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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칼럼] 주거권 지금 당장! 1017 빈곤철폐의 날

2022년도 1017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 ⓒ필자 제공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10월 17일은 1992년, 빈곤과 기아 문제 해결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UN에서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그로부터 31년, 강산이 세 번 더 변하는 시기가 지났지만,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10월이 되면 UN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빈곤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모금을 호소한다. 하지만 모금과 후원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시선은 시혜적일 뿐 아니라, 경험적으로 실패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삶에 필요한 재화, 심지어 기본권이라고 이야기되는 물과 에너지와 같은 필수재까지 상품이 되어 비용을 지불해야 이용 가능한 사회에서 시스템의 변화 없는 빈곤 문제 해결은 거짓이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더불어 모금을 요청하는 자료에는 제3국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있다. 시간이 흘러 인권의 영역이 구체화되고 확장되며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전시하는 방식의 모금, 빈곤 포르노가 차별과 낙인을 강화한다는 비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올바른 모금문화라는 결론에서 멈출 뿐이다. 절대빈곤 인구는 세계 경제가 불평등할지언정 멈추지 않고 성장하며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 코로나19와 기후재난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위기는 다시금 빈곤 인구를 급증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분노하고 변화를 염원하며, 한국의 반빈곤 사회운동 단체에서는 2005년부터 10월 17일을 ‘빈곤철폐의 날’이라고 이름 붙여 싸우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요구가 반영된 사회구조의 변화로부터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다. 빈곤철폐의 날에는 노점상, 철거민, 홈리스, 쪽방주민, 장애인, 세입자 등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함께 살자’ 외치며 일상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이 연대해 몫을 요구한다.

불평등한 사회, 한국

한국은 코로나19 시기 경제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전체 빈곤율이 15%로 높고 3명 중 1명의 노인이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다.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위기와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빈곤 가구 91%가 만성질환을 갖고 있지만, 이 중 28%가 의료비가 부담되어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가구 중 39%가 옥탑, 반지하와 같이 불안전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 더불어 올해 7월 기준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장기체납한 가구가 93만에 달하며 이들 중 5만 원 이하의 생계형 체납자가 76%로 71만에 달한다.

한국은 빈곤 인구가 많고 사회안전망은 부족한 나라다. 정부는 최근 내년도 복지제도 선정기준이자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액과 연결되는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6.09%로 발표하며 역대 최대라고 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위소득보다 3년 정도 뒤처져 있는 수준이며, 생계급여 수급자는 전체 빈곤 인구 1/5에 불과하다. 더불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사회보다 가족에게 떠맡겨 있고, 사회서비스와 의료의 시장화를 확장하며 생명을 이윤 논리에 잠식시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며 이동을 비롯한 교육과 노동 등의 권리를 요구하는 전장연으로 대표되는 장애인단체를 강자라 지목하고 거짓 혐오를 선동하며 탄압하고 있다.

2022년 1017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 ⓒ필자 제공

쫓겨나는, 쫓겨난, 쫓겨날 사람들

빈곤의 모습과 경로는 다양하다. 복지제도로만 이야기될 수 없고 그래서는 빈곤 문제를 제대로 직시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노점은 가장 오래된 상거래 행위 중 하나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진입하기 쉬운 일자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난과 낭만의 소재로 사용되고 선거기간 후보자들이 서민의 이미지를 위해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점상인들의 생존은 녹록지 않다. 도시정비와 디자인이라고 이름 붙은 개발과 변화 앞에 강제퇴거라는 폭력을 마주하며 쫓겨날 위기를 마주한다.

2023년 동대문구청은 청량리역 등 노점을 없애는데 혈안이다. 애당초 노점상인들은 동대문구청에서 제시한 실태조사에 협조했으나 대화로 풀겠다던 구청은 새벽 시간 사전계고도 없이 노점 마차를 강제철거해가고 있다. 대외적으로 ‘쾌적하고 안전한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청량리역 주변에 개발을 끝마치고 입주를 시작한 롯데캐슬에서의 민원, 집값에 영향을 미칠지 모를 가난한 사람들을 치우려는 폭력에 앞장서고 있는 폭거일 뿐이다. 네이버 부동산으로 최근 실거래가가 12억에 달하는 청량리 초고층 주상복합 롯데캐슬은 어디 위에 지어진 건물일까.

저층·저렴 주거지와 성매매 집결지였던 청량리 4구역은 2015년 개발과 이주가 확정된 후 원주민들이 대책 없는 개발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수 없다며 개발에 반대하고 퇴거에 저항했던 공간이다. 당시 철거업체 용역들은 밤시간 사람이 자고 있는 집에 돌을 던지고 오함마로 동네 시설들을 부쉈다. 철거민들이 마지막까지 망루에 올라 저항했던 오래되지 않은 폭력의 역사가 있는 공간이다. 그렇게 원주민들이 쫓겨난 자리에 들어선 고급 주상복합 그리고 민원을 이유로 한 노점상에 대한 탄압은 한국 사회에 오랜 시간 지속 되어 온 축출의 수순이다. 아현포차 노점상인들이 그렇게 밀려났고, 월계역 철도 변 노점상들이 그렇게 쫓겨났다.

더불어 청량리역 인근 전농1동은 대표적인 쪽방 밀집 지역 중 한 곳이다. 서울시가 2018년부터 이유 없이 쪽방 지정을 취소했지만, 쪽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전농1동 역시 개발로 인해 없어질 예정이다. 쪽방으로 지정되지 않았기에 일반 세입자 자격으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관이나 여인숙 그리고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기에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상이 되더라도 전출입이 잦거나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등의 쪽방 지역의 특성상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쪽방 지역 주민들의 삶 역시 개발, 이윤 앞에 무너진다.

이 같은 내몰림이 앞에서 언급한 철거민, 노점상, 쪽방 주민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개발로 인해 집값이 오르면 주변 세입자들은 다음 계약을 불안해할 수밖에 없고 살던 곳에서 멀리, 더 좁고 불안전한 공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회의 개발로 인한 변화는 고급화로 인한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 둘씩 다양한 방식으로 축출하며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집으로 돈 버는 사회는 개발업자와 부동산업자 그리고 투기꾼들이 공모해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세사기라는 또 하나의 비극을 만들어 냈다.

빈곤과 불평등 없는 사회로

최근 5년 동안 집을 많이 구입한 30명이 사들인 주택이 약 8천 채에 달한다고 한다. 매년 살던 동네가 없어지고 높고 화려한 아파트가 들어서지만, 그곳에 가난한 사람들의 자리는 없다. 정책과 금융이 이미 집이 있는 사람들을 도와 더 많은 이윤을 얻게 하고, 그 욕망을 사회 전체에 공유한다. 하지만 그곳에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없다. 반지하에 살면서 폭우 시기 침수를 걱정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2년, 4년에 한 번 이사를 걱정하며 주거불안에 시달린다. 집이 아니거나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가 200만에 달하지만,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5%대에 불과하다.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은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인 ‘세계 주거의 날’부터 시작한다. 올해는 심각한 주거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기 위해 “주거권 지금 당장!”이라는 슬로건으로 세계 주거의 날과 빈곤철폐의 날 행진을 한날, 한시에 진행하며 더 큰 힘을 모아볼 예정이다. 경제가 아니라 사람을, 이윤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빈곤 철폐를 외치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다.

2023년 1017 빈곤철폐의 날 일정 안내 포스터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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