 궁극의 문제점을 보지 않고 옆길로 새는 구조, 누군가를 계속 낮은 하층민으로 만들고 차별을 강화하는 구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바꿔야만 한다. 그렇게 노력하는 국가들도 이미 있다. 다만 안 하려는 태도가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